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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마·을·탐·방(38)고고한 삶을 이어가는 신라리 임당마을 사람들

봉화문화연구회 최 종 화

2019년 03월 10일(일) 15:03 [봉화일보 인터넷뉴스]

 

↑↑ 임당마을 전경

ⓒ 봉화일보 인터넷뉴스

↑↑ 김해김씨 삼현파(문민공파)세거기념비

ⓒ 봉화일보 인터넷뉴스

↑↑ 김상식 선생의 시 경광춘화

ⓒ 봉화일보 인터넷뉴스

↑↑ 1956년 김문두집사가 세운 신라교회

ⓒ 봉화일보 인터넷뉴스

↑↑ 마을 가운데 세워진 ‘애향 임당 ’

ⓒ 봉화일보 인터넷뉴스

봉화에서 13시 10분에 출발하는 신라행 시내버스를 타고 13시 50분에 옛 신라초등학교 앞을 지나 종점인 임당마을에 내린다.
마을 한가운데 마련된 종점엔 버스한대가 겨우 회전 할 수 있는 시멘트로 포장된 마당이 있었다.
해발 500m의 산들로 둘러싸인 마을이 길손을 정답게 맞이해준다.
봉화군의 제일 남쪽 마을인 임당엔 김해김씨 삼현파 후손들이 세거하는 집성촌이다.
이 마을의 문장이신 김석기 (85세)어른과 김선재씨를 만나 임당마을의 이야기를 자세히 들어본다. 신라리의 명칭은 ‘신라의 왕자가 머물렀다가 갔다’는 전해오는 이야기에서 신라(新羅)라는 마을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임당 마을 뒷산을 넘어(2km) 안동시 도산면 태자(太子)리 와는 그 옛날 신라 말의 혼란기에 피난 온 신라 왕자 일행의 행적이 마을 여기저기에서 보이는 듯했다.
마을을 최초로 개척할 당시 소나무 숲이 울창한 가운데 연못이 있다하여 오늘날의 임당으로 마을 명칭이 붙여졌다고 한다.
임당 마을 중앙에 있는 평편한 바위위에 洛雲洞天 이라고 새겨진 비석이 있다.
1996년에 세워둔 비석으로 낙운이란 가락김씨의 洛(락)자와 상서로운 구름을 뜻하는 雲(운)자를 따서지은 글귀라고 한다.
이 글귀는 바로 임당마을엔 가락국의 후손으로서의 자긍심을 지키면서 신선과 같이 고고한 삶을 실천하는 사람들이모여 사는 동네라고 말씀하신다.
이 마을 김해김씨는 무오사화 때 희생된 탁영 김일손 선생의 직계 후손들이다.
이 사실을 기록한 비문(2018년 건립)을 읽으면서 조상의 얼을 기리고 자랑스러운 후손으로서의 긍지를 살려나가는 일족이 오늘의 고결한 삶을 이어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조상의 올바른 선비정신을 구현하신 구한말 김상식 선생은 임당에서 훈장을 하시면서 신라일대와 안동의 지심골 매정동의 학동 30여명을 모아 글을 가르치셨다고한다.
당시 학동들의 천자문 읽는 소리가 청아하게 들리는 듯하다.
선생의 시 한수를 올려본다.
景光春花
경광산의 봄꽃
역 이창경

景光臺下萬秀花
경광대아래 많이도 핀 꽃은
蘂蘂笑滣別有佳
꽃술마다 웃는 입술 특별히 아름다움이 있네.

樹樹占紅飛蝶舞
나무마다 붉은 점찍어 날으는 나비 춤추고

枝枝生色和蜂歌
가지마다 빛이나니 화답하는 벌이 노래하네.

微風南陌靑春滿
가는 바람 남쪽언덕엔 젊음이 가득하고

不雨西天白日斜
비오지 않는 서쪽하늘엔 흰 해가 비꼈네.

碧水靑山餘造物
푸른 물 푸른 산은 조물주가 남긴 것이니

取之無限屬誰家
취하여도 한이 없으니 누구의 집에 붙일 고?

김석기 어른은 임당마을은 지극한 오지라고 말씀하시면서 유년시절에 콩15되를 짊어지고 예안장에 가서 검정고무신 한 켤레를 바꾸어 오던 추억담을 들려주신다.
주변의 봉성장, 봉화장, 상운장 예안장 들을 보는데 꼬박 하루씩이나 걸리었다고 한다.
처음 마을에 버스 노선이 개통되었을 때 ‘승객이 적으면 노선이 취소될까’ 걱정이 되어 주민들이 순번을 정해두고 일 없이 버스를 타고 봉화에 오고 가고했던 당시의 고충도 들어볼 수 있었다.
그리고 안동시 녹전면에서 신라로 들어오는 새마을 길을 닦을 때 삽과 곡괭이로 땅을 파고 지개로 흙과 돌을 저 나르면서 일했던 추억담도 들을 수 있었다.
오늘날 포크레인으로 쉽게 해낼 수 있는 일을 수개월에 걸쳐서 인력으로 길을 닦았다니 수고로움이 얼마나 많았는가를 짐작이 갔다.
그 때의 노력으로 안동에서 임당으로 들어오는 자동차 길이 열리었다고 하며 당시 기부해주시던 분들을 기리기 위해 턱걸바위 근처에 비석을 세워두었다고 한다. 눈이 오는 날엔 신라리의 주민들이 문촌리에서 신라재를 오르는 급경사 응달 길의 제설작업을 위해 모두모여 우선적으로 협동 작업을 한다고 한다.
이 길이 막히면 신라리의 주민들은 봉화쪽으로 출입을 할 수 없는 외딴섬이 된다고 김관선 이장님이 들려준다.
임당마을 중앙에 새마을 정신이 담긴 愛鄕林塘을 새겨둔 비석이 있다, 崇祖敬老, 勤學所望, 子孫賢傳의 문구가 오늘날 마을사람들의 일상생활의 좌표가 되었다고 본다. 임당마을 분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벌써 해넘이 산 그림자가 길에 드리운다.
마침 상운초등학교의 통학택시가 어린이를 하차시킨다.
2명의 어린이들이 택시를 이용하여 학교에 등하교를 한다고 한다. 참 좋은 세월이다.
등하교를 시키고 있는 신현철 기사는 보람 있는 일중의 하나가 이들 어린이들 등하교를 시키는 일이라고 했다.

홈페이지관리자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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