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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마을탐방<21> 가끔씩 생각나는 각금마을

봉화문화연구회 배 용 호

2018년 10월 28일(일) 13:43 [봉화일보 인터넷뉴스]

 

↑↑ 살지 않는 집은 아무데나 버려져 있다.

ⓒ 봉화일보 인터넷뉴스

↑↑ 살지 않는 집은 아무데나 버려져 있다.

ⓒ 봉화일보 인터넷뉴스

↑↑ 각금마을 유일한 민가.

ⓒ 봉화일보 인터넷뉴스

행정구역상으로는 멀쩡하게 소천면 분천리이지만 <각금마을>은 어떤 교통로로도 접근할 수 없는, 무조건 걸을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는 오지 중의 오지 마을이다.
유일한 접근통로는 ‘낙동비경길’이라고 근사한 이름이 붙여져 있지만 오솔길을 무조건 걸어야만 한다. 하지만 걷다보면 ‘낙동비경길’이 <각금마을> 길을 빌려 쓰고 있다는 것을 단박에 알아챌 수가 있다.
승부역에서 양원역까지는 5.6㎞라고 안내판이 알려준다. 그 중간쯤에 <각금마을>이 수줍은 듯 빠꼼히 모습을 보여준다. 이곳은 요즘 전국 최고의 ‘오지트레킹코스’로 정평이 나 있어 멋을 즐기는 사람들에게는 꽤나 관심거리가 되었지만 <각금마을>은 아무에게나 헤프게 가슴을 열어주는 그런 ‘길 위의 여자’가 아니다.
승부역-각금마을-양원역으로 이어지는 이 <각금마을> 코스는 곧장 가면 2시간 남짓 소요되는 길이다. 그러나 철길 따라 강물 따라 잠겨 있는 산간 오지마을 사람들의 삶의 애환을 더듬거리다 보면 4시간도 턱없이 모자라는 강 길이 된다.
<각금마을>은 그 중간쯤에 주저앉아 있으므로 어느 쪽으로나 십여리 너덜길을 너덜너덜 거려야 닿을 수가 있다. 길이라기보다 반은 흔적이 그려졌다 지워졌다 하는 강줄기 생 바닥이다.
이 흔적들을 헤집고 다녀야 할 정도로 망나니 길이다. 사람들은 ‘원시 자연의 길’이라고 남 말하듯 쉽게 말하지만, 실상 이 오지마을은 어떤 교통기관도 닿기 힘든 산골 안쪽이어서 삶이 팍팍하다. 자전거 바퀴 하나 구경할 수 없는 곳이다. 길이 없으니 농기계 또한 들여 놀 재간이 없다. 차라리 헬리콥터 통행을 검토하는 것이 쉬울 정도로 어느 곳으로나 길을 만들 방법이 마땅치 않다. 당연히 외부 사람들은 들어 올 수가 없다. 숨어서 때를 기다리는 비결파(秘訣派)들의 은둔의 땅이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세상을 등져야 할 가슴 아픈 사람들의 피신처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일제가 물러가고 순전히 우리 힘으로 놓은 철로길 ‘영암선’이 지도에다 선을 그려놓으면서 그나마 인공의 기적소리를 첨으로 들을 수는 있었지만, 그것도 소리뿐이었다.
매번 날카로운 소리만 남겼지 기차는 <각금마을>을 위해 멈추어주지는 않았다. 선로가 마을 앞을 지난다지만 정작 기차를 타려면 십리, 이십리를 걸어 역이 있는 곳까지 나가야 했다. 오히려 잘 다니던 오솔길이 기찻길로 인해 훼손된 셈이었다.
억지로 바위벽에 붙여 놓았던 손잡이들이 지워졌고, 강물을 피해 억지로 그어 놓았던 벼룻길을 철길이 차지해 버렸다. 그래서 마을사람들은 더욱 서운했다. 애써 만든 자신들의 마을길을 멋대로 차지한 철로가 오히려 그들의 통행을 사정없이 막아버렸기 때문이다. 『철길통행금지』.
철저하게 고립된 마을사람들은 죽으나 사나 그 길을 숙명처럼 걸어 다녔다. 마을사람들은 기찻길이 바깥세상을 연결해주는 또 다른 삶의 통로이기를 기대했지만 그 뿐, <각금마을> 기찻길은 ‘가깝고도 먼 당신’으로 돌아서고 말았다.
이웃마을 승부역은 전국 최고 오지의 상징탑 「영암선개통기념비」 덕택에 협곡열차의 중심지가 되었고, 남쪽으로 원곡마을에는 전국 최초의 민자역사(民資驛舍) 양원역이 생겨났다지만, 승부역과 양원역의 정 중간에 위치한 <각금마을>은 그런 혜택에서 제외되었다.
그래서 <각금마을> 사람들은 철길을 넘고, 터널과 철교를 곡예 통행하느라 목숨을 잃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위험을 피하느라 오히려 더 먼 산길과 물길을 돌아다녀야 했다. 시도 때도 없이 기차소리를 들어 줘야 한다는 것이 문명의 혜택이라면 혜택의 전부인 <각금마을> 사람들에게 있어 기찻길은 도리어 장애물로 취급되었다.
벼르고 별러 춘양장이라도 한 번 볼라치면 기차가 마을 앞을 통과할 무렵 무거운 장보따리를 차창 밖으로 내동댕이치듯 던져 놓고 승부역에서 다시 십여리를 걸어와 보따리를 챙겨야 하는 질곡이었다.
그래도 1970년대까지는 13가구가 오손 도손 살았다고 한다. 이후 사람들은 모두 도회로 나가고 노부부만 남았었는데, 그들 부부마저도 20여 년 전 분천 쪽으로 투표길을 나섰다가 열차사고로 사망했다 한다. 이후부터 <각금마을>은 온기를 잃어버렸다. 3만평이 넘는다는 마을은 고스란히 황무지로 남았다.
<각금마을>로 들기 위해서는 ‘하늘도 세평’, ‘땅도 세평’이라는 승부역에서 강물이 다듬어 놓은 물길을 따라 한 시간 남짓 걷는 거리이다. 하지만 그리 만만한 길은 아니다. 게다가 <각금마을>은 아무에게나 헤프게 허락해주는 그런 값싼 마을이 아니었다. 일부러 찾아드는 사람에게 그것도 아주 가끔씩 마음을 열어주는 까칠한 마을인 것이다. 숨어살면서도 근엄하게 체통을 지켜내는 그런 마을이랄까?
그래도 가끔은 작정하고 찾아드는 방랑객에게 슬쩍 가슴을 열어준다는 <각금마을>은 그래서 마을이름이 ‘각금’이 되었을까?
‘각금’은 ‘가끔’의 옛말이라고 국어사전에 나와 있다. 전라도 방언에는 비탈진 곳을 ‘까끔’이라고 한단다.
이를 억지로 한자식으로 표기하여 ‘각금’이 된 것일까. 마을 사람들이 버리고 간 빈집 대문에 쓰여진 ‘覺今’(깨달을 각, 이제 금)이라는 글씨가 보인다. 이제 무엇을 깨달았다는 뜻일까? 아니면 이따금씩 무엇을 깨닫는다는 뜻일까? 이곳 사람들은 <각금마을>을 ‘까끄무’, 혹은 ‘가끄미’라고 부른다. 엉뚱하게 ‘가끔이’의 연철(連綴)일 수도 있겠다는 추측을 멋쩍게 해 본다.
주민들은 이런저런 사연으로 고향을 버렸고, 지금은 몇 남지 않은 빈 집만이 돌아오지 않을 주인을 기다리다 지쳐 주저앉고 있다.
그야말로 이런 곳에서 사람이 살았을까 싶을 정도인데, 이런 곳에서도 마시고 버린 빈 술병들의 무덤이 이 마을 역사를 증명이나 하려는 듯 편하게 봉을 이루고 있다.

봉화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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