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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마을탐방<24> 호리병속의 꿀 같은 맛을 지닌 마을 맛질(법전면 어지2리)

봉화문화연구회 강필구

2018년 11월 18일(일) 15:04 [봉화일보 인터넷뉴스]

 

↑↑ 대담에 응해준 주민의 옛 법전지도

ⓒ 봉화일보 인터넷뉴스

↑↑ 서낭당 뒤 빈집을 지키는 빈 광주리

ⓒ 봉화일보 인터넷뉴스

↑↑ 마을 입구를 지나 마주하는 서낭당

ⓒ 봉화일보 인터넷뉴스

↑↑ 서낭당에서 바라본 쇠장골 전경

ⓒ 봉화일보 인터넷뉴스

봉화군을 동서로 신작로가 관통하면서 길을 따라 옹기종기 모여든 마을들은 태백산아래 자리 잡은 봉화의 특징이다. 길이 없던 시절은 말할 것도 없고 마을과 마을을 잇는 소로들이 채 완성되기 전까지 봉화 곳곳은 깡촌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마을들이 대부분이었다.
‘맛질’은 법전면 어지2리에 속하는데, 어지리(於旨里)의 마을이름을 정할 때의 에피소드는 안타깝다. ‘여기의 동명은 무엇으로 할까요?’하고 묻는데 높은 분이 손가락으로 말없이 가르키는 것으로 ‘어지리’로 결정했다는 뒷말은 차라리 어이없다.
36번 국도상의 녹동역 앞에서 유턴을 해서 옛길로 500여 미터를 되돌아 내려가다가 우측의 산자락을 ‘맛질길’ 따라 마을로 들어간다. 입구에서 마을이 보이지 않게 완만하게 굽은 산자락이 개천과 함께 한가로운 흐름으로 길게 이어지는데, 입구에서부터 호리병 목을 지나는 거리가 칠백여 미터는 족히 되어 보인다. 들어가는 입구의 진입로가 좁아 마주 오는 차를 피하려면 조심해야 한다. 마을에서는 길을 넓혀 달라고 군에 민원을 많이 제기한다고 한다.
호리병의 홈홈한 어깨가 나타날 즈음 비스듬히 도는 산길 앞에 마을의 서낭당이 길손을 검색한다. 동네 길을 내기 전에는 더 아늑했을법한 서낭당은 금색 줄에 묶여있고, 뒷집은 이미 주인이 떠나고 빈광주리만 벽에 걸려 있다. 오래된 소나무와 느티나무가 당수로서 서낭당과 함께 마을의 안녕을 지키고 있다. 서낭당 앞에서니 마을이 조금 높아 보이지만 모두 조망할 수 있는데, 온 마을은 남향으로 황금빛 햇살을 받아 그늘진 곳은 찾을 수 없다.
가운데 뻗은 산자락을 두고 양쪽에 긴 골이 팔을 벌려 선듯 한데, 오른쪽골이 ‘쇠장골’이고 왼쪽골이 ‘맛골’이다.
쇠장골은 현동에서 ‘가마골’과 ‘높은터’를 지나 춘양으로 가는 통로이고 맛골은 녹동과 눌산 쪽에서 올라온 사람들이 마을 입구로 들어와서 관석재와 춘양재를 넘어 춘양장으로 넘어가는 통로이니 맛골은 춘양의 동쪽과 남쪽에서 들어오는 길목에 있는 셈이다.
지름길로서도 쉬어가는 자리로도 중요한 위치에는 자연히 주막이 생겼고 음식과 술을 팔고 사람들의 휴식처로 인기가 있었는데, 특히나 음식 맛이 뛰어난 주모의 소문으로 ‘맛질’로 불렸다. 한자로 표기를 하자니 미곡리(味谷里)가 된다.
‘쇠장골’은 많은 소를 키우던 장소여서 붙은 이름인데, 어르말에서 넘어오는 고개로 연결되고 그 위에는 가마골이 있는데 곧 오래전에 기와를 굽던 ‘와싯골’을 부르는 이름이다.
마을은 가운데 산을 양쪽 골이 오목하게 휘어 감싸 안은 호리병인데, 바깥의 산이 양쪽 계곡을 또 싸안은 형상이다.
마을 가운데로 뻗은 산 아래 정남향의 정겨운 집이 있어 찾았더니 주인장이 나온다. 오십대의 주인과 마을 이야기를 나눈다. 젊은 분이 마을을 잘 알까 싶었는데 자세한 내력과 이야기를 들어서 기억하고 있었다. 마을이름의 유래와 마을 이야기를 물었다.
“옛날에는 24가구가 사는 큰 마을 이었어요.” 지금은 열한집이 있는데 여덟 집만 사람이 살고 있고 집중되지 않는 집들이 산재해서 꼼꼼히 세지 않으면 몇 집인지 찾기 어렵다. “여기는 오래 산 집들은 없고 우리 집이 할아버지가 관석에 살았는데 맛골로 넘어와 사시다가 지금 터로 이사 왔으니 제일 오래 되었니더.”
“처음에는 동네이름이 ‘맞은편에 나있는 길’을 가리키는 ‘맞길’로 불렸고, 나중에 ‘맞질’이 되었는데 요즘은 ‘맛질’로 불러 이름이 변했다”고 한다. 뒤에는 남양홍씨 제궁이 있는데 지금은 비었고 주변의 산들이 모두 남양홍씨 산이란다. 옆 골의 어르말과 노루골은 일찍 정착해 사람들이 터전을 일궜는데, 결코 좁은 터가 아닌 맛질은 어째서 사람들이 외면하고 마을 정착이 없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마을의 입구는 좁고 외져도 아늑한 마을이다. 그러나 마을 뒤쪽으로 산길이 동서로 터지고 부지런한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것은 이미 역동적인 흐름과 기운이 빨라져 마을이 정주하기에는 안정감이 적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고 보면 지금 맛질에는 어지2리의 새 이장과 귀농한 몇 분이 사는데 주민들도 오래 터전을 유지한 분들이 별로 없다. 시대가 변해 옛길은 묻혔고 모든 길이 마을 앞 서낭당을 거쳐 들고 난다.
“서낭당이 깨끗하게 유지되고 있던데 당제는 잘 운영되고 있나요?”라고 물었다. “우리 마을 서낭당은 땅을 500여 평 사서 위토로 써요. 공동기금으로 운영하는데 마을 이장과 반장이 함께 제사를 모시는 제물도 장만하고 음력 정월 열나흘 날 저녁에 당제를 잘 지내요.” 몇 집 안 되는 마을이라도 지켜오는 풍습을 이어가고 있어서 다행이다.
맛질은 지나는 행인들이 맛있다고 의미 없이 지은 이름이다. 주민의 오랜 역사와 마을의 애착으로 지어진 이름이면 좋겠는데 아쉽다. 역시 한 마을은 마을사람의 역사다. 모든 마을은 사람이 가꾸고 경영하기 때문이다.
두 분의 80대 노인들이 계셨는데 모두 정신이 흐리셔서 달리 의견을 물을 수 없었다.
오십대의 주민은 이름 밝히기를 거부했지만 마을의 애착만은 대단해서 지갑에 꼬깃꼬깃 접어 넣어 두었던 옛 마을 지도(법전면 지도)를 꺼내어 보여준다. 그 지도에 분명히 맛질이 나와 있다. 아마 60년대쯤의 지도로 보여진다.
마을은 가운데의 논을 빼고는 산전을 하다시피 밭을 일궈서 조, 보리, 콩, 고추, 감자농사를 했는데 지금은 대부분 밭에 과수를 심었다. 텃밭이야 어찌하던 심고 가꾸지만 경사진 밭과 척박했던 밭은 과수로 바꾸어 심고 큰 밭은 외부의 농부가 고추를 주로 한다.
맛질은 옛날에는 상대적으로 오지가 아니었다. 춘양장이 워낙 커서 장보는 사람들이 행사처럼 오고 갔는데 그 길목에 있는 맛질은 자연히 사람 맛을 많이 보는 곳이었다. 그러나 추억 같은 옛날 길을 지금 걷는다면 마음을 단단히 먹고 걸어야 할 먼 거리여서 외진 터전이 되고 말았다. 마을버스도 들어오지 않으니 차가 없다면 완전한 오지이다. 70년대에 소로리가 춘양면으로 할애되면서 맛질이 춘양면과의 경계가 되었다. 마을을 돌아 나오면서 돌아보는 마을은 오후의 햇살 속에 한가롭게 잠겨있다.

봉화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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