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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회탈

2021년 01월 10일(일) 19:23 [봉화일보 인터넷뉴스]

 

↑↑ 신 동 환 - 칼럼니스트 (경북도경산교육청교육장 역임, 영남대학교 외래교수)

ⓒ 봉화일보 인터넷뉴스

평소 자주 여행을 같이 하는 친한 동생과 하회 마을에 갔다.
날씨가 쌀쌀해서 넓은 하회 마을을 돌아볼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을 때, 하회별신굿 탈 공연 포스터가 보였다.
우리 일행은 공연시간도 적당하여 관람을 하였다. 공연장에는 몇몇 가족만 보일 뿐 관중이 적었다. 코로나로 여행을 자제하는 분위기에, 날씨가 차기 때문일 것이다.
‘탈’은 가면을 나타내는 우리말이다. 탈은 동·서양, 거의 모든 민족 사이에 존재했으며, 기원은 원시 씨족사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탈은 각 나라, 각 지방에 따라 탈의 모양과 표현의 형태가 제각기 다르다.
우리나라 탈에는 한국인의 해학적인 표정과 골격이 잘 나타나 있고 그 중에서 하회탈이 으뜸이라고 한다. 하회탈은 각 주체의 특징을 은유적으로 정교하게 표현하여 오늘날에도 흉내 낼 수 없는 작품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하회마을에는 하회별신굿탈놀이가 전승되어 내려오고 있다. 하회별신굿탈놀이는, 선비·양반·각시·중·백정의 여섯 가지 탈을 쓰고, 평상시에는 할 수 없었던 양반들에 대한 비판과 풍자를 탈 뒤에서 신랄하게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이는 어쩌면 양반들에게 고통 받고 살던 민중의 한을, 탈이란 가면을 쓰고 하는 한풀이일 것이다.
오늘 공연에서 암수 짝짓기 흉내 내기, 소의 우랑을 떼어 관중에게 나누어 주기, 파계승·선비·양반의 여인에 대한 회화적 표현은 성에 대한 양반의 이중성에 대한 풍자였고, 할미의 구슬픈 베틀가는 지배계층에 대한 한의 하소연이었다.
공연 내내 흐르는 한풀이의 대상은 양반과 지배계층이었다.
유럽 사람들은 우리나라처럼 동족 간에 신랄하게 한풀이 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은 타 민족끼리 수많은 침략과 전쟁으로 승자가 되고 패자가되어 국가가 만들어 지고 신분계층이 형성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굳이 타민족이 유입되어 사회 계층을 만든 경우를 찾는다면 ‘백정’의 예를 들 수 있다.
백정은 몽골계 북방 유목민의 후예이다. 신라 말기와 고려 초에 말갈과 거란 인들이 전쟁 등으로 우리나라에 들어 왔다. 그들은 유목 생활에서 터득한 짐승 도살의 기술을 살려 우마 도살 업에 진출하였다.
그러나 그 후 생활이 어려운 일반인도 도살 업에 종사하여 조선 후기에는 도살 종사자가 곧 백정이란 등식이 성립되지 못하였다. 더하여 정부의 백정과 일반인의 적극적인 동화 정책으로 이제는 백정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한이 많이 생겨난 원인은 무엇일까?
먼저 여인의 한을 들 수 있다. 병자호란 때 청나라로 끌려간 조선인은 50만 명이나 된다.
남자들은 소나 말 같은 동물로 취급을 받았고, 여자들은 매음굴로 팔려가기도 하였다.
고국으로 돌아온 여인에게는 더 큰 고통이 기다리고 있었다. 청나라에 끌려가 정절을 잃었다는 것이다. 환향녀(화냥년)이라 손가락질 받고, 이혼을 강요당하였다.
수 만여 명의 여인이 자살했다. 이밖에도 역사 이래 수없이 많은 외침에서 이와 비슷한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다.
또 주자학에 빠진 사대부는 여인의 한을 만들어 갔다. 남존여비사상에서 비롯된 남자들의 횡포와 여자들에게 강요된 인종(忍從)의 미덕 때문이다.
그리고 유교 중심의 사상이 빚은 계층 의식의 폐해도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천민이나 노비들은 인간으로서의 대우를 받을 수 없었다. 이들은 뿌리 깊은 원과 한을 항시 간직해 왔다. 60년대 초에도 예닐곱 살 아이가 환갑이 지난 노인에게 ‘하대’를 하는 것을 보았다.
노인은 ‘예, 예’ 묵묵히 대답만 하고 있었다. ‘저 노인이 누구냐’ 아이에게 물었다. ‘상× 아이가’ ‘아!......’
권력을 가진 사대부의 행패도 수도 없었다. 삼정의 문란(전세, 군포, 환곡)과 수령 방백과 지방 토호들의 인권 유린과 짐승 같은 대우는 백성들의 가슴에 응어리를 심어주었다.
경제적 수탈도 한 몫 했다.
고려 말에 “송곳 하나 꽂을 내 땅이 없다.”는 말이 있었다. 백성들의 빈곤을 짐작 할 수 있는 말이다. 우리나라 국토의 특성상 산이 많고 들이 적다. 거기다가 권문세가들이 토지를 독점하고 있었다.
일반 백성들은 한 평의 땅도 갖지 못했다. 굶어 죽는 백성이 많았다. 이런 빈부의 차이는 조선에도 이어져 왔고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 사이의 골은 점점 더 깊어갔다.
그러나 우리 민족은 지금까지 한을 민간 신앙과 민요와 판소리 등을 통하여 풀려고 했다. 거기다 익살과 해학, 풍자를 이용하였다. 일종의 평화주의 이다.
이런 평화주의적 한을 업그레이드 할 때가 되었다.
우리 민족의 한에는 항시 건강한 해학이 따라다녔다. 오늘 공연된 하회별신굿탈놀이의 백미도 해학일 것이다. 우리 민족의 한풀이는 흥겨운 어울림이다.
이제는 한을 너름새 안에서 여유와, 멋으로 소리질러보자.

홈페이지 관리자 기자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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