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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의사의 선비정신

2019년 03월 10일(일) 13:58 [봉화일보 인터넷뉴스]

 

↑↑ 박하식- 소설가

ⓒ 봉화일보 인터넷뉴스

안중근의사는 1907년 암울한 조선의 명성왕후 시해사건 이후, 고종황제가 일본에 의해 강제로 폐위되자 강원도로 숨어들어 의병을 일으켰다.
일본의 강압에 못 견디게 되어, 다시 울라디보스토크로 가서 연해주의 한인촌을 돌아다니며 의병 300명을 모집한다.
이범윤 김두성을 대장으로 추대하고 자신은 총참모총장이 되었다. 두만강을 무대로 나무숲속에서 진공작전훈련을 하고, 함경북도 경흥군 노면에 주둔하고 있는 일본군 수비대를 습격해 격파한다.
그는 사로잡은 일본군 병사들을 석방해 준다.
1909년 3월 2일. 30세의 피 끓는 안중근의사는 노브키에프스크에서 의병활동을 함께하던 김기룡, 황병길, 강기순, 유치현, 박봉석, 백낙규, 김두찬, 김백춘, 김춘화, 정원식, 우덕순, 조도선 등 12명이 모여 ‘단지회(斷指會)’란 비밀결사대를 조직한다.
새끼손가락 한마디씩을 자르고 생사를 같이하겠다는 혈맹을 맺는다.
“우리는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3년 안에 암살하지 못하면 자결로 조선 민족 앞에 죽음으로 갚을 것을 맹서한다”라고 굳은 혈맹을 맺는다.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아니, 전 세계가 무서워 벌벌 떠는 이토 히로부미를 안중근 의사는 “그까짓 여우새끼 같은 놈 내 주먹 안에 있다. 한주먹에 때려잡겠다”라고 맹서한다.
하늘은 무심치 않았다.
안중근의사의 피눈물 나는 간절한 염원을 들어주었다. 일본어를 열심히 공부하고 있던, 그해 9월 울라디보스토크 ‘원동보(遠東報)’와 ‘대동공보(大東共報)’ 신문에 이토 히로부미가 북만주 시찰을 명목으로 러시아의 대장대신(大藏大臣) 코코프체프와 회담을 하기 위하여 러시아에 온다는 보도가 났다. 이제는 일본까지 갈 필요가 없다. 하얼빈과 채가구(蔡家溝)를 거사 장소로 정한 후 채가구에는 우덕순과 조도선을 배치하고, 자신은 하얼빈역을 담당하기로 했다.
10월 26일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가 코코프체프와 열차 안 비밀회담을 마친 다음 러시아 의장대를 사열하려고 플렛폼 환영군중 쪽으로 가는 순간, 이토 히로부미에게 권총을 3발 쏘아 명중시켜 죽인다. 그러고는 하얼빈 총영사 가와카미와 궁내대신 비서관 모리, 만주철도국 이사 다나키에게 각각 한방씩을 쏘아 중경상을 입혔다.
그리곤 두 팔을 들어올려 “대한민국 만세!”를 하늘 높이 외친 다음 스스로 체포되었다.
소련의 조사과정에서 안중근의사는 “나는 한국의 의병참모총장”이라고 밝히고, “이토 히로부미는 대한민국의 주권을 침탈한 원흉이며, 동양평화를 무너뜨린 교란자이므로 죽어 마땅하다.
대한의용군사령관의 자격으로 세계 평화를 위해 총살한 것이며, 안중근 개인으로 한 행위가 아니다. 이는 살인이 아닌 정당방위이며, 의인이 한 행위이다. 그러니 일본법은 나에 대한 재판을 할 권리가 없으며, 세계 만국의 인권재판위에서만 나를 재판할 권리가 있다”라고 당당히 밝혔다.
그리고 “일본은 멀지 않아 꼭 망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러시아 재판관의 조사를 받은 다음 일본 측에 인계되어 일본이 관할하는 만주 뤼순감옥으로 넘어갔다.
낙양에 조선군관학교를 설립하는 등 동병상련으로 조선의 독립운동을 음양으로 돕던 장제스(蔣介石)총통은 안중근의사가 하얼빈역두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쏴죽이자, “참으로 장하다! 중국의 14억 인구가 조선의 안중근의사 하나만 못하다”라고 탄식했다.
또 “영혼 없는 국민 14억이 있은들 무엇 하며, 그것은 썩은 거름더미 보다 나을게 없다”라고 한탄했다.
안중근의사는 1910년 2월 14일 사형선고를 받고 3월 26일 만주 뤼순감옥에서 사형집행을 당했다.
안중근의사는 뤼순 감옥에 있을 때 ‘동양평화론’ 책을 쓰고, 보물 제569호인 일일부독서구중생형극(一日不讀書口中生刑棘 책을 하루만 안 읽으면 입에 가시가 돋는다.) 년년세세화상사(年年歲歲花相似 해마다 피는 꽃은 같은데) 세새년년인부동(歲歲年年人不同 해마다 태어나는 사람은 같지가 않네.) 견이사의견위수명(見利思義見危授命 이익을 생각지 않고 정의를 보면 위험을 무릅쓰고 목숨을 바친다.) 등 200여 점의 보물 글씨를 남겼다.
안중근의사의 이 같은 인격형성의 정신은 어디서 온 것인가. 바로 단군의 후손 ‘홍익인간’, ‘이화세계’의 정신에서 온 것이다.
그것이 ‘한국의 선비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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