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검색
 
   정치 경제 사회 문화/생활 교육 사건/사고 기자수첩 사설/칼럼 성명/논평 기타 의학상식 오지마을탐방

전체기사

사설/칼럼

자유기고

커뮤니티

독자투고

공지사항

직거래장터

자유게시판

뉴스 PDF보기

galery_test

뉴스 > 사설/칼럼 > 자유기고

+크기 | -작게 | 이메일 | 프린트

역사 앞에서

2019년 07월 07일(일) 14:06 [봉화일보 인터넷뉴스]

 

↑↑ 박하식- 소설가

ⓒ 봉화일보 인터넷뉴스

박용만국회의원은 일곱 번 떨어지고 여덟 번째 당선됐다. 남대리 1~2투표소에서는 한 표도 없다. 노인들이 잘 못 찍은 한 표도 없다. 웃어야할까 울어야할까. 군청에 보관한 투표함(그때는 나무함)은 불타버렸다. 1979년 10. 26이 발생하고 12. 12사태가 일어나면서 국가보위계엄령이 선포되고 국회가 해산됐다. 일부 국회의원들은 가택 연금됐다. 가택 연금된 박용만 의원(민주당)의 ‘연 금후 생활’의 취재가 떨어졌다. 박용만의원은 집이 서울이다. 밤기차를 탔다. 부인은 소아과의원 원장인 박 의원은 집에 있었다. 반가워했다. 28세에 경무대(청와대) 비서관을 지낸 박용만 의원은 두뇌가 명석하고 입이 직설적이다.
첫마디에 “계원이가 뭔 죄가 있는가. 지 에미가 어릴 때 도리도리를 안 가르친 것이 죄지. 궁정동 지하에서 각하와 김재규와 함께 술을 마시다가, 차지철이 총을 쏠까할 때, 고개를 끄덕끄덕한 죄. 죄명이 있다면 ‘도리도리 죄’일 것일세. 또 그랬으면 바로 청와대로 들어가 비상 국무회의를 열어 대통령의 유고를 국민에게 알리고, 계엄을 선포하고 칼자루를 잡고 휘두르면 산천초목이 떨 것인데 육본방카로는 ×하러 갔는가. 전두환이 한태 잡혀 ‘살려주시오’할 일이 뭐가 있는가. 제가 할 소리를 반대로 당하고 있으니, 참.”했다. 박용만 의원과 김계원 장군은 풍기 동향인이다.
그때는 영주 출신 김 모 씨가 청량리파출소 소장(경위)이고, 동대문세무서장(서기관)이 봉화 사람이었다. 어깨가 오면 순사가 도망가는, 순사보다 폭력배가 우위인 무법천지 시절이었다. 중앙선열차가 뜨고 내리는 청량리역과 경동시장 동대문시장 일대는 영주 봉화 주먹이 잡고 있었다. 김 소장이 영주경찰서에서 청량리파출소장으로 임명된 것도 어깨와 무관하지 않았다. 깡패조직에서 노점상들의 전세를 받는 횡포를 부릴 때였다.
그때는 세금이 60% 정도 밖에 걷히지 않을 때였다. 자동납부란 없고 세무서직원(임시직)이 돌아다며 납세자를 방문해 세금을 받을 때였다. 봉화 내성세무서(영주세무서)에서 동대문세무서로 전근 간 K씨는 깡패조직을 임시직으로 뽑아 이용해 징수를 했는데, 그들이 한 바퀴만 돌면 100% 징수가 되는 것이었다. 세금 100% 징수로 계장이 되고 과장이 되고, 대통령표창을 받아 청량리출장소장에서 동대문세무서장으로 승진했다.
주먹 친구가 저녁을 사준다기에 따라갔다. 낙원동 뒷골목 중화요리 집이었다. 일행은 6명이었는데 신사복을 쪽 빼입은 모르는 사람 3명을 인사시켰다. 고향이 목포란다. 주먹친구는 김대중 계라고 귀띔했다.
방안에는 화려한 병풍이 쳐져있고 요리상이 차려져 있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아가씨 6명이 대기하고 있었다. 우리가 앉자 옆에 붙어 앉아 술을 따르는 술시중을 들었다.
나는 처음 보는 중국술에 최고요리였다. 기이한 것은 우리가 나오는데 고향이 목포란 친구가 돈을 내려하자, 카운터 아가씨가 ‘사장님이 받지 말라’고 했다며 안 받는다. 신발을 신고 밖으로 나오는데 주인마담이 급히 따라 나오며 허리를 반은 꺾어 “요리가 입에 맞으셨는지, 불편함은 없으셨는지, 왜 요즘은 자주 안 오시는지, 자주 오셔달라”고 큰 절을 했다. 우물 안 개구리인 나는 정치깡패란 말만 들었지 그렇게 위대한 줄은 꿈에도 몰랐다.
박용만 의원의 얘기는 이어졌다. “내가 김대중이 집에 갔더니, 이회호 여사가 다반을 들고 나왔어. 사모님이 여기 어쩐 일이십니까?” 계훈제 부인 이회호 여사가 거기에 와 있었던 것이다. 이회호 여사는 얼굴이 빨개지면서 나갔고, 친구가 옆구리를 쿡 찔렀다. 문밖을 나오면서 친구가 하는 말. “이회호가 계훈제를 버리고 김대중이 하고 살지 않는가. 훈제는 본부인이 있고 첩으로 살았어.” 김대중 첫 부인 차용매 여사는 두 아들을 두고 자살했다. 이회호는 김대중이 세 번째 남편이다. 아들 하나를 낳았다. 옛날 같으면 여자로 사람대접을 못 받을 텐데, 지금 세상은 자꾸 시집을 가다가 좋은 남편 만나는 것이 시대의 표상이다. “남편을 자구 바꾸는 여성은 위대하고, 총칼로 정권을 까마귀 까치집 뺏듯 하는 것이 민주주의다”고 박의원은 한탄했다.
계훈제(桂勳梯) 1921년 생. 민주화운동가. 경성제대 법학부 재학 중 ‘학도징병제’를 거부하고 저항운동을 했다. 상해임시정부로 가다가 신의주에서 일경에 체포되어 평양 시멘트공장에서 강제노역을 했다. 해방 후 김구와 함께 남북협상에 참여했다. ‘씨의 소리’ 편집인으로 함석헌 장준하와 함께 ‘3선 개헌반대투쟁’을 하다 대통령 긴급조치법위반으로 투옥되었다. 1985년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을 창설했다. 한평생 반독재민주화 투쟁에 앞장서 왔다. 함석헌선생과 똑 같은 백의민족을 상징한 흰 고무신에 한복은 그의 상징이었다.
이회호 영부인은 지난 6월 11일 96세로 소천 했다. ‘민주주의의 꿈, 통일의 꿈, 한국여성운동의 대모. 한국여성지도자 훈장을 정부로부터 받은, 민주화 투쟁의 영원한 상징, 동지. 저 구름 속에 떠오르는 달처럼 이회호 여사의 이 땅에 오심은 인류문명의 축복이며 영광이다(신문 방송의 제목들) 사랑의 천사 이회호 영부인은 온 국민들의 애도 물결 속에 국립묘지에 잠들었다.’ 북한에서 애도의 화환을 보내왔다.

홈페이지관리자 기자  .
“봉화일보 인터넷뉴스”
- Copyrights ⓒ봉화일보 인터넷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봉화일보 인터넷뉴스 기사목록  |  기사제공 : 봉화일보 인터넷뉴스

 

이전 페이지로

실시간 많이본 뉴스

 

하반기 건강쑥쑥 치아 튼튼이집 만..

이주일의 농사정보

이주일의 농사정보

봉화고, 캄보디아서 다양한 해외문..

코레일 경북본부, 정동진 기차여행..

봉화군 ‘첫 민선체육회장’관심집..

경북도의회 기획경제위원회, 2019년..

도청 신도시 ‘경북도서관’ 개관

통합신공항 이전지 결국 해넘겨

‘가야문화권’ 새로이 역사 재조명

회사소개 - 조직도 - 임직원 - 광고문의 - 제휴문의 - 청소년보호정책 - 기자회원 약관 - 구독신청

 상호: 봉화일보 인터넷뉴스 / 등록번호: 경북아00144 / 등록일자 : 2010. 8.26 / 주소: 봉화군 봉화읍 봉화로 1103 / 발행인,편집인: 권영석
mail: rkd9200@naver.com / Tel: 054-672-0077 / Fax : 054-674-0090 / 청소년보호책임자 : 권영석
Copyright ⓒ 봉화일보 인터넷뉴스. All Rights Reserved. 본지는 신문 윤리강령 및 그 실천요강을 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