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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마을탐방<20> 포효하는 호랑이 기상을 닮은 법전면 척곡2리 개금두들마을

봉화문화연구회 강 필 구

2018년 10월 21일(일) 13:27 [봉화일보 인터넷뉴스]

 

↑↑ 마을 입구에서 바라본 개금두들.

ⓒ 봉화일보 인터넷뉴스

↑↑ 맹호출림의 뒷산

ⓒ 봉화일보 인터넷뉴스

↑↑ 이순석 씨

ⓒ 봉화일보 인터넷뉴스

개금두들은 산전으로 연명한 사람들이 손바닥만 한 땅을 일궈 억척같이 살아낸 기록이다.
개금나무가 많은 야트막한 언덕을 일러 ‘진구(榛邱)’라 했고, 우리 방언으로 ‘개금두들’이라 했다. 두들은 작은 언덕의 우리말이다.
마을이 산 위쪽으로 붙어있어서 쳐다보며 오르는데, 겨우 서너 집이 모여 있다. 동리랄 것도 없지만 꽤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이 동네 위쪽에 삼의실(三宜室)동네가 있는데, 삼의실은 세 명당터가 있다는 곳의 지명이다. 세 명당은 연화부수(淵花浮水)에 닭실권씨 권석충, 금계포란(金鷄包卵)에 전주이씨 이시황, 맹호출림(猛虎出林)에 진주강씨 강찬의 묘터로, 이 세분은 봉화의 석학들이셨는데 모두 이곳에 묻히셨다. 그 중 개금두들은 맹호출림의 기상이 서린 땅이다. 그래서 쳐다보는 마을과 뒷산의 자태가 빼어나다. 범의 머리에 위치한 마을은 잡것들이 범접하지 못하는 위엄과 기상이 있다.
마을의 어른 이순석(80·기묘생)씨를 뵙고 안부를 물었다. “나는 그럭저럭 괜찮아요. 안사람이 풍으로 쓰러져 고생하고 내가 수발하다가 이태 전에 봉화요양원에 보내서 미안하제.”
부인이 사십대 초반에 중풍으로 쓰러져 노인 혼자 5남매를 모두 장성시켜 결혼시키고 누운 부인을 홀로 간호하고, 그럼에도 깔끔한 환경과 환자의 돌봄은 ‘어찌 그럴 수 있지?’하게 감탄을 자아내게 했다고 하는데, 그 당시 법전면장으로 재직한 홍승한 씨가 현장을 보고 전해준 이야기였다.
홍 면장은 당시 그 정성에 감탄했는데, 어려움을 슬기롭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극복하는 모습이 너무 훌륭해서 도에서 주는 ‘아름다운 부부상’을 추천하여 수상도 했다. 이순석 씨 이야기가 곧 개금두들의 역사라 여겨져 더 듣고 싶어졌다.
“마을에 들어오신 내력과 살아오신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내 얘기가 뭐 들을게 있나?” 하면서도 책 몇 권을 쓸 이야기라며 들려주신 이야기는 정말 흥미롭다.
“법전면 소천리 오미에서 태어나고 살았는데 열여덟 살에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고, 우리 여섯 남매와 어머니는 살길이 막막해졌어” “형은 이미 결혼했는데 그나마 아버지의 조그만 유산을 꾐에 빠져 날리고 우리랑 헤어졌지.”
그래서 도망치듯 들어온 이 마을에서 남의 작은 토지를 부치다가 그때 모두 그랬듯 돈 벌러 탄광으로 들어가게 된다. 십여 년을 태백 탄광에서 열심히 일하고 가족이 기다리는 집으로 귀가했다.
이때부터 농사에 전념했는데 일은 끝도 없고 갑자기 부인 임화자 씨가 사십대 초반에 중풍으로 쓰러졌다. 아이들 5남매, 막내가 초등학교 1학년 막막한 삶의 시작이다. 돈도 많이 들었지만 아이들의 교육도 손 놓을 수 없었다.
이때부터 30년의 긴 병간호와 아이들 뒷바라지는 종교의 힘으로 이겨내고 ‘범사에 감사하라’ 라는 말씀으로 극복해 냈다. 삶의 경계에서 고난을 숙명처럼 받아들였던 어려웠던 시대에 벗지 못한 가난의 굴레는 모든 이들의 모습이지만, 그 슬픔과 불행이 조금 더 하고 덜 하고는 작은 마음의 차이였다.
다행히 아이들은 공부를 곧 잘했다. 작은딸은 이화여대에 입학했고, 아들은 계명대에 들어갔다.
돈이 없어도 잘 커준 아이들이 고마웠고 부인의 병은 차도는 없어도 행복했다. 그러나 아들이 추락사고로 척추를 다치는 불행이 또 일어났다. 마음이 요동 칠 때 마다 기도로 버티고, 마음을 추슬렀다.
“이제 나이가 많아 집사람 건사가 힘에 부쳐서 봉화요양원에 맡겼어” 몹시 미안해하는 모습이 안쓰럽다. 일급장애자이지만 정신은 말짱하니, 왜 집 떠나 요양원에 맡기는 것이 미안하지 않겠는가? 긴 이야기를 털어놓고 지난 세월의 회한을 돌아보는 모습에 후회는 없어 보인다.
“동네에 살아보니 어떠세요?” 하고 물었더니, “여기는 전설로 먹고 살았던 동네여. 개금두들은 풍수지리설에 맹호출림의 기상이 있어서 동네에 개를 키우면 안 된대.” 내가 “왜요?”하고 물었더니 “호랑이의 기를 막는다고 하데” 그래서 마을에는 개가 없다.
뒷산은 오후 햇살아래 가을의 화려한 단풍이 동네에 쏟아지듯 내려온다. 이곳은 눈대중으로도 네 집밖에 없다. 그나마 이순석 씨 아랫집은 진주강씨 제사이고, 뒤 가파른 산위의 집은 근자에 귀농한 집이고 바로 앞집 김태성 씨만 토박이인 셈이다.
법전면 소재지에서 4㎞ 정도를 중간들 쪽으로 법전천을 따라 내려오면 관터 입구 달밭에 이르고, 왼쪽으로 삼의실길을 1㎞ 정도 더 올라오면 오른쪽에 맹렬한 기세의 산 아래에 동네가 건너다보인다. 앞을 흐르는 작은 도랑을 건너면 바로 가파른 경사의 길이 굽어져 있고 비탈진 밭에는 사과가 빨갛게 물들어 먹음직하다.
동네의 맞은편 산 계곡은 버드나무골이다. 이곳과 조금 더 위의 재챙이는 넓은 토지가 있어서 모두 삼국시대와 고려시대의 국경지역으로 군사들의 주둔지와 요충지로 둔전을 두고 재창(財倉)이 있던 곳이다. 그래서 이곳은 척박해도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곳이다.
주변의 산들이 몹시 가파르고 계곡은 깊어 햇볕보기 어려운 땅인데, 올해 벌채를 해내고 호두나무와 참나무를 심어 아직은 나무가 어려 마을의 곳곳에 깊은 햇빛을 찬란하게 쏟아놓고 있다. 척박하고 가파르고 좁은 터라서 밭 장만이 어려웠으나, 장비가 좋은 지금은 터를 일구고 특수작물과 과수농사로 알뜰하게 수입을 올리고 있다.
“그래도 좋은 터전인거 같습니다”라고 했더니, 이순석 씨는 “사람 살기 좋은 곳이야. 여기서는 갈 곳이 없는 막힌 곳이었지. 이제는 모두 뚫려있고, 경치 좋고 공기 좋고 산세 좋아 이만한 곳도 없지” “모두 나고 나가면 다 잘살아. 그만하면 좋잖아?” 하신다.
동쪽과 남쪽의 산이 높고 나무가 많아 햇살이 부족했어도 지는 해는 끝까지 비친다. 노인의 한 평생 굴곡지고 파란만장했던 삶이 그를 괴롭히고 짓눌렀어도 그분은 얘기 하신다. “모든 것은 내가 부족하고 게으른 탓이야. 이 땅은 예전에도 지금도 나를 지켜주고 길러주지.”
긴 삶의 여정에서 이순석 씨처럼 남 탓으로 돌리지 않는 잘사는 인생을 살고 싶다.

봉화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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