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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마을탐방<25> 곰이 없는 곰지기마을

봉화문화연구회 배 용 호

2018년 11월 25일(일) 17:29 [봉화일보 인터넷뉴스]

 

ⓒ 봉화일보 인터넷뉴스

ⓒ 봉화일보 인터넷뉴스

↑↑ 곰지기골 서낭당

ⓒ 봉화일보 인터넷뉴스

물야에서 곧추 북쪽 오전약수터 쪽으로 4㎞쯤 달리다보면 오전저수지가 나온다. 오전저수지가 끝나는 지점에서 왼쪽 방향을 잘 살펴보면 약수터 쪽에서 흘러내리는 개울물 말고 또 하나의 개울물이 북쪽으로 난 좁은 개울에서 골이 비좁도록 흘러나오는 것을 발견할 수가 있다. 골짜기가 있다는 뜻이다. 도저히 골짜기가 있을 법 하지 않은 산변달인데 개울물이 꾀나 세차게 흘러나온다. 인가가 있었다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으스스하기만 한 여울을 따라 한참 올라서 보면 그제야 좁은 골짜기가 열리기 시작하면서 인가의 흔적이 조금씩 나타난다. 계곡 입구는 안쪽으로 들어갈 수 없을 것 같은 좁고 가파른 오솔길이지만,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마음이 넓어지는 속 넓은 골짜기 형국이다. 행정구역으로는 오전2리 곰지기마을이다. 진입하는 입구는 물론이고, 마을을 들어서서도 급경사는 좀처럼 가라앉질 않을 듯하다. 몇 안 남은 집들마저 벼랑에 매달리듯 아슬아슬하게 붙어 있다. 사람의 온기를 느낄 수 있는 집은 달랑 한 채 뿐이라고 한다. 그마저 거의 출퇴근형 농가여서 마을에 온기를 공급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물론 곰도 찾아낼 수가 없었다. 고어의 ‘곰’은 급경사를 의미한다고도 한다. 그래서인지 곰지기마을은 밭고랑 하나에도 평온한 구석은 없어 보였다. 3평 하늘만 빠끔하다. 산중턱을 열어 하늘의 빛을 받는 곳이어서 일까? 일본어에서는 곰지기(こんじき)가 황금빛을 뜻한다고 되어 있다.
곰지기골 입구는 세 갈래 골로 갈라져 있다. 지금은 마을이 거의 소멸되어 인가를 만나기가 쉽지 않지만, 예전에는 큰골에 4가구가 살았었고, 작은골에 3가구가 오손도손 살았다. 갈밭골에는 농토만 있고 인가는 원래부터 없었다고 한다. 일곱 가구는 농토를 개간하느라 듬성듬성 흩어져 있었지만 한세상 운명을 같이하는 가족같이 서로 깊이 의지하며 살았다고 한다. 그러던 중 1950년, 6.25 동란(한국전쟁)이 터지면서 모두들 소개되어 뿔뿔이 흩어졌지만,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후 나라가 어느 정도 평정을 되찾은 60년대 후반에 와서는 다시 그 일곱 가구가 모여들어 알콩달콩 지냈다고 한다. 그러나 또 다시 몰아친 80년대의 이촌향도 바람은 누구도 막아내지 못하는 세찬 바람이 되어버렸다. 어느 곳 없이 산촌이란 산촌은 모두 버려지면서 한 집, 두 집 떠나기 시작했고, 마을은 황폐되어 지금처럼 유령 같은 마을로 바뀌고 말았다고 한다.
골짜기가 세 갈래지는 곳을 조금 지나 좀 더 오르다 보면 작은 개울가에 깜찍스러울 만큼 제대로 모양을 갖춘 두어 평의 기와집이 하나 나타난다. 사람이 사는 민가보다 더 반듯하게 지어진 서낭당이다. 당집 정면으로 마주보는 두 폭 문짝위에는 『山神堂(산신당)』이라는 힘찬 글씨가 현판처럼 걸려 있다. 오른편으로 개울을 흘러내리는 맑은 물이 작은 폭포를 이루려는 듯 잦은 걸음으로 여울지고, 그 위 작은 언덕을 비집어 당집을 올려두었다. 큰 나무 한그루가 뒤쪽을 막아 서 있고, 들려있는 듯한 바윗돌 앞에 자리 잡은 당집터는 이 서낭당만을 위한 터였다. 여기에 주춧돌을 놓고 공사를 하여 번듯한 당집을 신축한 것이다. 거의 없어진 마을에 당집만 오똑하게 서 있는 모양이 오히려 생뚱맞아 보인다.
세상 사람들 아무에게도 공개되지 않았을 것만 같이 숨겨진 이곳 곰지기골에는 천주교 신자에 관한 짤막한 이야기도 전해온다.
조선말 천주교도 탄압시절 순교한 김대건 신부(대담해 주신 어르신은 김대건이 숨어 살았었다고 증언하지만 전후 사정으로 미루어 홍유한에 대한 얘기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의 외가가 이 마을 제일 막안 쯤에 있었는데, 김대건이 이곳 외가에 와서 피신하며 지냈다는 이야기가 그것이다.

봉화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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