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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원 봉화현감

2019년 06월 30일(일) 14:22 [봉화일보 인터넷뉴스]

 

↑↑ 박하식- 소설가

ⓒ 봉화일보 인터넷뉴스

소고 박승임 선생의 후손 호 일포(逸圃) 박시원(朴時源)은 영주 한정마을에서 자랐다. 문과에 급제했다. 1821년(순조19) 10월 봉화현감을 발령받았다. 그때는 현감을 목민관, 사또라고 존칭을 쓰기도 했다. 봉화현 관할구역은 봉성면, 명호면, 상운면, 춘양면, 물야면 등 17개 이동으로 작은 현이었다. 그때 관아는 봉성에 있었다.
이방(吏房)을 비롯한 6방 관속 호방, 예방, 병방, 형방, 공방의 업무보고를 받았다. 다음은 통인, 일직사령과 관노 노비 관기(官妓)들의 신고를 받았다. 태백산사고지(太白山史庫祉)와 미곡창고의 수량과 양곡보관현황 쌀, 벼, 콩의 석(石)수와 옷감의 무명, 명주, 삼배의 보유 현황도 보고받았다.
역(驛)은 태백산 만경대 제천행사로 황지 삼척 영월을 넘어가는 고치령(高峙嶺) 등 재 밑에 마방(馬房)이 있고, 춘양 도심역과 봉성역이 있었다. 역은 원래 관찰사 밑에 종6품 찰방이 관할했는데 40리 거리에 1개역이 있어 역졸과 말을 관리했으며, 전답 1백 두락을 역전(驛田)으로 유지운영 했다. 그러나 현감이 자기관내 역졸들의 감시감독과 말 사육 관리와 운행 등에 관여했다.
박 현감은 창고현장 감사를 나갔다. 창고가 텅 비어있었다. 다른 창고로 가보자고 말머리를 돌리자, 늙은 이방이 말 앞에 꿇어 엎드려 아뢰었다. “사또나리! 다른 창고도 가보실 필요가 없습니다. 왜? 다 비어있습니다.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이러함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옵고 수 십 년을 이렇게 내려오고 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인고 하니,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신임 사또가 부임하시면, 봉화현 내 문중 유림들을 모아놓고 현재정이 어렵다고 말씀하시면, 창고가 가득 차는 것입니다. 그래도 안차면 양반이 아닌 중촌 부자들을 관아로 불러들여 형틀에 묶어놓고 네가 네 죄를 알렸다 한번만 하시면 창고가 금방 차고, 남는 양곡 사또님의 가용에 쓰시는 것으로 아옵니다. 또 아뢰옵니다. 봉급을 줄때, 쌀이 1백 섬이 필요하면 50섬만 있으면 됩니다. 겨와 모래를 반은 섞어서 줍니다” 나라가 이렇게 썩어있었다.
박 현감은 그 자리에서 “소관은 하늘에 부끄러운 짓은 할 수 없구나! 관직이란 이렇게 어려운 것인가” 한탄하고 경상도관찰사에게 사직서를 써 올렸다.
경상도관찰사는 “다음 후임자를 결정할 때까지만 재임하라”고 사직서를 되돌려 보냈다. 그동안 향교진흥에 진력하고 당시 폐지되었던 이산서원(퇴계선생이 창립)을 복구하여 영주 봉화 선비들의 교육장으로 삼았다. 선비정신의 ‘주자전서’와 ‘심경(心經’) ‘근사록’을 강의요체로 삼고 ‘성학십도’와 성리학을 강의했다.
그때는 안동김씨의 세도정치와 천주교 박해, 홍경래의 란, 그 후 동학란, 전봉준의 동학농민운동(1894) 고부군수 조병갑의 폭정에 일어난 농민들의 평정을 위해 일본과 청국 군을 불러들인 것이 원인으로 이어 청일전쟁이 일어나고 이 땅에 일제36년의 식민지를 낳았다.
민원이 들어온 것이 있었다. 각화사에서 스님들이 보낸 소원이었다. “각화사 조지는 진주강씨대보지를 하고…(覺華寺 造紙 晉州姜氏大譜誌)”
족보를 한지 3년이 지나도 종이 값을 주지 않아 스님들이 굶어죽게 생겼다는 민원이다. 고려가 망하고 조선의 척불숭유(斥佛崇儒) 정책에 짓밟힌 스님들은 그때 산속으로 숨어들어 천신만고로 산전을 일구고 종이 같은 것을 만들어 팔면서 초근목피로 목숨을 보전하고 있었다.
그때 양반 권세는 돈을 안주면 그만이었다. 스님과 천민은 인간취급을 안했다. 티를 뜯어 개패 듯 때리다가 죽여도 그만이었다.
박 현감은 말을 타고 진주강씨 문중인 춘양으로 갔다.
취임식 때 만났던 진주강씨 문장을 찾아갔다. “종손이 갚은 줄 알았는데 대단히 잘못됐다”고 사과를 했다. 3일 내로 갚겠다고 했다. 그래서 해결했다.
‘이 이야기는 일포 문집 원문은 읽을 줄 모르고, 번역본 8권을 다 읽어봐도 그 구절이 없다. 번역본에서는 뺐다는 설도 있고, 야사로 전한다고도 했다’

홈페이지관리자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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