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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마을탐방<30> 거유(巨儒)의 발자취가 남은 수식리 원당마을

봉화문화연구회 이 기 락

2018년 12월 23일(일) 14:41 [봉화일보 인터넷뉴스]

 

↑↑ 동네 입구 우측 언덕에서 본 마을 전경.

ⓒ 봉화일보 인터넷뉴스

↑↑ 아계사당.

ⓒ 봉화일보 인터넷뉴스

↑↑ 함창김씨 묘.

ⓒ 봉화일보 인터넷뉴스

수식리는 물야면 소재지에서 서쪽으로 가장 멀리 떨어진 지역으로 영주시와 경계를 이룬다. 물이 쉬어 간다는 水息里(수식리) 가운데로 압동리 조양, 두문리의 서들기, 샘실, 말문 등 여러 골에서 내려오는 물이 완만한 경사의 계곡을 따라 행계서원 앞을 지나고, 부석면 상석, 감곡에서 내려오는 물과 합쳐 봉화읍 화천을 지나 도촌에서 내성천에 합류한다.
수식리 자연부락 중 하나인 원당골로 불리는 원당마을은 북벽(北壁) 김홍제(金洪濟, 1661 ~1737) 선생이 살았던 삼원당 당호(堂號)에서 비롯된 것으로 전해지며, 대사헌과 대제학, 형조판서를 지낸 아계(丫溪) 김일경(金一鏡, 1662~1724)을 모신 아계사당(丫溪祠堂)이 있다.
가평리 계서당 앞길을 따라 이애재를 넘어 두문리를 지나 수식 1리 마을 회관으로 향했다. 회관에는 안어른 두 분만 계셨는데 원당골을 물으니 “좀 더 내려가 왼손 편 인삼밭 옆길로 들어가면 된다.”라고 하신다.
마을 들어가는 입구에 표지석이 있어 쉽게 마을로 들어가니, 왼쪽 방향 막다른 길에서 <아계사당>를 쉽게 만날 수 있었다.
건물은 세운 지 오래되지 않았고 종손이 안내판을 세워, 아계公에 대한 설명은 충분히 해주고 있는데 빈집 같아 이웃 마을에 살고 있는 후손 김선근(71)씨에게 물으니 “시신을 수습 못해 별묘로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낸 사당인데 4~5년 전 위폐를 예천 단소(壇所)로 옮겨가고 지금은 빈 사당이네요.”라고 한다.
다시 원당골 안으로 더 들어가 꼭대기 집 김갑동(72)씨를 만났다. 안동김씨로 부친 때 이곳에 들어와 살기 시작했고 소 몇 마리와 사과, 복숭아 농사를 주로 한단다.
<도원농가>라는 허름한 나무 표지를 세워 놓았기에 “왜 <도원 농장>으로 하지 않고 농가로 써 놓았느냐”라고 물으니 규모가 작아 그리 썼다고 겸손해 하신다.
마을 보호수와 당집에 대한 물음에 “수십 년 전 당집과 당소나무는 사라졌고 백년 된 향나무는 마을 입구에 서 있다”라고 한다.
동네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 물으니 “광산김씨가 세 집, 안동김씨가 세 집, 고령박씨 등 새로 귀농한 사람 합해 총 11가구가 살고 있다”라고 한다.
나오는 길에 구지뽕 수확이 한창인 김화용(52)씨 부부를 만났다. 이것 저것 궁금해 물으니, 아직 현직(거제 조선소)에 근무하고 있는데 5년 전 이곳에 터를 잡아 구지뽕 나무를 심었으며 수확시기가 조금 늦었다며 맛보라고 준다. 부인은 구지뽕의 효능을 열심히 설명하고… 저런 열성적인 젊은 부부가 많이 귀농, 귀촌해야 농촌이 산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인삼 밭과 축사가 들어선 마을 원당골 -숙부인 오수(仵叟) 김강과 함께 행계서원에 배향된 북벽 선생이 실제 원당골에 살았는지가 궁금해 이웃 마을에 사는 후손 김창규(76)씨를 찾았다. “기록은 없으나 북벽 선조가 원당골 지금의 아계사당 자리 밑에 살았다”라고 어른들로부터 전해 들었단다.
아계 김일경 公은 조선 성종 때 좌의정을 지낸 국광(國光)의 9세손이며 부친은 생원 하중(夏中) 이다. 숙종 13년(1687) 생원·진사시에 합격하고 숙종 25년 증광시 문과 급제한 후 홍문관 교리, 사헌부 지평, 사헌부 사간을 거쳐 경종 때에는 사헌부 대사헌, 예문관 대제학, 병조 형조 판서를 역임한 문관이다.
영조 원년(1724년) 당쟁의 소용돌이 속에 제주도로 유배되었다가 서울 당고개에서 처형되었다고 한다.
한 살 차이 나이로 같은 시대에 살다간 두 분이 한분은 학덕 높은 선비 유학자로 한 분은 대사헌·대제학을 지낸 높은 문관으로 이곳 원당골에 같이 살았던 흔적이 남아 있는 게 신기하다.
원당골 왼쪽 산등성에 커다란 묘지가 보여, 어느 집안 묘인가 궁금해 산등성을 올랐다.
성균관 전적을 지냈다는 함창(咸昌)김씨 묘였다. 북벽 선생의 선성김씨도 아계공의 광산김씨도 아닌 함창 김씨들 묘란 것이 참으로 아이러니 하다.
생거진천(生居鎭川)이요. 사거용인(死居龍仁)이란 말이 떠오른다. 살아서는 진천 땅이 좋고 죽어서는 용인 땅에 묻히는 것이 좋다는 말인데, 여기 원당골은 선성김씨가 마을 이름을 만들고 광산김씨가 삶의 터전를 만들어 살고 사후 자리는 함창김씨가 차지하는 것 같아서이다.
마을을 나오면서 보니 향나무는 제멋대로 자란 넝쿨이 감아 올라가 있고, 당집과 당 소나무가 있었다는 그 자리에 가니, “竹山處士光山金公諱益中之墓”(죽산처사광산김공휘익중지묘)라는 묘가 자리하고 있다.

봉화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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