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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마·을·탐·방 (56) - 봉황산 정기 서린 물야면 압동리 압작골 마을

봉화문화연구회 이 기 락

2019년 07월 14일(일) 15:20 [봉화일보 인터넷뉴스]

 

↑↑ 동네 입구에서 본 마을 전경. 뒤로 봉황산이 보인다.

ⓒ 봉화일보 인터넷뉴스

백두대간이 선달산을 만나고 마구령을 지나기 전 갈곳산에서 동남으로 뻗어 봉우리 하나를 만드니 봉화군과 영주시의 경계를 이루는 봉황산(鳳凰山)이다.
봉황산의 정기를 받아 서남 방향으로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신라 고승 의상대사가 세운 부석사가 있고, 동남 방향으로는 물야면 압동리(鴨洞里) 압작골 마을이 있다.
물야면 소재지에서 부석 방향 길을 따라 사곡를 지나고 2Km 더 올라가서 우측으로 난 길을 따라 2~3백 미터 들어가면 봉황산 밑의 아담한 마을을 만나게 되니 바로 압동 1리 압작골 마을이다.

↑↑ 마을 회관 앞에서 만난 마을 새마을 사업 주역 3총사.

ⓒ 봉화일보 인터넷뉴스

↑↑ 아담한 압동교회.

ⓒ 봉화일보 인터넷뉴스

지난 6월 7일 단오절, 마침 단비가 내려 농사일을 못할 날이라 압동1리 마을 회관을 찾아 이 마을 노인 회장 이영식(81세) 형님과 봉화군 노인회 감사와 물야면 게이트볼회 회장을 맡고 있는 심윤용(82세)님, 그리고 전 노인 회장 김용출 (82세) 어른 세분을 같이 만났다.
“압작골은 1,500년 경 창원 황씨가 개척한 마을로 오리형국을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마을 앞 큰 연못에는 오리가 많이 서식했는데 지금은 메워 논밭이 되었다”고 이 마을에 3대째 살고 있다는 심 회장님의 설명이다.
“ 요즘 농촌 어느 동네나 가보면 빈집도 많고 무언가 허전한 느낌이 드는데 이 마을은 아담하고 전혀 그렇지 않네요?” 나의 방문 느낌에
“ 옛날 많이 살 때는 한 때 60집이 넘었는데, 지금은 귀촌. 귀농한 집이 10여 가구 들어와 45가구가 살고 있고 새로 지은 집들도 많아 깨끗한 마을이다”라고 설명해 주신다.
마을 회관 겸 노인회관은 동네 입구에 새로 잘 세워져 있고, 3공 시절 1974년인가 75년 새마을 사업과 퇴비증산 독려 정책을 펼 때 경북도내 1등을 해 상금으로 100만원을 받았고 회관도 다른 마을 보다 일찍 세웠었다고 은근한 자랑이다.
그러고 보니 같은 또래 코 흘리게 친구 세분이 당시 이장, 새마을 지도자 등 주역들이 오늘 같이 자리한 셈이다. 이영식 노인 회장은 나의 초등 동창 이완식의 친형이라 형님이라 부르는데, 9살 때 조부가 이 마을로 이사 왔고 노인회원은 40명 쯤 된단다.
회관 거실 벽에 松隱(송은) 姜錫元(강석원)이란 분이 쓴 <鳶飛魚躍> 이라 쓴 액자가 걸려있다.
<연비어약> 솔개는 하늘을 날고 물고기는 연못에서 뛰다. 이 얼마나 자연스런 세상의 모습인가?
성군(聖君)의 道(도)가 행해져 이 땅의 모든 만물이 제 모습을 보여주는 세상인데, 요즘 우리나라 실정과는 참으로 거리가 먼 것 같아 왠지 마음이 아리다.
“저 액자 속의 강석원이란 분이 이 마을 출신인가요?”
“법전 강씨로 이 마을에서 태어나 잠시 살았고, 서울서 경찰 공무원을 하다가 사법시험에 합격 변호사를 지낸 분인데 오래전 이사 갔지.
“어릴적 추억이나 기억 있으면 들려주시지요.”
“해방이 되던 1945년 8월 15일 당시 7살이었는데, 동네에 살던 황칠수란 어른이 태극기를 제작해 오록에 있는 물야국민학교로 갔고 그 후 서리의 면주재소로 향했는데 뒤따라갔던 기억이 또렷하지“
“그래서 어찌 했나요?” 학교의 일본인 교장이 허겁지겁 어디론가 도망을 갔고, 해방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면서 들떠있던 기억이 나네. 그리고 옛 날 동네 입구에 순흥 부사 선정비인가 유허비 인가 비석이 하나 있었는데 새마을 사업 할 때 저기 쯤 논 가장자리에 묻었는데 정확히 어딘지 모르겠어“
필자도 물야 초등학교 3학년 때 압작골 이 마을을 지나 먼 거리의 부석사로 가을소풍을 갔던 기억이 새롭게 난다.
“지금은 고인이 되었지만 성창합판에 근무했던 서석호씨가 이 동네 뿐 아니라 물야면 사람들에게도 많은 도움을 주었는데, 그의 모친 유언으로 저 위에 있던 낡은 압동교회를 헐고 그 자리에 1970년 초 새 교회를 다시 세웠다네”
교회로 가서 이곳 교회에 온지 15년 되었다는 임병선(50년생) 목사를 만났다.
“어린아이 까지 포함 신도가 17명이며 동네 인심이 좋고 단합이 잘되며 좋은 마을” 이라고 설명을 한다.
노인회장님의 설명에 따르면 경주이씨 6가구 외는 대부분 각성이며 사과 농사를 주업으로 하는 농가가 10가구 정도로 가장 많고, 대부분 논·밭 소농이며 귀농해 블루베리 농사를 하는 집도 있으며 독거노인도 7~8 가구 된단다.
아무튼 친구 세분이 마을을 잘 지켜 오는 것 같아 든든하고 젊은 사람들이 뒤를 잘 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홈페이지관리자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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