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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마을탐방<29> 산을 넘어야 찾아 갈 수 있는 신라리 거느미마을

봉화문화연구회 최 종 화

2018년 12월 16일(일) 14:20 [봉화일보 인터넷뉴스]

 

↑↑ 거느미 마을전경

ⓒ 봉화일보 인터넷뉴스

↑↑ 성황당 느티나무

ⓒ 봉화일보 인터넷뉴스

↑↑ 신라어울림센터

ⓒ 봉화일보 인터넷뉴스

↑↑ 옛 신라초등학교

ⓒ 봉화일보 인터넷뉴스

“신라리는 1983년 행정구역 변경에 따라 명호면에서 상운면으로 편입되었고 2000년에 농촌인구 감소로 신라 1, 2리를 통합하여 신라리로 행정명칭이 정해졌습니다”라는 면사무소 직원의 안내를 받고 13:20분 신라행 마을버스를 탔다. 상운로를 10여 분 달려 문촌초등학교와 종선정 앞을 지나 오른쪽 신라길로 버스가 들어간다.
완만한 길이 잠시 이어지더니 급하고 가파른 숲길이 시작된다. 바로 신라제(해발 500m)를 오른다. 버스의 엔진소리가 숨 가쁘게 들린다. 뒷좌석의 할머니가 “시집와서 50여 년 이 고개를 넘나들면서 살아왔다고 하시면서 고갯길 아래의 암자와 길 위쪽의 약수터를 이야기해주신다.
“이웃하는 마을 사람들이 초, 중, 말복에 몸을 깨끗이 하고 약수를 마시러 온답니다. 특히 더위 먹은데 좋다”라고 하시면서 신라리를 안내해주신다.
신라재를 조금 내려가니 만리산에서 발원한 구봉천이 흐른다. 이 물길을 따라 길이 안동시 녹전면 매정리로 이어진다고 한다. 이 신라길 좌우엔 과수원과 논밭이 그리 넓지 않게 이어진다. 특수작물인 사과와 고추가 이곳 주민들의 가장 큰 소득원이라는 설명을 들었다.
잠시 후 거느미 마을에 도착하였다. 이 마을은 오고 가는 이들이 험하고 높은 고개를 걸어서 넘어야 찾아올 수 있는 마을이라는 뜻에서 거느미 마을이란 이름이 붙여졌다고 하며 웃거느미, 아랫 거느미 마을로 나누어져 있는데 오늘은 아랫거느미 마을을 찾았다.
아랫 거느미는 12가구가 오순도순 정답게 산촌의 정겨움을 나누고 살아가는 마을이다. 김용태씨의 안내로 제일 먼저 신라초등학교를 찾았다.
신라초등학교는 1947년 4월 1일에 명호초등학교 분교로 시작하여 1952년에 북곡초등학교 신라분교장이 되었다가 1956년 신라초등학교로 개교했으며 1994년 38회 졸업생 733명을 배출하고 폐교된 채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학교의 건물과 교목이었던 느티나무는 그대로 보존 되어 있으나 운동장엔 사과나무기 심어져 있고 울타리는 허물어져있는 모습이 안타깝다. ‘신라의 푸른 얼 이어오는 산줄기. 여기에 우리들 배움의 터 닦아. 만리봉 기상으로 뜻과 힘 기르네. 우리는 줄기찬 하늘아래 재목들. 우리는 새 푸른 이 고장의 자-랑’ 신라초등학교의 교가를 부르는 어린이들의 얼굴이 운동장에 알알이 박혀있는 듯했다. 신라초등학교 뒷 산길로 까마지골을 넘어 하루 종일 상운장, 봉성장을 다녀왔다고 옛 시절을 회고하신다.
교문앞 다리를 건너면 신축한 신라어울림센터가 있다. 세계화 시대라고 하지만 노인들만 사는 동네에 생뚱맞게 웬 센터인가?
어울림센터는 신라리 창조적 마을 만들기 사업추진위원회에서 지난 11월 26일 준공식을 가졌다고 하며, 사업비 5억 원을 들여 2층 1동 연면적 60평으로 건립되었다고 한다. 1층엔 회의실, 관리사무실로 되어있어 문화교실, 교양강좌, 소모임을 개최할 수 있고 2층엔 주방을 갖춘 숙박시설이 있어 산촌을 찾아온 체험 숙박객이 이용할 수 있다고 한다.
앞으로 문화생활과 행복한 복지가 이루어져 이 곳 오지 신라리 주민들의 삶의 질을 향상하는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미루어보지만 어떻게 유지해 나갈지 걱정도 된다. 이 사업의 부지 해결을 위해 이 마을 출신 박선교(사업가)씨의 지원에 마을 분들이 감사해하시는 말씀을 덧붙인다.
어울림센터에서 20m를 지나면 나무로 만든 다리를 만난다. 다리를 건너 비탈길을 20m 정도 오르면 수령이 1000년 되었다는 동제단인 성황당을 만난다.
이 성황당의 형태는 신수(神樹)로 신체(神體)을 이루고 있다. 마을 사람들은 마을의 수호신으로 공리적인 신관(神觀)에 의한 현실적인 문제, 마을 수호의 기원, 발복, 치병, 성취를 빌어 왔다고 한다. 현재도 정월 보름날 경건하고 엄숙하게 제례의식을 올린다고 한다.
이 성황당의 신체인 느티무에 대한 기록을 새겨둔 글을 옮겨본다. “마을의 흉한 일이 있을 때 나무에서 아기 소리가 나 흉한 일을 미리 알려주고, 비가 오지 않을 시는 나뭇가지 사이의 오목한 곳에 안씨 성을 가진 여인이 물을 길러담고 기도를 하면 비가 내린다는 전설이 있음. 약 1000년 된 영험을 가진 나무 2010년 5월 6일”라고 새겨져있었고, 2005년도 봉화군에서 참 살기 좋은 마을로 선정해 성황당주변 정화를 위해 군비 4천만 원을 들여 정비를 했다고 한다.
이 마을에 귀농하신 박미향 씨는 봉화의 청정한 곳이란 말을 듣고 이곳 저곳을 찾아다니다가 신라재를 넘어 펼쳐진 아늑한 산촌의 경관에 매료되어 남편을 설득하여 이곳 아랫 거느미에 정착하여 이웃의 따뜻한 배려에 감사하면서 살아간다고 하신다.
정 깊은 이웃이 서투른 농사일을 가르쳐주시고 일가친척같이 소소한 농촌생활의 이모저모를 꾸밈없이 안내해주시는 인정이 너무도 감사하다고 하신다. 산을 넘어야 가고 오는 마을 아랫 거느미 마을이 더욱 행복한 마을이 되기를 바란다.

봉화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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