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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마을탐방<28> 남한강물을 끌어와서 삶을 살아가고 있는 도래기 마을!

봉화문화연구회 홍 승 한

2018년 12월 09일(일) 16:27 [봉화일보 인터넷뉴스]

 

↑↑ 구봉산»구봉곡»굽은골이 되었다는 9개의 봉우리가 있는 구봉산

ⓒ 봉화일보 인터넷뉴스

↑↑ 도래기마을 전경

ⓒ 봉화일보 인터넷뉴스

↑↑ 옛날 금정광산으로 보내기위해 있던 변전소가 흔적도 찾아볼수 없게된 옛터 (30여년 전 사과밭으로 변모)

ⓒ 봉화일보 인터넷뉴스

오늘은 강원도와 접경을 이루고 있는 춘양면 서벽2리 도래기 마을을 찾았다. 서벽리는 북쪽에는 태백산 동쪽에는 시루봉 서쪽에는 옥돌봉 남쪽에는 문수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천하대지로서 서쪽 옥돌봉의 아침햇살에 옥돌이 반사되어 찬란한 빛을 비춘다고 하여 西碧里라 부른다고 하며 이곳 도래기 마을을 찾아가려면 우선 춘양면에서 외통길인 국가지원지방도 88호선을 따라 석현 애당 도심 땅을 지나 서벽에 이르게 되는데 요즘 서벽 땅은 국립 백두대간 수목원이 개원이 되면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이곳 백두대간 수목원은 행정구역상으로 서벽 1, 2, 3리에 주로 걸쳐져 있으나 주요 시설은 1, 3리에 설치되어 있기에 약간 소외되었다고는 하나 인접지역에 접해 있어서 그런지 그렇게 느끼지는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도래기 마을은 국립백두대간 수목원 삼거리에서 직선방향으로 바로 올라가면 서벽2리 본마을이 나오는데 여기에서 1km 못 미쳐 「도래기길」이라는 조그마한 표시판이 게시되어 있는데 길 따라 쭉 올라가면 도래기 마을이 나오고 지방도는 도래기재를 깃점으로 남한강과 낙동강으로 구분되어 흘러가고 있다. 수십 전까지만 하여도 이 고개 넘어 우리나라의 최대 굴지의 금광인 금정광산과 상동 중석광산을 연결하는 금정터널이 그때의 역사를 증명이라도 해 줄 듯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또한 이곳은 소백산과 태백산을 연결하는 백두대간의 중간기착지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지금의 도래기라는 지명은 옛날 마차나 말이 다니던 시절에 말이 교대를 하거나 쉬면서 먹이를 먹이던 驛의 역할을 하던 곳으로서 강원도와 경상도를 연결하는 중요한 道驛嶺이 도래기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1970년대까지만 하여도 상동 중석광업소와 금정금광이 융성하여 광산물과 임산물을 운반하는 교통의 요충지였다.
광산물과 임산물의 유통과 강원도의 교통을 위해 1925년경 일본인들이 개설한 석조터널(150m 정도)이 붕괴위험이 있어 1985년경부터 터널위로 개설한 후 폐쇄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곳 토박이로 살고 있는 남정석(59)씨를 만났는데 그는 “옛날 어릴 때를 돌이켜 보면 우리 도래기 마을이 정말 천지개벽을 하였다고 한다.” 왜 그러냐고 하였더니 “이 마을은 본래 땅이 척박하다고 라기 보다는 아주 돌밭이었어요. 그래서 어떻게 농사를 짓을 수도 어려웠거니와 어렸을 때는 이곳에 감자 옥수수 콩, 팥, 조, 수수 등 순수한 밭작물을 경작하였는데 그때는 하루하루 때 껄이도 해결하기 어려울 정도로 힘들게 살던 빈동이었지요.”
“그중에서도 선도 농가였던 권영국씨가 5~60년 전에 사과나무를 심으면서 형편이 좀 나은 몇 집이 사과재배를 해 소득을 올리긴 하였지만 지난 95년 엄태항 군수가 민선군수로 처음 부임하면서 그 해 사과재배 선도 농가를 데리고 이탈리아에 가서 키 낮은 사과묘목을 갖고 온 것이 계기가 되어 묘목 포장을 만들어 보급하고 품종을 개량하면서 본격적으로 이곳은 물론 봉화군 전역이 사과를 통한 소득이 증대하여 농촌의 삶이 뒤바뀌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이런 것을 보면 인생살이가 참 재미있는 것 같다. 왜냐하면 수년전까지만 하여도 문전옥답에서 富를 누리던 황금의 땅이 오히려 소득이 더 낮아지고 황무지와 별반 다를 게 없던 돌밭이 황금의 땅으로 변하여 주민들에게 가구당 평균 1억 정도의 매출을 안겨주면서 그들에게 만면의 미소를 짓게 하였으니 정말 재미나는 사건이라 할 수 있지 않겠는가?
고려말기 문신이였던 문익점이가 서장관으로 중국 원나라에 갔다가 목화씨를 몰래 갖고 들어와 목화 보급에 기여한 거와 같이 엄태항 군수가 이태리 사과재배 선진지 견학을 갔다가 전국 최초로 M9 대목을 함께 갔던 농업인들의 가방에 몰래 들여와 오늘의 봉화사과를 품종 개량케 하여 상전벽해가 되고 천지개벽을 이루어 내었으니 이는 한지도자의 리더십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엄 군수를 엄익점으로 부르고 있다.
또한 통영에서 지난 1996년도에 이 마을에 귀농한 임채광(67)씨도 사과 6천여 평을 짓고 있는데 “처음에는 생활이 어려워 통영에서 영업을 하던 건어물 장사를 이곳에 와서도 전국 거래처를 다니면서 장사를 하고 집사람은 묘목을 키우는데 정성을 쏟는 등 초창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으나 수년이 지나면서 조금 정착이 되면서 사과농사에 전력 집중하였다.”고 한다.
“그러면서 사과농사는 뭐니 뭐니 해도 첫째 맛이 있어야 한다면서 맛으로 승부하기 위해서는 퇴비와 액비 등 무농약에 가까운 믿을 수 있는 신용이 최고의 보증수표라고 하였다.”
또한 “지금까지 귀한 인연으로 거래하고 있는 택배회원이 250여명이 된다.”라면서 은근히 자랑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고마운 그분들에게 보답하는 차원에서라도 더욱더 재배에 온정성을 쏟아야 한다.”고 하였다. 이제 마음의 여유가 있는지 몇 해 전부터 짬을 내어 색소폰 연주를 배워 사회봉사활동까지 하고 있다.
이곳 도래기 마을은 사람이 많이 살때는 4~50가구 살았었는데 요즘에 귀농인이 8가구 정도가 들어와 현재 21가구가 웃음을 잃지 않고 재미나게 살아가고 있는 마을이다.

봉화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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