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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마·을·탐·방 (43) 정자는 없지만, 봉성면 금봉2리 육송정(六松亭) 마을


2019년 04월 14일(일) 15:26 [봉화일보 인터넷뉴스]

 

봉화문화연구회 김 옥 랑



↑↑ 금봉저수지.

ⓒ 봉화일보 인터넷뉴스

↑↑ 영해박씨 야목문중 세거비

ⓒ 봉화일보 인터넷뉴스

↑↑ 육송정 마을 전경.

ⓒ 봉화일보 인터넷뉴스

봉화의 봄은 산수유와 함께 깨어난다.
작가 김훈은 “ 산수유는 다만 어른거리는 빛의 그림자로서 피어난다. 그러나 이 그림자 속에는 빛이 가득하다. 산수유가 언제 지는 것인지는 눈치 채기 어렵다. 그 그림자 같은 꽃은 다른 모든 꽃이 피어나기 전에 노을이 스러지듯이 문득 종적을 감춘다. 그 꽃이 스러지는 모습은 나무가 지우개로 자신을 지우는 것과 같다. 그래서 산수유는 꽃이 아니라 나무가 꾸는 꿈처럼 보인다.” 라고 썼다.
가을의 열정적인 빨간 열매를 아직까지 달고 있는 마른 가지 사이로 지워지듯 피고 있는 산수유 꽃길을 달려 금봉2리 대추정 마을 옆 계곡인 육송정(六松亭) 마을을 찾았다. 이 마을의 이름은 여섯 그루의 큰 소나무가 쌍둥이처럼 서있어서 마치 정자처럼 행인들이 쉬어가기 좋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봉화읍에서 36번 국도를 따라 춘양방면으로 가다보면 동양리 용머리 마을 입구에 금봉2리와 와란으로 향하는 외곽도로가 나 있다. 천성사와 옥류암 안내판을 따라 조금만 더 가면 느티나무 숲이 보이고 숲 앞에서 왼쪽으로 향하는 도로를 따라 가다보면 한국수자원공사 금봉저수지라는 글자가 보인다. 둑 오른쪽으로 크게 휘어진 도로를 따라 오르면 넓은 저수지가 보인다.
4대강 사업의 하나로 2015년 증설된 금봉저수지다.
저수지 위에 오르면, 종가가 수몰된 이후 그 내력을 기록하여 세워 놓은 영해박씨 야목문중 세거비가 보인다. 거기를 지나 저수지를 왼쪽으로 두고 도로를 따라 오르면 대추정 마을이 보이고, 길 오른쪽으로 큰 저장고 옆 작은 다리를 지나면 육송정 마을이다.
봉화읍내에서 약 10킬로미터의 거리이다. 금봉저수지를 지나 저장고 앞에 차를 세워두고 오르막길을 따라 걸으면서 마을을 답사했다.
봄을 맞이한 산촌은 과수원마다 약제 살포다 거름내기에 바쁘고, 사과나무는 이제 겨우 참새주둥이 같은 뾰족한 새잎이 돋는데 자두나무는 벌써 꽃이 한창이다.
사과나무 사이에 난 길을 따라 걷다 보니 어느새 마을의 끝이다. 온 들판이 사과나무 천지인데 사과 꽃이 필 때 왔드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오르막을 오르다 보면 길가 산자락에 자리 잡은 집들이 보인다. 일제 강점기와 6.25전쟁을 겪으며 기존에 살던 화전민들과 토박이들은 다 어디로 가고 지금은 1960년대를 전후하여 이주한 원주민 아닌 원주민들만이 과수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고 있다.
마을지명의 유래가 된 여섯 그루의 소나무는 보이지 않지만 길 끝, 육송정농원의 뒤편에 우뚝하니 자란 소나무 숲이 마을을 지키듯 서 있다.
현재 거주민은 각성바지 6가구이나, 몇 년 전 귀촌하신 구씨 성을 가진 분은 아직 외부에서 생업에 종사하고 계시다고 하니 실제 거주민은 5가구 11명이라고 한다.
60년대 전후하여 이주하신 분들이니 그동안의 역
사나 전래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 수 없다고 하시면서도, 주변의 산에 많은 한양 조씨들의 산소나 남양 홍씨들의 산소, 그리고 300여년 전 와란에 대나무 밭을 베어내고 마을을 일궈낸 한양 조씨들이 터를 잡은 이야기등 옛 어른들의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있다고 하나 원주민이 모두 떠난 이곳에서 사실을 찾아낸다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마을의 길이 끝나는 지점에서 오른쪽으로 돌아드는 마지막 집이 육송정 농원이다. 늘 사람 좋은 미소를 띠고 뭐든 넉넉히 주시는 내외분께 육송정 마을의 이야기를 청해 들었다.
육송정 농원을 일구고 지키고 계신 최일순님(73)에 따르면 처음 25세에 이곳에 땅을 사고 들어올 때만 해도 주변산은 광산의 갱목으로 나무들이 모두 잘려나가 앞 능선이 훤하게 보였다고 했다. 그런데 50여년이 흐르는 세월이 어느새 산등성이에
빽빽한 숲을 새로 만들었다며 기억을 풀어 놓으셨다.
육송정 마을로 들어와 농사를 짓기 시작한 이유로 부인 고숙자님(70)과 결혼하려고 그랬다고 웃으며 말씀하셨지만, 평소 마음에 두었던 땅이 인연이 닿아 매입할 수 있어 자리 잡았다고 하였다. 처음 농사는 담배와 콩, 벼등을 지었지만, 서리가 내리지 않고 토질이 좋아 1976년경부터 사과농사를 시작했고, 처음 한두 집이 사과 농사를 짓기 시작하다가 지금은 금봉2리 전체가 사과를 재배하여 봉화 사과의 주산지로서 사과재배 기술은 물론 맛 역시 전국 최고라고 했다.
20여 년 전만 하더라고 농사수익만큼 산에서 채취하던 버섯이나 임산물 수익이 많아, 산촌이긴 해도 자식들을 외지로 보내 대학교육까지 시키는 것이 가능했으나 최근 들어서는 송이버섯은 물론 능이나 잡버섯 역시 양이 줄어 수익이 얼마 안 된다며 버섯 양이 많아야 먹는 사람도, 파는 사람도 힘이 나는데 이젠 량이 줄어 안타깝다 고 걱정 했다.
5가구 모두 자경하는 과수원을 가지고 비교적 높은 수익을 얻고는 있지만 가을 틈틈이 얻던 농외소득이 줄어 아쉽기도 하겠지만, 오랜 시간 산과 더불어 살며 산을 누비던 아쉬움이 더 큰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5가구 모두 50대 후반 1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6,70대인 주민들이라 현재 봉화의 인구의 노령화를 바로 보는 것 같아 걱정스럽기도 했지만 다행히 최일순님 댁에는 외지에서 공부를 마치고 돌아온 막내아들이 농사를 함께 짓고, 거실 가득 아이들 사진이 걸려 있어 웃음이 절로 났다.
아들인 최중철씨(41)는 30대 초반에 귀농하여 부모님과 함께 과수농사와 더불어 임업후계자로서 1입지를 다지고 있다고 하니 마음이 든든해진다. 서울처녀와 결혼하여 고향에서 농부로서의 삶을 개척하고 있는 젊은이에게 따뜻한 격려를 보낸다.

홈페이지관리자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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