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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성애(母性愛)

2019년 02월 17일(일) 14:56 [봉화일보 인터넷뉴스]

 

↑↑ 박하식- 소설가

ⓒ 봉화일보 인터넷뉴스

TV동물의 왕국을 보면 어미 곰이나 원숭이가 죽은 새끼를 한쪽앞발로 끌어안고 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모성애의 슬픈 열애(劣愛)를 보고 뜨거운 눈물을 흘린 적이 있었다. 불교설화에는 아들이 죽자 정신이 나간 어머니가 아기를 살리려고 죽은 아기를 안고 이리 뛰고 저리 뛰는 ‘고따미’라는 여인이 있다.
그녀는 ‘만나는 사람마다 붙들고 우리 아기를 살려 달라’고 애원했지만, 죽은 아기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모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마침내 폐인이 되어 미쳐있는 여인을 보고, 누군가가 “부처님은 죽은 사람을 살릴 수 있는 분이시니, 그분께 한번 가보라”는 말을 했다. 희망을 품은 그녀는 급히 부처님께로 달려갔다.
“부처님! 우리 아기를 살려주십시오” 울면서 외쳤다.
부처님께서 그녀에게 “네 아기를 살리려면 겨자씨 일곱 알을 얻어오라. 그러나 아무도 죽은 사람이 없는 집안에서 얻어 와야 한다”라고 하셨다.
여인은 그길로 뛰쳐나와 집집마다 찾아다니면서 겨자씨를 구하는데 죽은 사람이 없는 집은 없었다.
죽은 사람이 없는 집을 찾기란 불가능 했다.
보통 여인 같으면 “부처님이 못 살린다면 아예 못 살린다고 솔직히 말 할 일이지, 불가능한 거짓말을 한다”라고 욕을 하고 돌아설 일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겨자씨를 얻으러 다니는 동안 부처님이 “죽은 사람이 없는 집안에서 겨자씨를 얻어 와야 한다”라는 말의 뜻을 깨달았다.
그녀는 겨자씨 구하는 일을 포기하고 부처님께로 돌아왔다.
“부처님이시여, 이 세상에 무수히 많은 집을 찾아 다녔으나 죽은 사람이 없는 집안은 한 집도 없었으며, 죽음은 생명이 있는 한 피할 수 없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한번 태어난 인간은 언젠가는 다시 죽는다는 무상한 존재임을 깨달았습니다”라고…
여인은 출가하여 수행자가 되었다.
“죽음을 초월하는 길을 모르고 백년을 사는 것 보다 단 하루를 살더라도 죽음을 아는 진리의 길을 걷고 사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을 깨달은 그 여인은 아라한과를 증득한 각자(覺者)가 되었다.
죽은 아기를 살려달라고 애걸하던 어머니일적에 그녀의 삶은 중생계의 하나의 하찮은 삶이었지만, 출가하여 아라한과를 얻은 ‘고따미’ 비구니의 삶은 전과는 완전히 다른 지혜의 삶이었던 것이다.
죽음과 삶마저 없는 적정(寂靜)열반, 해탈한 4차원의 세계에 사는 사람에게 죽음이 있다는 것은 틀린 대답이었다.
영겁이 곧 찰라 인데, 어찌 삶과 죽음이 따로 있겠으며, 부처님 가르침의 근간이 되는 제행무상(諸行無常) 제법무아(諸法無我) 열반적정(涅槃寂靜) 삼법인의 삶에는 죽음이 없었다.
죽음은 단절이 아니다. 신라 충신 박제상과 충무공 이순신, 안중근의사와 유관순 누님, 매천 황현의 의혈 같은 분들의 삶에는 죽음이 없었다.
그들은 생사의 놀음을 초월한 해탈의 삶을 살았다.
인생 열차는 왕복이 없다. 언젠가는 사라지게 될 육신은 죽는다.
한 생애는 숭고한 죽음이 없듯 또 하찮은 죽음도 없다.
불로초를 구하고 몸에 좋다는 산목숨이든 죽은 목숨이건 무엇이든지 구해먹더라도, 아무리 지위가 높고, 억만금을 가진 재벌이라 하더라도 그의 육신은 결국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런 인간의 괴로움이란 무엇인가?
태어남도 늙음도 병든 몸도 죽음도 모두 괴로움이며, 근심과 걱정 탄식, 육체의 고통과 정신적 열망, 절망과 질병도 모두 괴로움이며, 사랑하지 않는 이와 만나고, 사랑하는 이와는 헤어지고,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것도 모두 괴로움이며, 이른바 다섯 가지 집착에서 일어나는 오온(五蘊)은 모두 허상의 괴로움인 것이다.
인생의 괴로움이 일어남은 무엇인가?
이는 다시 태어남을 가져오고 향락과 탐욕이 함께하며 여기저기서 즐거움을 추구하고자 하는 갈애(渴愛)다.
목마르게 오욕에 집착하는 것이나, 곧 감각적 욕망에 갈망하는 갈애는 존재에 대한 심연의 괴로움이다. 그러면 그 갈애의 괴로움을 소멸로 이끄는 길은 무엇인가.
이는 여덟 가지 요소를 가진 바로 보는 눈 정견(正見), 바른 사유(正思), 바른 말(正語), 바른 행위(正業), 바른 생계(正命), 바른 정진(正精進) 바른 마음가짐(正念), 바른 삼매(正定)의 팔정도이다.
바로 깨달은 ‘고따미’ 어머니와 안중근 유관순 황현 같은 분들은 갈애를 갈망하지 않는 해탈(解脫)의 삶을 살았다.

홈페이지관리자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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