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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고장명문가-청주한씨(淸州韓氏)

2014년 05월 28일(수) 20:40 [봉화일보 인터넷뉴스]

 

청주(淸州)는 충청북도 도청소재지이다. 삼한시대에 마한의 땅이었다가 백제시대에는 상당현(上黨縣), 일명 낭비성(娘臂城) 또는 낭자곡(娘子谷)이라고도 하였다. 685년(신라 문무왕 5) 서원소경(西原小京)을 두었고, 757년(경덕왕 16) 서원경(西原京)으로 승격하였다. 940년(고려 태조 23) 청주로 지명을 고쳤고 983년(성종 2) 청주목이 된 뒤 995년(성종 14)에는 절도사를 두었다. 1012년(현종 3)에 안무사로 바뀌었다. 1018년에 전국에 8개 목(牧)을 설치함에 따라 다시 청주목이 되고, 양광도(楊廣道)에 소속되었다. 1310년(충선왕 2)에 주(州)로 강등되었다가, 1356년(공민왕 5)에 다시 목으로 복구되었다. 조선시대에도 청주목을 유지하면서 충청도의 정치·행정의 중심지 역할을 했으며, 1651년(효종 2)에는 충청도의 병마절도사영이 청주로 이전되어 충청도의 군사적인 중심지도 겸하였다. 그러나 역모사건 등으로 1656~1667년, 1681~1689년, 1804~1813년, 1826~1834년, 1862~1871년 등 여러 차례 서원현(西原縣) 등으로 강등되기도 하였다.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공주부 청주군이 되었고, 1896년에 충청북도 청주군이 되었다. 1906년 관찰사를 충주에서 청주로 이전함으로써 충청북도의 주도(主都)가 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청주면이라 개칭하였고, 1931년에는 지방제도 개정에 따라 읍으로, 1946년에는 청주부(淸州府)로 승격하였다. 1949년 지방자치법에 따라 청주시로 개칭하였고 1983년 전국 행정구역 조정으로 청주시 지역이 크게 확대되었다. 1995년 동부·서부 출장소가 동부는 상당구로, 서부는 흥덕구로 승격하여 현재 상당구·흥덕구 2개 구가 있다.

《씨족원류》에 의하면 시조는 한란(韓蘭)이다. 《청주한씨세적연보(淸州韓氏世蹟年譜)》에 의하면 한란은 청주 방정리(方井里) 무농평(務農坪)을 개척하여 호족이 되었으며 928년(태조11) 왕건(王建)이 후백제 견훤(甄萱)을 정벌할 때 공을 세워 개국벽상공신(開國壁上功臣)으로 삼중대광태위(三重大匡太尉)에 올랐다.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하고 청주를 본관으로 하여 세계를 이어왔다. 청주한씨는 조선초에 한확, 인수대비로 잘 알려진 소혜왕후, 정난공신 한명회 등의 인물을 배출하면서 훈구세력의 핵심이 되었다.청주한씨는 한란 이후 30여 파로 갈렸는데 그 중 가장 번창한 양절공파(襄節公派: 한확(韓確)), 문정공파(文靖公派: 한계희(韓繼禧)), 문간공파(文簡公派: 한리(韓理)), 몽계공파(夢溪公派: 한철충(韓哲?)), 관북파(關北派: 한련(韓連)), 충성공파(忠成公派: 한명회(韓明澮)) 등 6파를 통칭 한씨 6파라고 한다.

2000년 통계청이 발표한 결과에 의하면 청주한씨는 199,642가구 총 642,992명이 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

한씨(韓氏)는 한국(韓國)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歷史)를 지닌 이른바 삼한갑족(三韓甲族)으로 한란(韓蘭)을 그의 시조(始祖)로 하고있는데 이는 기자조선(箕子朝鮮)의 마지막 왕(王)인 준왕(準王)의 후손(後孫)인 한우량(韓友諒)의 자손(子孫)이라고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성씨중(姓氏中) 기씨(奇氏) 선우씨(鮮于氏)와 한씨(韓氏)의 삼성(三姓)은 같은 기씨(箕氏)의 후손(後孫)으로 통혼(通婚)하지 않고 있다. 이조(李朝)때 12명의 상신(相臣)과 24명의 공신(功臣), 그리고 대제학(大提學) 1명을 배출(輩出)했다. 상신(相臣) 12명은 전주이씨(全州李氏)의 33명, 안동김씨(安東金氏) 선후김합계(先後金合計) 19명 동래정씨(東萊鄭氏) 17명 청송심씨(靑松沈氏) 3명에 이어 여주(驪州) 여흥민씨(驪興閔氏)와 함께 5위이며 공신(功臣)은 왕실(王室)인 전주이씨(全州李氏) 38명을 빼놓고는 가장 많은 벌족(閥族)이다. 본군(本郡)에는 비교적(比較的) 희성(稀姓)으로 물야판교(物野板橋) 두문(斗文)과 상운하눌(祥雲下訥)등지(等地)에 산거(散居)하고 있다.

한광덕(韓光德) 무과급제(武科及第)하여 부사(府使)를 역임(歷任)했다

한여원(韓.汝元) 사마시합격(司馬試合格)하여 생원(生員)을 했다.

청주한씨(淸州韓氏) 강(康)씨에게 출가(出嫁)하였다. 행실(行實)이 착해서 집안(集眼)이 가난했는데도 시부모(媤父母) 모시기를 극진(極盡)히 하였다. 시부모(媤父母)가 큰 병에 걸리자 의원(醫員)에게 물으니 올빼미의 쓸개가 약이 된다고 하여 하늘의 북두칠성(北斗七星)께 기도(祈禱)하고 나니 올빼미 두 마리가 부엌으로 날아 들어와 벽에 머리를 박고 쓰러지니 두 마리의 쓸개를 내어 드리니 병은 곧 나았다. 정성(精誠)을 사림(士林)에서 알고 깊이 포상(褒賞)을 하였다.

한인희(韓仁熙) 1955년생(年生)으로 물야가평(物野佳坪)에서 출생(出生)하여 대만문화대학(臺灣文化大學)에서 정치학박사(政治學博士) 학위(學位)를 받아 대진대학중국학(대진大學中國學) 교수(敎授)로 재직(在職)하고 있다.

봉화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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