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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마·을·탐·방 <35> 구름 위에 얹힌 마을, 구름재

2019년 02월 17일(일) 15:16 [봉화일보 인터넷뉴스]

 

봉화문화연구회 배 용 호

↑↑ 오른편으로 문명산이 보이는 구름재마을 전경

ⓒ 봉화일보 인터넷뉴스

↑↑ 마을 건너편 청량산 하늘다리가 어렴풋하다

ⓒ 봉화일보 인터넷뉴스

↑↑ 운산정은 늘상 구름을 안고 있다

ⓒ 봉화일보 인터넷뉴스

↑↑ 마을 앞에 운산서원 흔적비가 있다.

ⓒ 봉화일보 인터넷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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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산(894m)은 청량산 뒤쪽에 자리 잡고 있어 청량산 보다 24m나 더 높지만 청량산의 유명세에 가려 잘 보이지 않은 산이다.
사실은 청량산이 자신을 희생해가며 애써 감춰둔 비경이 문명산이 아닐까? 문명산에서는 멀리 태백산, 문수산과 그리고 일월산, 만리산, 청량산을 모두 조망할 수 있는 명산이다. 청량산이 대중 앞에 당당히 나서는 산이라면, 문명산은 베일에 슬쩍 가려있는 신비스런 산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이름에 비해서는 턱없이 문명스럽지 않은 산이다. 그러기에 이 산은 어쩌면 신선(神仙)이 마지막으로 남겨둔 선계(仙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청량산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문명산에도 간간히 찾아드는 사람은 있는데, 이들은 산 이름만 보고 성큼 달려든 그런 풋내기 사람들이 아니다. 오랫동안 별러 여러 차례 탐색을 해 두거나 전문가의 안내를 받지 않고서는 선뜻 나서기가 쉽지 않은 산이기 때문이다.
그런 문명산 서쪽 자락을 붙잡고 있는 마을이 있었다.
구름도 쉬어간다는 구름재마을(해발 600m)이다. 동쪽으로는 옥산마을이 자리 잡고 있고 서쪽으로는 만리산도 보인다. 구름재를 운산(雲山)이라고 부르기도 한다니 구름재의 한자식 표현인 모양이다.
구름재마을은 마을이라기보다는 그냥 벌판이다. 한때 20여 가구가 살았다지만 지금은 거의 없어진 마을이 됐다.
문명산의 영향인지 일찍부터 ‘문명’을 찾아 모두들 떠나고 자취가 거의 사라졌다. 다만 흔적을 다 못 지운 딱 한집 허름한 농가만이 버려진 5만여 평의 벌판을 지키면서 옛 마을의 영화를 고집스럽게 증언해주고 있다.
산 아래에 있는 본 마을과는 십리 정도 떨어져 있다.
말이 좋아 십리이지 높고 험한 산길 십리 길은 전문 산악인도 혀를 차는 십리길이다.
마을이름을 한자식으로 ‘운산’이라고 쓴다지만 사실 ‘구름재’의 어원은 하늘에 떠가는 구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심하게 구불구불대는 모양을 일컫는 순수 우리말이라고 한다. 그런 이름이 마을에 붙여질 정도이니 얼마나 힘들게 올라야 하는지 대충은 짐작이 갈 것이다. 그래도
지금은 농사지을 경운기 길은 텄지만 너무 심한 급경사여서 무턱대고 차를 들이댈 수는 없는 난코스이다.
심한 경사 길을 매달리듯 오르다 보면 차가 뒤집히지나 않을까 갑자기 엔진이 꺼지지나 않을까 두려워 지천으로 핀 야생화 따위가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모퉁이를 돌 때마다 뒤돌아보는 경관이 아찔아찔하기만 하다.
오죽했으면 <차량오프로드대회장>이 되었을까?
먼 나라 얘기로만 듣던 차량오프로드대회가 이곳에서 열렸다니 신기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가만히 생각해보면 여기 같은 오지가 아니면 어디서 그런 오프로드경기장을 꾸밀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곳 구름재의 경사 심한 한계농지를 이용하여 2008년, 2009년 연이어 차량오프로드대회를 개최했고, 야생화원과 함께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오프로드경기장으로 갈채를 받았다고 한다.
봉화군 명호면 북곡리 1170으로 주소가 나와 있다. 하지만 마을 입구는 항상 쇠사슬로 막혀져 있어 사전에 허락을 얻어야 한다.
구름재 들판 중간쯤 되는 구렁에는 ‘雲山亭(운산정)’이라는 현판을 목에 건 정자 하나가 외롭게 햇볕을 쬐고 있다. 지헌(芝軒) 정사성(鄭士誠)을 모시는 정자라고 한다. 보통의 정자가 학자의 호를 따는 것이 일반적이니 그렇게 보면 이 정자는 ‘지헌정’이라고 해야 옳을 법한데 특이하게도 마을이름을 빌려 왔다.
‘雲山亭’, 그처럼 산정마을 구름재가 강한 인상을 줬다는 뜻일까? 들판 한 귀퉁이에서 보면 마을이 구름 위에 얹혀 있다는 느낌은 분명하다. 게다가 낙동강 굽이에서 올라오는 시원한 강바람마저 알맞게 섞여지면 갑자기 신선이 돼버린 자신에 깜짝 놀라기도 한다.
구름재마을은 지헌 정사성이 임진왜란 때 태조 영정을 모시고 피란한 곳이다.
안동 태생인 정사성은 퇴계문하에서 수학하고, 1592년 경주의 집경전(集慶殿-태조 영정을 모신 곳) 참봉(參奉)을 제수 받는다.
그러던 중 왜란이 일어나 동래, 울산이 함락되자 태조의 어진(御眞)을 모시고 험산 길을 돌아 천신만고 끝에 아무도 찾지 못할 이곳 하늘마을 구름재에 은거하였다. 하늘 위에 얹힌 구름재[雲山]이니 인간의 신분으로서는 도저히 찾아낼 도리가 없었으리라.
그렇게 어진을 목숨 걸어 봉안한 공로로 그는 나중에 양구현감에 제수된다.
그리고 이 마을 땅도 함께 하사 받아 동족부락을 꾸미게 된다.
지금도 구름재마을 땅 5만여 평이 모두 청주정씨 종중재산으로 등록되어 있다 한다.(익명, 59세)
이런 대단한 충신의 피는 후세로도 이어지는 법일까?
1950년대 운산서당을 운영했던 운암 정세원 선생을 기리는 비석이 말끔한 얼굴로 서 있다.
배움 길을 찾기 어려운 아이들을 걱정하여 마을 아이들에게 천자문을 가르쳤다는 내용이다.
학생들을 무상으로 가르친 선생이나 그 거룩한 뜻이 잊혀 질세라 고마운 마음을 비석에 새겨 간직하겠다는 제자들이나 하나같이 구름 위의 신선들 같아 보인다.

홈페이지관리자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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