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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마·을·탐·방 (53) 감자 채종포마을 석포면 대현리 드르네

봉화문화연구회 박 대 훈

2019년 06월 23일(일) 15:27 [봉화일보 인터넷뉴스]

 

↑↑ 드르네마을 전경

ⓒ 봉화일보 인터넷뉴스

↑↑ 석회 동굴

ⓒ 봉화일보 인터넷뉴스

드르네 마을은 평천(平川)이라고도 한다.
들과 내를 합처서 그렇게 부른다는 사람도 있고, 동네가 들려있어서 그렇다는 사람도 있다. 마을은 해발 800m 내외이다. 드르네는 옛 대현초등 앞에서 석포 쪽으로 가다보면 좌측에 빈 아파트가 보인다.
연화광업소의 사원아파트였으나 1993. 3. 1 광업소가 문을 닫으면서 사람이 살지 않는 동네가 되었다. 조금 더 가면 회사 사무실이 있던 곳이다.
정문초소는 폐허가 되어있고, 사람의 그림자도 없다.
광산 폐광이후 모 종교단체에서 인수했던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모르겠다.
그 맞은편에 “감자채종포마을 드르네“ 라는 안내판이 걸려 있다.
거기서 좁은 계곡을 한참을 들어가니 넓은 분지가 나타나고 마치 알프스의 어느 계곡에 와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이국적인 모습이다.
그러나 마을 첫 집은 까치구멍 집으로 함석지붕이다.
아이들은 다 나가 살고 두 내외만 살고 있다는 강영준(80세)할아버지는 갈대도 없고 하루하루 그냥그냥 산다고 하신다. 집 옆에 석회동굴이 있는데, 동굴까지 가는 길을 탐방객들이 올까 봐 제초작업을 해 놓았다고 하신다.
“전에는 많이 왔는데, 지금은 별로 안와” 호랑이 굴이라는 말도 있는 석회암동굴은 어둡고 무서워 들어가 볼 수조차 없다. 길이가 얼마인지도 모른다고 한다.
감자채종포라는 마을이 온통 배추로 덮여 있다.
어떻게 된 것인가 하고 계곡으로 더 들어가니 어느 지점에선가 부터 감자밭으로 바뀌고 있었다.
무슨 연유인가 하고 있는데 마침 들에 나와 있는 아주머니의 설명에는 연작을 피하기 위해서 지역을 반으로 나누어서 경작을 하고 있으며, 농촌기술센터에서 기술지도를 한다고 했다.
감자밭은 자주색 감자 꽃이 한창이고 밭머리 마다 경작자와 면적이 적힌 표찰이 꼽혀있다.
“이름은 알아서 뭐 할라꼬요.” 하는 70을 넘었다는 아주머니는 30년 전 처음시작 할 땐 우리아저씨가 이장을 하면서 모든 걸 다 했다. 여기는 농사를 안 지으면 이웃에 주지 외부에는 절대로 안준다. 고도 했다.
그는 또 여기는 두 가지 농사만 짓는다. 감자하고 배추하고, 들판을 돌아보니 고추 등 간혹 다른 작물도 보이기는 했으나 적은 면적이다.
12대째 살고 있다는 김남순(64세)씨는 여자이름이라서 쑥스럽다며, 여기는 9집이 살고 있는데 집집이 거의 둘씩만 살고 있다.
딱 한집 젊은 부부네가 학생 3명이 있어 아침마다 석포에서 애들을 대릴러 차가온다.
감자는 연작피해를 줄이기 위해서 들 전체를 아래위로 반으로 나누어서 심는데 거의가 양쪽에 밭이 있다. 한집만 한쪽에만 있어 하는 수 없이 그 집은 다른 걸 심어야 한다. 본인은 3천600평을 심었다고 했다. 채종포를 처음 할 때는 씨감자 4가지를 시험제배 했는데, 그중에서 수미를 선정 계속심고 있다.
남작은 맛은 좋은데 눈이 깊고 시장성이 없다. 우선 보기에 좋아야 한다. 여기 밭들이 전부 점질토 자갈밭이어서 감자 캘 때 헷갈릴 것 같은데 그렇지는 않다고 한다. 배추는 전부 비닐피복을 하는데 씨감자는 저장성을 위해서 비닐을 씌우면 안 된다고했다.
그는 클 때 어렵게 살던 이야기도 했다.
“강원도 장성까지 10km도 넘는 산길을 고등학교까지 걸어서 통학을 했다. 지금은 그렇게 학교가라면 한 놈도 안갈 것이다. 그때 여기 농사는 강낭을 주로 심었는데 도시락은 강낭과 좁쌀을 대곡(교환)을 해서 꽁 조밥을 싸 갔는데 반 친구가 그것이 맛있다고 바꾸어 먹자고 하여 쌀밥과 바꿔서 먹었다. 그 친구는 나를 생각해서 그랬겠지만 살다보니 소식도 모르고 산다”고 하며 감정이 복바치는지 울먹였다.
왜 아니겠는가, 그 시절에 안 그런 사람이 몇이나 있었겠나, 그 때 제사지낼 때도 메밥 뜰 만큼만 쌀밥을 해서 그것도 어른들 눈치 보느라 나누어 줘야 겨우 얻어먹었다. 그때는 어른들이 왜 그리 무서웠는지,
작목반 일을 맡고 있다는 강봉일(48세)씨는 경기도에서 살다 조부 때 살던 고향을 12년 전에 돌아왔다며, 조부명의 토지가 있어서 그렇지 안 그러면 외부에서 여기 들어올 수조차 없다고 했다.
마을에서 유일한 젊은이로 초 중등생 삼남매를 두고 있다.
감자는 4월20일 경 파종을 시작해서 10여일 걸리고, 수확은 추석전후에 하여 10월15일 경에 수매한다.
매년 강원도 대관령에서 원종씨앗을 운임만 물고 무상으로 받으며, 1년에 품질관리원으로부터 검사를 4번 받는다.
제배과정에 3번, 납품 전 1번, 박스포장 후 무작위 추출하여 품질검사를 받는데 썩은 감자 가 나오면 무조건 전부 재작업을 해야 한다. 본인은 올해 9,000평을 심었다고 했다.
그 많은 면적을 어떻게 관리하느냐고 하니 여기는 작업 성질상 공동작업도 많이 하며, 파종은 기계가 있어 그것으로 하고 제초는 첫 회는 제초제를 치고 다음엔 경운기로 사이골을 갈아서 북돋움도 되고 제초도 된다.
경사가 심한 밭은 소로 하는 집도 있다. 방제는 진딧물 때문에 10-12회 정도, 과수만큼 자주 친다. 방제골이라고 농약호스이동을 위해서 감자 10골마다 한 골씩 비워둔다.
이것도 다 검사를 한다. 감자파종기는 처음에는 구입해서 썼는데, 자갈밭인 이곳에 맞지 않아서 자체로 만들어서 쓰고 있다. 농기계보관창고에 가보니 처음 구입한 것이 1세대라면 3세대까지 나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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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체제작한 감자파종기계

ⓒ 봉화일보 인터넷뉴스


파종기는 트렉터 뒤에 달아서 쓰게 되어있는데, 두 사람이 의자에 앉아서 감자 씨를 한 알씩 심기도록 살피고 한 번에 두 골을 할 수 있도록 되어있다.
마을에 기계를 잘 만지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그뿐 만 아니라 골 짓고 감자 캐고 하는 것들까지 전부 농기계를 개량하여 쓰고 있단다.
올해 봉화군 감자채종포는 석포리 광평마을에 89,000평방, 대현리 드르네 마을에 72,000 평방이라고 한다.

홈페이지관리자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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