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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마을탐방<26> 노모에게 물고기를 잡아 봉양한 어지2리 어르말

봉화문화연구회 방 유 수

2018년 12월 02일(일) 16:30 [봉화일보 인터넷뉴스]

 

↑↑ 충간공 난은 이선생 신도비(忠簡公 懶隱 李先生 神道碑)

ⓒ 봉화일보 인터넷뉴스

ⓒ 봉화일보 인터넷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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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묘는 연화부수형(蓮花浮水形)지형이라 해 석물이 없으며, 위는 모부인 아래는 부부합장묘이다.

ⓒ 봉화일보 인터넷뉴스

어르말의 어원을 알고자 법전면 어지2리 이장을 역임했던 이윤재(61)씨는 마을에서 어른들에게 구전되어 내려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옛날 이마을에 살던 영양남씨가 항상 물고기를 잡아 노모에게 봉양했다 해 어로동(漁老洞)으로 불리었으나, 일제강점기 때 국·한문 혼용을 하고 세월이 흐르면서 어로마을이 어르마을, 어르말로 불리게 되었다고 했다.
어르말을 찾아가기 위해서는 봉화에서 35번 국도를 타고 약 23km를 가다가 녹동역 못미쳐 좌회전해서 어르말이라고 붙은 표지판을 따라서 들어가다가 보면 약 300m 지점 좌측 도랑옆에 마을을 지켜주는 예쁜 성황당이 자리를 잡아 길손들을 반겨준다.
성황당을 지나서 약 500m를 마을쪽으로 올라가다보면 정면으로 화장산이 보이고 도로변 우측에 충간공 난은 이선생 신도비(忠簡公 懶隱 李先生 神道碑)가 세워져 있다.
신도비 부근에 안내판이 없어서 누구의 신도비인지 알 수 가 없다. 관계기관에서 안내판도 세우고 비문의 내용도 국역해서 신도비의 내용을 알리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화장산(華獐山 859.4m)은 경북 봉화군 춘양면 소로리, 소천면 현동리, 법전면 어지리에 있는 소위 각화지맥상 산이다. 험준한 지형 여건과 함께 임진왜란 때 왜군과의 최대 격전지로 이름나 있다. 의병장 유종개(柳宗介 1558~1592) 선생이 의병 100여 명과 함께 적장 모리 요시나리(森吉成)의 군대를 만나 전투를 벌이다가 전사한 곳이다. 인근의 목비골은 화장산 서남쪽에 위치한 마을로서 유종개 장수가 왜군들의 목을 수없이 베어낸 골짜기라 해 붙여진 이름이란다.
충간공 난은 이선생 신도비가 있는 좌측 도랑 건너에는 마을의 각종 행사와 어르신들의 쉼터로 이용되고 있는 마을 회관이 아담하게 자리잡고 있는데, 총사업비 1억7천200만 원으로 봉화군 보조금 1억2천만 원을 지원받아 2015년 7월에 완공되었다고 한다.
마을 회관을 지나서 좌측 얕은 산아래는 7-80년대에 마을 농민들이 많이 농사지었던 잎담배를 말리던 건조장(담뱃굴 또는 황초굴)이 아직까지 남아서 마을의 운치를 더해주고 있다. 대부분의 건조장은 1동만 지어져 있는데 이건조장은 방처럼 생긴 건조장이 하나 더 붙어 있어서 특이한 건조장으로서 미관상 정겨운 건물이다.
봉화군에는 아직까지도 잎담배 건조장이 많이 남아 있는데 건조장의 현황을 파악하고 잘 정비 보존해서 봉화를 대표하는 근대문화유산으로 활용했으면 좋겠다.
마을 중심부 오른쪽 화장산 산기슭에는 신도비의 주인공인 소퇴계(小退溪)라 불리면서 진성이씨 송당파 녹동문중 입향조인 충간공 난은 이동표(忠簡公 懶隱 李東標 1644~1700) 선생의 모친과 이동표 선생의 부부 합장 묘소가 있다.
선생은 32세에 증광생원시에 합격하고, 후학을 지도하다가 40세에 어머니의 권유에 따라 증광급제에 응시하여 합격한 후 여러 벼슬을 거친후 53세에는 외직으로 삼척도호부사(三陟都護府使)로 재직하면서 삼척 고을의 각종 민폐(民弊)를 개혁하며 세금을 감면토록 조치하여 칭송(稱頌)을 받았으며 어사 정호(鄭澔)는 그의 치적(治績)이 훌륭하다는 장계(狀啓)를 올렸다. 54세에 모부인을 부임지로 모셨으며, 이듬해 모부인이 돌아가시자, 그 해 가을에 당시의 춘양현(春陽縣) 어로동(魚老洞)으로 반장(返葬)하였다. 평소 효성이 지극했던 난은은 모친상에 지성으로 애도했다. 뿐만 아니라 조석으로 빈소를 찾아 몸소 예를 다하고 장례 후에도 날마다 상묘(上墓)하되, 비바람이 몰아쳐도 예를 그만 두지 않았다고 한다. 이로 인해 그는 겹친 피로와 급성 위장병으로 모부인의 삼년상도 채우지 못한 채 57세가 되던 1700년 7월에 생을 마감했다.
후인들의 기록에 의하면, 당시 난은은 평소 너무나 청렴하게 살아온 터라 장례를 치를 수가 없었다고 한다. 사후 사림(士林)들의 공론(公論)을 거쳐 이조판서(吏曹判書)에 증직(贈職)되고, 충간공(忠簡公)의 시호(諡號)를 받았다. 충간공(忠簡公)시호의 뜻은 다음과 같다. 위신봉상왈 충(危身奉上曰 忠 : 자신이 위태로우면서도 임금을 받드니 충이오 )정직무사왈 간(正直無邪曰 簡 : 정직하고 사사로움이 없으니 간이다)

봉화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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