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政治와 軍事는 실험하는 것이 아니다

2018년 12월 16일(일) 14:31 [봉화일보 인터넷뉴스]

 

↑↑ 홍승한- 前 봉화군 기획감사실장

ⓒ 봉화일보 인터넷뉴스

세상에서 실험이 안 되는 것은 실험해서도 안 되고 실험해 볼 수도 없는 것이 정치와 군사이다.
이것은 고대국가 이래 최고의 금기(禁忌) 사항이기 때문이다.
정치에서 정책을 내놓고 일단 실험해 보고 결정하자 했을 때 실패하면 어떻게 될까?
개인이나 기업의 경우에는 그 피해는 그 개인의 것이고 그 기업의 것이 될 수 있으나 정치의 경우 그 피해는 정책을 실험한 정치인의 것이 아니라 전 국민의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맹자(孟子)에 나오는 「연목구어(緣木求魚) 후필재앙 (後必災殃)」이라는 어휘에 대해 정치인이라면 누구나 가슴 깊이 새겨야 하는 금기어(禁忌語)가 되고 있다.
나무에 올라서 고기를 잡을 수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그럼에도 기어코 나무에 올라가 고기를 잡으려는 사람이 있다.
그것이 정치인이다. 그러나 그 피해는 그 어리석은 정치인에게 가는 것이 아니라 국민에게로 돌아가게 된다는 것이며 그것은 반드시 국가적 재앙이 된다.
군사에서도 실험 삼아 적을 공격해 보고 실험 삼아 전쟁해 보자.
그것이 과연 가능한 일이겠는가?
또한 적과 실험 삼아 대화해 보자. 실험 삼아 4억 5천만 달러의 돈도 줘보고 그보다 10배나 많은 45억 달러의 돈도 줘 보자! 그래서 어떻게 되었는가
적은 대화를 기회로 전쟁준비를 하고 그 현금을 재원으로 핵무기를 만들고 미사일을 만들지 않았는가? 그 절호의 찬스를 어느 적이 놓치겠는가? 실험 삼아 해 본 것이 적에게는 천혜(天惠)가 되고 준 쪽에는 재앙이 된다는 것이다.
더욱 기이한 것은 그것이 얼마나 재앙을 불러오는 실험인가를 의식 없이 실험하는 것이 정치인의 「실험행태」가 아닌가 싶다.
대통령이 되고 난 뒤 느닷없이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을 발표했다. 국민은 알지도 못하고 있는데 선거 때의 국정과제라고 한다.
환경단체의 실험과제를 숙의(熟議)도 없이 거기에 걸맞은 전문지식도 없이 대통령이 받아들인 것이 아닌가?
그래서 얼마나 많은 피해를 보았는가? 원전 재개까지 1천억 원의 손실을 보고 471명의 공론화 위원회에 40억여 원의 헛돈이 들어갔다고 한다. 그 돈은 누가 내는가?
실험의 당사자 개인이 내느냐? 아니면 소속한 여당의원 개개인이 내겠는가?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고 있지 않은가?
내가 어떤 실험을 하고 그 실험의 결과 어떤 재앙을 만나든 나에겐 책임이 없다는 것이다.
그것이 대통령이고 정치인이고 그리고 권력 실세들이다.
그러나 그 돈은 국민인 내가 내야 하는 것이고 아닌 밤중에 벼락 맞는 꼴이다. 하지만 국민은 모르는 것 같다. 알고도 모르는 척하는 것인지 알고도 방관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분통 터져 죽겠는데 정말 국민들은 바보인가? 왜 묵묵히 모르는 체 가만있는지 알 수가 없고 이해도 안 된다.
맹자 말대로 완전히 후필재앙이다.
최저임금 몇 천 원 올리느냐에 대해서도 온 국민이 촉각을 세우고 있는 마당에 그들에겐 몇 천 원이며 몇 십억 원은 돈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내 주머니에서 나가는 것이 아니라 모두 「국민이 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에겐 국민은 선거 때 외는 「실체」가 없으며 실감이 가지 않는 존재들이다. 그래서 함부로 국민을 대상으로 실험을 하고 있다.
또한 대통령의 안보특보는 「동맹을 파기하는 일이 있어도 평화는 지켜야 한다」라고 하였다. 그런 안보특보가 정녕 대통령을 보좌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가?라고 묻고 싶다.
안보가 실험대상이 아니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잘 알 것이다.
그런데 그 특보는 안보를 실험하려고 하고 있으니 말이다.
우리에게 동맹은 곧 평화이다.
적어도 우리에겐 동맹과 평화는 같은 말이며 동맹이 깨지면 자동적으로 평화는 깨지기 때문이다.
그 생명의 동아줄인 「동맹」에는 그 어떤 논리 어떤 수사학으로도
「파기」라는 말을 함께 쓸 수가 없고 써서도 안 된다.
그런데 특보라는 사람이 태연히 그렇게 말하고 있고 다른 동료들도 아무렇지도 않은 양 태연히 받아들이고 있으니 불안하기 그지없다.
안보에 관한 한 그래도 前정권이 지금 정권보다는 훨씬 더 국민의 마음을 안심시켰다.
그럼에도 현 정권의 정무수석이라는 사람이 한 신문(중앙일보 10월 20일)과의 인터뷰에서 “이런 시기에 박근혜 전 대통령이 아닌 문재인 대통령이 집권하고 있다는 게 정말 다행이고 안심이 된다”라고 하였으니 어찌 국민이 불안해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문재인 대통령이 안보를 말하면서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라고 하는데도 보좌하는 사람들은 현실과 전혀 다른 인식을 하고 있지를 않나. 얼마 전 청와대 정책실장으로 있던 사람은 삼성을 이 나라의 「원흉」이라고 책에 쓰고 주장도 하고 있는 세상이 되었으니 볼 것 다 본 것 아닌가 싶다.
여기에 무엇을 더 이상 중과부언 할 것이며 이 사람은 원흉(元兇)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고 썼는지 알 수가 없다.
사전에 보면 원흉은 “못된 짓을 하는 사람들의 우두머리”라고 되어있다. 삼성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못된 짓을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삼성은 우리나라 기업들을 대표하고 있으니 우리 기업들은 모두 이같이 못된 짓을 하고 있다는 것으로 단정 지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얼마 전 미국 포브스지에서 지난 100년 동안 아시아를 대표하는 최고의 혁신기업으로 어떻게 삼성을 선정했겠는가?
삼성 다음이 일본의 자존심인 도요타이고 그다음이 소니 그리고 네 번째가 인도의 국책은행이고 다섯 번째로 중국의 알리바바를 꼽고 있었다.
그런데 어째서 그 사람들은 청와대의 정책실장과 그렇게도 차이가 날 수 있을까? 부끄러워 차마 하기 힘든 말이기도 하지만 전 교육부 장관이란 사람이 당시 청문회에서 “그때는 표절이 관행이었다”라고 한 말을 국민들은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청문회에서 보면 아! 그러그러한 수준의 사람들이 장관이 되고,
대법원장이며 헌법재판소 소장이 되는구나 하는 생각을 떨칠 수 없겠지만 적어도 「교수」였다는 사람은 달라야 할 것이 아닌가?
배우는 학생이 있고 평생 연계를 갖는 제자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교수가 「표절(剽竊)」이라는 말이 무슨 말인지 모르고 쓰고 있다면 그거야말로 학생들에게나 제자들에게 너무 수치스럽지 않은가? 표절의 표(剽)는 훔치는 표자이고 표절의 절(竊)은 도적질 하다의 절 자이다.
「훔치고 도적질 하는 일」이 대학에서나 학계에서 어느 시대이고, 어찌 관행이 될 수 있단 말인가?
이 정부는 들어서자마자 적폐청산을 내 걸더니만 박정권 이정권의 적폐를 청산한다면서 그때의 실권에 있던 사람은 모조리 다 잡아넣고 있는 중에 또 생활적폐를 내걸고 있다. 아마 이 정부가 끝날 때까지 적폐 청산하다가 끝날 것 같다. 적폐청산을 위한 규명위원회인가 뭔가 만드는 것을 보면 말이다.
조선이 어떻게 망하던가? 적폐정산을 하다 망했다.
적폐(積弊)만 아니고 숙폐(宿弊) 구폐(舊弊)까지 모두 내걸었다.
쌓인 폐단(적폐), 묵은 폐단(숙폐), 옛날 폐단(구폐) 일소를 부르짖다가 나중에는 망할 힘도 없어 외국인이 와서 망하게 하지 않았는가?
율곡의 직간에도 양견구폐(量蠲舊弊·구폐를 헤아려 제거한다)라는 말이 자주자주 나온다.
적폐든 숙폐든 구폐이든 지난날의 잘못된 것이고 지난날의 것은 지금 절대로 일소되지 않는다는 것이며 일소든 청산이든 하려고 하면 과거와의 싸움이 된다.
과거의 잘못을 새로운 시대의 자산으로 삼는 정권은 성공해서 미래를 열 수 있겠지만 그것을 청산하려고 하는 정부나 정권은 반드시 실패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미래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소득 주도로 하는 성장 또한 실험의 대상이 될 수가 없으며 그것으로 성장을 일으켜 본 예가 없기 때문이다.
또한 공무원 수를 늘려 일자리 만드는 나라치고 망하지 않는 나라가 있었던가? 이 모두 철저히 국민을 우롱하는 실험들이다.
노무현 정부가 철부지 정권이라면 이 정부는 정말 천방지축 아무것도 모르고 날뛰는 그야말로 「풋내기 정권」이라고 말하고 싶을 뿐이다.
이 글은 연세대 명예교수로 있는 송복 교수의 글을 참고하였음을 밝히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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