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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삼촌 묘 벌초하기

박 하 식 - 소설가

2019년 10월 06일(일) 14:58 [봉화일보 인터넷뉴스]

 

↑↑ 박 하 식 - 소설가

ⓒ 봉화일보 인터넷뉴스

“올해 풀을 꺾을지 모르겠구나.” 미수를 넘기신 할아버지가 늘 하시는 말씀이다. 이 말은 첫째는 올해도 선산에 벌초를 할 때까지 살지 모르겠다는 뜻이고, 두 번째는 가을 벌판에 누런 햇곡식을 먹어보고 죽을지 모르겠다는 말씀이다. 무정한 세월은 내가 그 나이에 이르렀다. 올해 초등학교 동창생 9명이 하늘나라로 가고, 또 한 명은 고려장과 같다는 요양원으로 갔다.
봉화가 같은 고향인 금(琴) 친구는 동기동창이긴 하나 그는 늦게 학교에 들어와 올해 87세이고, 부인은 세 살 위인 90세이다. 이 친구는 농협중앙회에 근무했다. 농협 월급은 여느 공무원과 비슷했지만 금융계에 있는 사람들이 돈을 모을 수 있는 특혜는 금리가 싼 몫 돈을 활용해 부동산 등을 사놓을 수 있는 때문이다. 그는 Y시 주변에 농토와 산을 샀다. 아이들 4남매는 공부를 다 잘했다. 맏사위가 청와대 비서관을 하다가 국영기업 사장이 됐다. 아들은 미국지사에 근무했다. 사위 덕에 부부가 미국과 일본 관광을 했다. 유럽도 몇 바퀴 순방했다. 담배는 별로였지만 술은 좋아했다. 수 없는 술자리를 같이 했지만, 빈말로라도 아가씨의 손목 한번 잡는 것을 못 봤다. 보통 남자들은 아내 아닌 다른 여자들에게서 활력을 얻는다는데 친구는 아니었다. 지구상에 다른 여자들은 없다는 듯 오직 아내뿐이었다. 부인 밖에 모르고 죽은 유일한 친구다.
몇 년 전 한번은 같이 자기 산을 돌아보자고 했다. 따뜻한 산자락에 자기와 부인이 영원히 잠들 자리를 정했다. 합장을 해도 되고 홀 묘를 써도 무관하다. 친구는 아들이 사는 서울요양원에서 죽었다.
언제 장사를 지냈는지 장사를 지낸 후에 친구로부터 비보를 들었다. 무덤이라도 친구의 얼굴을 대신해 한번 보려고 찾아갔다. 무덤이 없다. 병상에 누워있는 부인을 찾아가 물었다. 서울 아들딸들이 화장을 해가지고 와서 수목장을 지냈는데, 우리 아버지는 여름에는 그늘이 시원하고 겨울에는 낙엽이 덮여 따뜻하다는 것이었다.
친구의 방 문고리 위에는 내 휴대폰 번호가 명패처럼 걸려 펄렁거리고 있었다. 죽으면 나한테 연락을 하라는 의사는 물거품으로 사라졌다. 그런데무정한 아들딸들은 장사 지내기 전에 내게는 전화 한마디 없었다.
두 번째 김(金) 친구는 중학교 때부터 서울에 가서 수도꼭지를 빤 친구이다. 서울 창신동에 집이 있었다. 그놈의 6.25만 없었다면 시골로 다시 내려올 일 없이 서울에서 고교와 대학을 나왔을 텐데 6.25가 터지자 시골에 내려와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대학교는 다시 서울에서 했다. 집이 부자였다. 할아버지는 소수서원 원장을 지내셨고, 어머니는 돛대 같은 양반 안동 하회류 씨로 하회마을에서 시집올 떼 소와 말 29마리가 정성 옷을 싣고 왔다고 한다. 지금도 그의 고향집에 가면 제일 탐나는 것은 화장실 뒤편에 서있는 금강송은 너무 묘하게 생긴 나무인데, ‘서울 사람이 정원수로 심으려고 3천만 원을 주는 것을 안 팔았다’고 하는 아름다운 소나나무가 있다.
그 친구는 국가공무원을 하다가 하기 싫다며, 인간이 해야 할 일은 교육이라며 중등교육계로 가 교편을 잡다가 다시 행정공무원으로 환원해 살았다. 다른 친구들은 직장을 한번 구하면 그걸 목줄로 알고 살았는데 이 친구는 그게 아니었다. 세상을 자기 맘대로 살다가 갔다. 고생을 모르고 자란 양반집 아들이기에 자기 고집이 강하고 공감능력이 떨어졌다. 부고를 받고 산지로 달려갔을 때, 생전에 나와 같이 가서 봐둔 선산 아래 묏자리가 아니었다. 부인을 잡고 왜 할아버지 선산 위에 쓰느냐고 하니 맏상제가 하는 말, 화장을 했으며 재봉지는 아무데 써도 무해무덕으로 아버지가 생전에 하신 말씀대로 할아버지 묘위에 아버지의 묘를 쓴다고 했다.
‘봉화 산속에 묘를 쓰면 앞으로 어느 자식이 이 깊은 산속까지 와서 뱀과 진드기에 물리고 벌에 쏘여가며 벌초할 자식이 있느냐’는 것이었다. 사별한 치구들은 한 친구가 국가유공자 묘지에 묻힌 것을 제외하고는 화장한 뼈를 산에 뿌리거나 하는 그런 식의 장례였다. 서구문화에 물든 우리는 추석에 선산을 찾아 벌초를 하고 참배를 하던 전통문화의 미풍은 사라졌다.
우리 속담에 ‘처삼촌 벌초하듯 한다’는 말이 있다. 마지못해 겉 치례만 한다는 말이다. 지금 세상은 선산을 처삼촌 벌초하듯 이라도 하는 자식이 있다면 그가 효자라는 것이다.

홈페이지 관리자 기자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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