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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성한 仲秋佳節에 국민의 절규

2018년 10월 07일(일) 14:14 [봉화일보 인터넷뉴스]

 

↑↑ 홍승한- 前 봉화군 기획감사실장

ⓒ 봉화일보 인터넷뉴스

아름다운 자유 대한민국은 누가 뭐라 해도 三綱五倫을 기본으로 하는 儒學이라는 잠재의식 속에 忠과 孝가 기본이 되면서 세계사에서 찾아볼 수 없는 아름다운 5,000년의 역사를 이어왔다.
하지만 요즘은 그러한 이미지 자체를 찾아본다는 것이 정말 어려운 사회가 되어 버렸고 어떻게 하면 법보다는 윤리와 예절이 사회를 선도해 나가면서 바른 인성이 사회를 선도해 나가는 선진문화 의식 사회는 될 수 없을까하는 생각에 젖어보다가도 윤리와 도덕은 물론 제도적으로 만들어놓은 헌법과 법률이 무너지고 언론 마저 깡그리 허물어진 절대군주사회와 같은 오늘날의 현실에서 무엇을 바라보고 살아야 하는지 삶의 의미를 잃어 버렸다.
인간은 인간다워야 할 뿐 아니라 “사람이면 사람이냐 사람이래야 사람이지”라는 말과 같이 사람은 사람다운 행동과 처세를 할 때만이 사람대접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하지만 요즘은 사람다운 사람을 찾아보기가 더욱 어려운 것 같다. 왜냐하면 자유 대한민국을 이끌어가고 있는 최고의 통치자와 푸른 집에서 근무하고 있는 사람들을 위시한 권력을 잡고 있는 집권세력들이 5,000만 대한민국 국민의 안위는 생각하지 않고 촛불 등 친북 나부래기들과 함께 김정은의 입맛에 맞추어 정책을 펼치고 있으니 어찌 밥맛이 있겠는가?
통일도 서로의 이념체제가 맞아야 통일이 되는 것이지 서로의 꿈이 동상이몽인데 어찌 통일의 꿈을 꿀 수 있겠는가?
독일은 동독에서 공산주의 이념을 포기했기에 가능하였고 베트남은 미군이 철수하자마자 무력으로 월남을 침공하여 점령한 후 사회주의 국가로 통일하지 않았는가?
또한 일본 에도 막후시대에 있었던 오사카성의 멸망의 얘기를 잠깐 언급해 본다면 보통 사람은 이성보다는 감성에 더 민감하다는 것을 오랜 경험을 통하여 德川家康은 알고 있었다.
그런 덕천가강은 풍신수길이 죽은 후에도 10여 년 이상을 발톱을 감추고서 고단수 전략을 구사하면서 이성보다는 감성이 앞서고 그것이 감정으로 흐를 때는 사리분별력이 저하된다는 것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지금 김정은이 ‘우리민족끼리’라는 감성적 코드로 접근하여 사리분별력을 저하시키고 있는 것과 유사한 전략일지도 모른다.
풍신수길이 죽은 후 제1의 실세로 등장한 토쿠가와 이에야스는 히데요시의 유지를 받들어 그의 아들 히데요리의 후견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다짐하지만 어차피 태양이 둘이 될 수는 없는 이치…
어느덧 시간이 흘러 덕천가강의 무릎에서 놀던 풍신수길의 아들 토요토미 히데요리가 장성해 어엿한 무장이 되자 히데요리를 그냥 둘 수 없다고 판단한 이에야스는 히데요리의 오사카성을 공격하기에 이른다.
이때가 1614년 11월이었으며 오사카성은 히데요시가 심혈을 기울여 지은 난공불락의 성이었으나 이런 상황의 어려움을 간파한 이에야스는 지구전을 펼치며 강온양면작전을 구사하게 된다.
일종의 거짓 평화 제안이었다.
전쟁을 더 이상 하지 않는 조건으로 평화협상을 제의하게 된다. 이런 덕천가강의 거짓 평화제의에는 함정이 있었다.
그것은 ‘오사카성 바깥을 둘러싸고 있는 해자(물 웅덩이)를 메꾸기만 하면 물러갈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그러면 오사카성엔 평화가 올 것이라고 경험 없는 히데요리(히데요시의 아들)를 꼬신 것이다.
이런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제안에 오사카성 안에선 격론이 벌어졌지만 격론 끝에 전쟁보다는 일단 화친을 들어주자고 하는 화친파의 주장이 받아들여지고 결국 약관의 나이인 히데요리는 이에야스의 청을 들어주게 되지만 이는 있어서는 안 될 굴욕적이며 치명적인 평화를 택하였던 것이다. 그러자 이에야스는 외부해자(소토보리)뿐만 아니라 내부해자(우찌보리)까지 순식간에 메우면서 공격하게 되자 중과부적의 히데요리는 20살로 자결하게 되며 토요토미가는 멸망에 이르게 된다. 이것이 1615년 여름전투(나쓰노 진)라고 한다.
이 과정에서 나온 얘기이다. 일본 무사의 전통상 패자는 할복을 강요받게 된다.
히데요리 측의 사무라이: “너희는 약속을 안 지키고 그럴 수 있느냐? 이 나쁜 놈들아!”
이에야스 측 사무라이: “음하하하하. 이 멍청한 놈들아. 적장의 말을 믿는 자는 죽어 마땅하다”
그냥 읽으며 웃어넘길 일은 아니잖는가? 소름이 끼치지 않는가? 그런데 우리의 입장은 어떠한가? 우리는 서로의 이념이 다를 뿐만 아니라 자유 대한민국은 항상 방어적 입장이고 북한은 공격적 입장이기 때문에 어떻게 하던지 그들의 요구를 쉽게 들어줘서는 안 될 뿐 아니라 완전한 핵 포기 등 우리의 요구를 강력하게 요구하고 관철시켜야 하는 것이 정상적인 회담의 중요 요건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우리의 요구와 관철은커녕 고개까지 숙여가며 우리 것은 다 포기하고 그들을 위해 국정원 국내활동과 기무사 해체를 한다는 등 또한 휴전선 DMZ에 GP가 북한이 우리보다 3배 정도는 많다고 하는데 남북 동수로 철거한다고 하는거나 제3차 남북 정상회담 시 북한의 요구로 경제인을 데리고 가서 그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요구했는지 심히 의심스럽지 않을 수가 없다.
게다가 휴전선 근방 철조망까지 왜 철거한다고 하며 탱크방어벽 등 수많은 군사시설을 철거 축소하면서 김정은에게 침략의 길을 열어 주지 못해 안달을 하는지 진정한 그네들의 속셈을 알 수가 없다.
정말 우리가 원하는 통일이 되어 그때 그러한 시설이 필요치 않다고 느껴질 때 철거하고 해체해도 될 것을 핵으로부터의 위협이 사라지지 않은 상태에서 종전선언이니 평화협정이니 라는 말은 그들의 속내를 잘 알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며 지금까지 북한의 소행으로 봐서는 겉치레에 불과한 사실일 뿐 한치의 양보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개성공단 연락사무소 개설, 동해안 철도 개설, 금강산 재개 등 엄청난 예산을 투입할 것으로 계획하고 있으니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단 1%의 이해도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은 정말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김정은에게 고스란히 바칠려고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우지 않을 수가 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런 일이 벌건 대낮에 일어날 수 있으며 눈뜨고 강도한테 당한 꼴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이런 차제에 정치권은 물론 사법 경찰 군인 언론까지 누구하나 강력하게 반발하는 자가 나타나지 않으니 나라는 이러다 폭삭 내려 앉겠다는 마음뿐이다.
그러니 중이 절이 마땅치 않으면 절을 떠날 수밖에 없듯이 정말 대한민국을 떠나고 싶은 마음뿐이다.
이럴 때 나에게 보내온 따뜻한 사연하나로 풍성한 중추가절을 맞아 군민들의 아련한 가슴을 달래보고자 할 뿐이다.
어느 교사의 얘기다. 그는 평생 교감이나 교장자리는 마다하고 아이들 앞에서 교편을 잡으셨다고 한다.
그는 하루 종일 재잘대는 아이들과 함께 하는 것이 아버지에게는 더 없는 행복이었다. 정년퇴임을 하신 후 아버지는 학생들이 그리운지 저녁이면 앨범을 펼쳐 들고 30년 전 처음 만났던 학생들 얘기부터 그리운 옛 이야기를 들려주시곤 하였다.
“이 아이는 정말 말썽꾸러기였지… 하루라도 안 싸울 날이 없었단다. 그래도 심성은 착하고 붙임성도 좋아서 나만 보면 떡볶이 사달라며 날마다 조르곤 했지….”
“유진이는 참 의젓하고 밝은 아이였다. 아프신 홀어머니와 힘들게 살면서도 늘 웃음을 잃지 않았지. 아프신 어머니 때문에 늘 의사가 되겠다고 말하곤 했었단다. 내가 가끔 집에 찾아가서 유진이 몰래 고기며 쌀이며 사다 놓곤 했었는데…”
줄줄이 이어지는 추억담은 늘 우리 자식들 마음을 촉촉이 적시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산책을 다녀오시던 아버지가 쓰러졌다.
폐암 말기…
“한 평생 칠판에다 쓰고 닦고 하시더니 폐암이 되셨구나”
희망이 없다는 의사들의 말을 뒤고 하고 우리는 아버지를 집으로 모셔와 할 수 있는 치료를 계속했다.
종종 아버지 제자들이 소식을 듣고 찾아오곤 했다. 그럼 아버진 또 한참을 옛 추억에 잠겨 이야기를 나눴다. 그 때 만큼은 아버지 얼굴에도 생기가 돌았다. 그러나 아버지 병세는 날이 갈수록 나빠졌다. 기침 때문에 잠을 못 이루시는 날들이 잦아지고, 가래 끓는 소리도 거칠어졌다.
마침내 대화를 나누지 못할 정도로 병세가 나빠졌다.
그때 마침 진료 받던 병원에서 의사 한 명을 보내주었다.
20대 후반의 여의사였는데 가래가 끌면 젖은 가재로 손가락을 넣어 가래를 꺼내주곤 하면서 가족만큼이나 지극정성으로 보살펴 주었다.
여의사가 오는 날이면 아버지도 유난히 표정이 밝아졌다.
한번은 아버지가 기침이 무척이나 심해져 얼굴은 핏발로 벌게지고 목은 가래가 들끓어 숨쉬기조차 답답해하시자 손으로 가래를 꺼내던 의사는 난데없이 음료수 빨대를 가져오라고 했다.
대체 빨대로 무엇을 하려나하고 의아해하며 가져다주자 그녀는 빨대 한 끝을 아버지 목구멍에 넣고 한 끝은 자기가 물고 가래를 입으로 빨아내는 것이 아닌가?
자식들도 감히 못하는 일을 젊은 여의사가 하고 있었다.
폐암 환자였기 때문에 가래에서 악취가 심하였지만 여의사는 개의치 않는 것 같았다.
그렇게 빨아내기를 몇 십분 정도 하자 가래 끓는 소리가 잠잠해지고 아버지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몇 달 후 아버지는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장례를 치르고 나는 고맙다는 인사를 하기 위해 병원을 찾았다.
그런데 “네??… 의사 보내드린 적 없는데요?”
“분명히 병원에서 왔다고 했는데요?”
“의사 분 성함이 어떻게 되나요?”
“… …”
“아무튼 저희 쪽에서는 의사를 보내드린 적이 없습니다”
여의사의 이름도 몰랐던 나는 헛걸음만 한 채 아쉬운 발걸음을 돌려야했다. 얼마 후 외국에서 한 통의 편지가 날아왔다. 돌아가신 아버지께 온 편지였다.
“선생님 저 유진이에요. 선생님이 참 예뻐해 주시던 유진이… 가끔 저희 집에 쌀이며 반찬이며 놓고 가셨던 거 저 다 알고 있었어요. 그때는 자존심이 상해서 차마 고맙다는 말씀도 드리지 못했지만… 그 못난 제자가 의사가 됐어요. 이 소식을 알면 제일 기뻐하실 선생님을 수소문해 찾았을 때 많이 아프시다는 걸 알았어요. 침상에 누워 계신 선생님을 뵈었을 때 의사가운을 입은 저를 보며 비록 말은 못하셨지만 ‘어서 오렴’ 하고 반겨 주시듯 제 손을 꼭 잡아주신 선생님… 저 알아보신 거 맞죠? 언젠가 제 꿈이 의사라고 하자 선생님은 ‘유진이는 사람의 몸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고쳐주는 훌륭한 의사가 될 거야’ 하셨죠. 그 말씀 지키려고요… 이곳 아프리카 오지에서 환자들의 몸뿐만 아니라 마음도 치유해주는 의사가 되고 싶어요. 선생님도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실 거죠? 사랑합니다 선생님”
이렇게 아름다운 사람들이 있기에 세상은 겨우 버티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작금의 자유 대한민국의 세상이 험난하고 어지럽지만 그래도 아름답게 굴러갈 것이라고 믿어보고 싶다.
왜냐하면 지혜로운 국민들이 이제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겠는가?
그러한 국민들이 위정자들을 반드시 용서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홈페이지관리자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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