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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단장한 ‘침산정’의 이야기 알아봐요~”

2016년 07월 31일(일) 13:19 [봉화일보 인터넷뉴스]

 

ⓒ 봉화일보 인터넷뉴스

봉화군 소천면 분천1리 황목마을에 있는 침산정(枕山亭)은 비지정문화재로서 산을 베개삼아 편안히 누워있다는 뜻을 가진 아름다운 정자이다.
침산정은 1947년 김이섭(金理燮, 1892.6.17~1960.10.26) 선생이 건립한 국내 유일의 자 형태의 정자로서 동, 서로 방을 들이고 남, 북으로 마루를 배치하여 가운데는 문을 달았고, 동, 서 2개의 방은 사방에 문을 배치하여 항상 개방할 수 있게 하여 어느 방향에서건 소통을 할 수 있게 하였으며, 베흘림 모양의 대들보 및 지붕의 모양도 특수한 모양을 한 특이한 정자이다.
건립후 김이섭 선생은 지인들과 시와 담소를 나누고 문중의 대, 소사를 의논하는 장소로 사용하며 가꾸었다고 한다.
그후 세월의 흐름에따라 부장하고 있던 편액, 시화 등이 훼손·멸실·도난되고 건물도 노후되어 수리가 불가피하던차 김이섭 선생의 손자인 김종춘(金宗春)이 봉화군의 비지정문화재 보수사업비와 자부담을 하여 2014년 정자 본체 수리, 2015년 담장을 설치하여 현재의 상태로 보수·중창하였다.
그러나 도난당한 편액·부장품을 회수하지 못하고 건물도 원래의 모습에서 지붕부분이 약간 변형된 것이 아쉬운 부분이다.
김이섭(金理燮) 선생은 조선말,일제시대를 보내면서 벼슬은 하지않고 한학을 하며 김녕김씨 충의공파 26대 암돌문중 종손으로 살면서 문중 대·소사를 총괄하고 엄격하게 자기관리를 하였고 봉화, 안동 등 경북북부지방의 각 문중 및 유명 문인들과 폭 넓은 교류를 하면서 한평생 옳곧게 살았다고 한다.
김녕김씨가 침산정이 위치한 봉화군 소천면 분천리 황목(黃木)동에 거주하게 된 계기는 8대손 김문기가 단종 복위운동에 연관되어 처형 당한 후 역적의 집안으로 몰리어 복권이 되지 않자 18대손 김세건(金世建)이 경기도 양주에서 1686년 이주함으로써 세거하게 되었다고 한다.
김문기(金文起, 1399~1456) 선생은 조선 전기의 인물로서, 자는 여공(汝恭), 호는 백촌(白村) 혹은 마암(馬巖)이다.
충북 옥천군에서 태어나 1426년 문과에 급제하였으나 부친상을 치르는 3년 동안 관직에 나아가지 않았다.
이후 관직에 나아가 예문관 검열, 병조참의, 형조참판 등을 역임하였는데, 수양대군(세조)이 1453년 계유정난을 통해 안평대군, 황보인, 김종서 등을 숙청하고 권력을 장악한 뒤 1455년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를 찬탈하자 공조판서 겸 삼군도진무로 있으면서 1456년(세조2년) 6월 단종 복위 운동을 추진하려다가 김질, 정창손 등이 밀고하여 다른 사육신들과 함께 능지처참 되었는데 이를 병자사화(丙子士禍)라고 한다.
김문기 선생은 병자사화의 주역 임에도 불구하고 추강 남효온이 지은 육신전에 성삼문, 이개, 박팽년, 유성원, 유응부, 하위지 등 6인만이 사육신으로 기록되고 본인은 빠져 있어서 6인보다 늦게 신원이 회복된다.
1456년 병자사화 후 성삼문 등 6인은 숙종17년(1691년) 즉 235년 만에 신원이 회복되고, 단종은 숙종24년(1698년)에 신원이 복권되었다.
한편, 추강이 지은 육신전 기록에 빠진 김문기는 성삼문보다 40년 후인 1731년에 신원됨으로써 275년 만에 후손들이 밝은 하늘을 볼 수 있게 된 셈이다.
이는 사림에 거론되지 않음으로 뒤늦게 병자사화의 주역들이 신원됨을 알게 된 김문기 선생의 8세손 김이휘가 숙종 43년(1717년)에 신원을 호소하다 곤장을 맞고 장독으로 죽게 된 이후 그의 장손 김정구의 상소를 영조7년(1731년)에 받아드려 신원이 회복(복권)된다.
이후 정조2년(1778년) 충의(忠懿)라는 시호가 내려지고 정조15년(1791년)에 불천위에 봉해지게 된 후, 이후 고종7년(1870년)에 충신정려의 왕명이 추가되었다.
봉화의 현존하는 정자는 104개이다.
<제공=봉화군문화재지킴이 방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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