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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자들의 영화 - Ⅱ

2019년 04월 21일(일) 13:24 [봉화일보 인터넷뉴스]

 

↑↑ 박하식-소설가

ⓒ 봉화일보 인터넷뉴스

<이전호에 이어서>
죽음과 삶에 대한 정확한 정도(正道)는 없다. 거대한 권력이나 물리적인 힘 앞에서는 어쩔 수 없다.
갑자기 홍수가 져 떠내려갈 때 어떻게 할 것인가. 온 산천이 불타는 화마가 닥쳐왔을 때 어떻게 할 것인가.
목에 칼을 대고 “내가 좋으냐?”고 물었을 때, 살아남을 것인가.
‘아니다’ 하고 죽을 것인가.
여자들은 목에 칼을 들이댔을 때 몸을 바치고 살아남을까 그대로 사라질 것인가. 그 것뿐이다.
칼을 빼면 죽여야 한다. 칼의 비정함이 거기에 있다. 안 죽이면 내가 죽는다. 내가 죽으면 아무것도 없다.
내가 살아있는 게 세상의 정의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은 내가 존재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없다.
인간은 개체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다. 그것은 자신의 죽음이 곧 세상의 종말이기 때문이다. 하늘이 생명을 거두어 가면 인생은 한 순간의 꿈일 뿐이다. “좋다”고 거짓말을 해야 살아남는다.
만약 그 자리에서 내가 죽어버리면, 죽어서 내가 없는데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때는 그 사람의 말이 하늘이다. 권세와 칼자루를 쥔 사람 앞에 “아니요”는 삭탈관직을 당하고 결국 죽음 밖에 남는 것이 없다.
자기 죽음 하나라면 그것도 할 수 있고, 또 죽음의 길을 택할 수도 있지만, 부모와 사랑하는 아내와 어린 자식까지 참살을 당해야 하는 멸문을 눈앞에 두고 있다.
아내는 그 집의 노비로, 자식들은 달아나 더러 머슴살이로 생명을 부지할 수 있다고 하지만 그러나 그것은 죽음만 못한 삶을 자식에게 물려주는 것이었다.
지금은 혼자 죽지만 옛날에는 처가와 외가 친가 삼족이 역적으로 몰려 멸문지화를 당한다.
자기 선택에 따라 세 가문이 온갖 영화를 누릴 것을, 자기 하나로 인해 삼족이 멸문을 당하고 자기의 혈손이 끊어지고 자기가 세상에 태어났던 흔적마저 자취도 없이 사라지는 것이다.
반대로 권력과 불의 앞에 “아부”를 하는 사람들은 온갖 권세와 영화를 누린다.
그 아내의 명예나 처가의 권부와 영화는 말할 것 없고 ,아들딸들이 줄줄이 벼슬을 하고 그 아들 손자 대에 이어 백대에 이르기까지 출세를 하며, 그 후손들이 대대로 영화를 누리는 흥문지가(興門之家)로 역사에 길이 남는 것이다.
범옹(泛翁)과 설잠(雪岑)
죽음을 앞두고 어린 단종의 왕위를 걱정한 조선 5대왕 문종(1952)이 정권의 중심인물인 황보인 김종서 등 중신과 집현전 학사 성삼문 박팽년 신숙주 등을 앉혀놓고 왕위를 보필할 것을 유언한다.
그러나 그 이듬해 계유정난이 일어난다.
신숙주는 한명회 권람 등과 함께 어린 단종을 보필하는 황보인과 김종서 등 중신들을 제거하는데 앞장선다.
단종 옹호세력들을 제거함과 동시에 정권을 장악하고 계유정난 일등공신으로 도승지에 오른다.
2년 후 세조가 즉위하자 고령군(高靈君)으로 봉해지고 예문관대제학으로 승진함과 동시에 토지, 노비, 안마(鞍馬)를 하사받는다.
그리고 병조판서에 이어 우찬성대사성을 제수 받으며 권력이 승승장구 하늘에 이른다.
세조 2년 성삼문 박팽년 등 사육신의 단종 복위운동이 발각되고 어제까지의 동지를 오늘의 적으로 삼아 죽인다.
머리를 같이 맞대고 훈민정음을 창제하던 집현전 학사 성삼문 박팽년 등 사육신을 처형하고, 신숙주는 단종을 노산군(魯山君)으로, 이어 서인(庶人)으로 격하할 것을 주청한다.
영월로 귀양 간 서인이 된 노산군과 순흥에 위리안치 된 금성대군을 처형할 것을 강력히 주창하여 이를 관철시킨다.
그 후 여류한 세월은 물과 같이 5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조선의 정변이 안정되고 신숙주가 영의정에 올랐다. 창공의 별과 온 우주가 신숙주의 것이었다.
조선의 태평성대 앞날을 축복하는 영의정의 행차였다.
“물렀거라!”
“물렀거라!”
“영상대감 행차시다!”
“물렀거라! 물렀거라!”
삼천리강산에 천하 일인지하 만인지상인 영의정의 행차였다. 길을 가던 만인들이 다 길 양옆으로 물러나 엎드려 숭모하고 있는데 걸인인지 거지 비슷한 사람 하나가 퍼뜩 비켜나지 못한 채 길 복판에서 비척거리고 있었다.
칼을 찬 호위병이 달려가 길 옆으로 밀쳐내 쓰러졌다.
호위병이 처치하려고 칼을 들어 내리치려고 할 때였다.
“멈추어라!”
영의정 신숙주가 소리쳤다. 김시습이었다. 김시습을 본 영의정이 버선발로 쫒아가 김시습을 끌어안았다.
“설잠! 이 얼마 만인가… 그동안 5년이란 세월이 흘렀군! 그래 어떻게 지냈나…”
“… …”
설잠은 연하인 집현전 동문이었다. 조선의 인재로 범옹 영의정 신숙주가 무척 아끼는 사람이었다.
5년의 무정한 세월이 흐르는 동안 변한 것은 신숙주는 영의정이 되어 하늘같은 높은 벼슬에 올랐는데 비해 김시습은 거지꼴이 되어 거리를 헤매고 있는 것이다.
하늘의 태양은 이 두 사람의 얼굴을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오랜 침묵이 흐른 뒤, 영의정이 무거운 입을 열었다.
“그래, 지금 어디로 가는 길인가…”
“… …”
“자네가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아는 가…”
“… …”
설잠은 그래도 말이 없다. 이글이글 타는 듯한 눈으로 신숙주의 얼굴을 가만히 노려보고 있었다.
“설잠! 우리 집에 가세, 하룻밤 묵으며 나와 같이 정배주나 한잔 합세!”
그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설잠이 영의정의 얼굴에 침을 탁 뱉으며 하늘을 향하여 미친놈처럼 공허하게 허허 웃었다.
비척거리며 다시 일어나 길을 걸어갔다.
미친놈처럼 걸어가는 설잠을 보고 있는 영의정 신숙주의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설잠! 참 아쉬운 인물이다’.
얼마나 찾던 사람인가.
김시습이 집현전 시절부터 천재라는 것을 아는 신숙주는 일찍 그를 흠모하고 아껴왔다.
이 사람이 나라의 일을 돕는다면 조선이 바로서고 국사에 큰 공적을 남길 사람이다.
그런데 안 된다. 하는 수 없이 설잠이 허공을 향해 허탈한 웃음을 미친 듯 웃으며 걸어가는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볼 뿐이었다.
별호 설잠, 호 매월당(梅月堂) 김시습은 생후 8개 월 만에 글 뜻을 아는 생이지지였다고 한다.
강보에 싸인 매월당이 방안에 누워 옹알이를 하며 울었다.
어머니가 무슨 병인 줄 알고 의원에게 문진을 했더니 의원이 글을 읽느라고 그런다고 했다.
천장에 도배한 글을 읽느라고 그러니 책을 뜯어 도배를 한 벽과 천장을 백지로 갈아 붙이라고 했다.
갈아붙였더니 매월당은 옹알이를 안했다고 한다.
세종이 김시습을 5세에 궁으로 불러들여 과거에 등용할 것을 약속하고 비단 필을 하사했다.
무거운 비단 필을 어떻게 가지고 갈 거냐고 물었더니 풀어 끝을 한데 묶어 끌고 집으로 갔다고 한다.
이름 김시습은 아버지가 논어 학이편에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 ․ 배우고 익히면)면 불역열호(不亦說乎․
이 어찌 기쁘지 아니하랴.)에서 땄다고 한다.
수양대군이 단종을 몰아내고 국권을 잡자, 김시습은 한양 장안 자기 집 마당에 선비의 옷과 자기가 배운 사서삼경을 꺼내놓고 불을 질렀다.
그까짓 책이 무슨 소용 있단 말인가.
같은 사서삼경을 스승에게서 동문수학했는데 배움과 실천은 사람마다 다르다.
그 마음이 변하는 책의 배움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충과 효와 인의(仁義)가 하늘의 기본 이치임을 배운 세조 자신이 임금이 되기 위해 스스로 천륜을 헌신짝처럼 버리니, 앞으로 그 임금 밑에서 어떻게 인간을 믿으며 산단 말인가.
천리가 없는 이 나라는 어떻게 된단 말인가.
어찌 인간이란 자기 목적달성을 위해서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단 말인가.
아무리 목적이 정당하다 해도 사람을 죽이는, 그것도 어린 조카를 죽이는 짓을 한단 말인가.
또 그 미친 짓을 하는 것이 옳다고 뒤따르는 선비들이 줄을 이었으니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그는 그 길로 선비의 옷을 벗어던진 채 머리를 깎고 승려의 차림을 하고 방랑의 길을 떠났다.
그는 세상의 모든 부귀영화를 버리고 떠돌이 생활의 길을 걸었다. 인생은 어차피 길을 잃으며 사는 나그네다.
인생사 모든 것이 무상하고 덧없다.
권력이 얼마나 부질없고 어리석음을 깨달은 그는 삶의 시간은 완전히 무가치한 것으로, 죽음보다 더 무서운 허무를 느끼며 영혼의 자유를 찾아 길을 떠난 것이다.
세상은 황금 옷을 입은 성직자의 온화한 웃음과 사창가에서 화려한 화장을 한 창녀의 살기위한 요염한 웃음소리가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생명의 존귀함에는 풀 한포기와 사람이 다를 바 없다.
잡초와 곡식이 농부 앞에서는 잡초가 천대받지만 자연 품에서는 다를 것이 없을 것이다.
대자연의 입장에서 볼 때 왕이라 해도 지구에 한번 왔다 한줌 흙으로 돌아가는 것을, 촌수로 따진다면 왕이라 해서 생명은 굼벵이 한 마리와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인생이 살다 가는 것은 바람 한 점 왔다가는 것, 귀뚜라미가 울다 찬바람이 불면 사라지는 것과 같은 것이다.
왕이 되기 위해 어린 조카를 죽여야 하고 또 그 불의에 자기 영화를 누리기 위해 똥파리처럼 달라붙는 선비들이 파리 한 마리보다 무엇이 났단 말인가.
이런 생각에 젖은 김시습은 걸인이나 광인 취급을 받으며 어디로 갈까.
선혈의 피를 도둑질하는 인간들이 사는 한향을 멀리 떠나 뚜렷한 정처도 없이 삼천리강산을 바람이 부는 대로 발길이 닿는 대로 구름처럼 부도(浮圖)의 길을 찾아 떠났다.
“그가 폐허의 산천을 밟은 것은 상처받은 영혼을 위로받기 위함이요. 불멸의 공간이나 유서 깊은 폐사지를 찾은 것은 상처를 어루만져 주는 위로를 받기 위함이었다. 승려의 옷을 입었으나 중이 아니었고, 심유적불(心儒迹佛) 유자의 마음, 승려의 행색은 스스로 자기의 모순, 자기 분열의 삶을 고뇌와 허망으로 방황하는 것이었다. 삭발위피세(削髮爲避世) 유염표장부(留髥表丈夫) 머리를 깎음은 세상을 기피하기 위함이요 수염을 남겨둔 것은 장부임을 들어냄이다” 고 율곡은 경탄했다.
불의의 정승이 되는 것 보다 정의의 걸인이 났다고 거지가 되어 길을 떠난 김시습은 얼마나 쓸쓸하고 쓰라린 생을 살았을까.
산 새 한 마리도 해가 지면 돌아갈 집이 있고, 다들 돌아갈 고향이 있는 사람들이지만, 갈 곳 없는 김시습은 절로 산으로 하늘을 지붕 삼고 절 밥을 얻어먹으며 산천을 배회하며 방황했다.
관서, 관동, 영호남 삼남지방을 두루 돌아다니다가 31세가 되던 해 봄 경주 남산 금오산에서 덧없이 한국 최초의 한문소설 “금오신화”를 쓰기도 했다. 그리고 십현담요언해본(十玄談要諺解本)을 남겼다.
김시습은 한양을 떠나기 전 훈련원도정 남효례의 딸과 결혼을 했다.
아름다운 부인 남씨를 아내로 맞이했으나 그가 머리를 깎고 길을 떠남으로써 모든 인생사는 수포로 돌아갔다.
그 후 37세 되던 해 새로 서울로 돌아와 성동(城東)에서 농사를 짓고 환속을 하면서 새로운 아내 안 씨를 맞이했다.
거기에서 소생이 하나 태어났다. 그러나 그 결혼생활도 행복은 없이 다시 방랑의 길을 떠남에 따라 한갓 물거품으로, 그 아들은 어떻게 자랐는지 모른다. 안 씨 와의 후손인 아들은 그 후 종적이 없고, 지금 강릉김씨 족보에는 절손으로 되어있다.
그의 현실 모순에 대한 비판은 불의의 위정자들에 대한 혐오와 민중을 기초로 한 왕도정치에 대한 사상적 혼란을 올바르게 하기 위한 노력으로 유․불․선 종교의 사상을 찾아 헤맸다.
천명을 따르는 음양 이치의 주기론(主氣論)적 성리학 입장에서 밀교와 도교의 철학을 넘나들기도 했다.
그는 그 후에도 여러 번 조정의 회유를 받았으나 눈앞에 떨어지는 영화를 끝까지 헌신짝처럼 버리고 절개를 지킨다.
<다음호에 계속>

홈페이지관리자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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