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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마·을·탐·방 (57) 삼봉 정도전의 후예들 마을 ‘법전면 풍정2리 밖노리미’

봉화문화연구회 강 필 구

2019년 07월 21일(일) 14:46 [봉화일보 인터넷뉴스]

 

↑↑ 노리미 마을전경

ⓒ 봉화일보 인터넷뉴스

법전면 풍정리는 갈방산을 따라 문수산의 기운이 남쪽으로 흘러 안동의 학가산으로 가는 길목에 있다. 36번 국도가 다덕재를 넘으면서 법전면인데, 남쪽으로 흐르는 물길은 갈방에서 시드물을 돌아 영동선 아래로 간신히 굴을 파서 이은 마을길을 지나 돌다리까지 이른다.
돌다리마을은 법전에서 봉성과 명호로 나가는 갈림길에 있는데, 갈방산에서 발원된 물길과 노리미에서 내려오는 물길이 이 삼거리에서 합수하고 돌다리와 명호로 내려가면서 제법 큰 물살로 맑은 개울을 이룬다.
돌다리에서 북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은근한 마을의 윤곽이 보이는데 신작로에서 여기까지 4㎞나 된다.
그러나 법전리에서 노리미재를 넘으면 곧바로 노리미로 들어오니 차가 없던 시절에는 제법 높고 험한 산길이어도 샛길인 지름길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노리미 마을은 길의 바깥쪽의 밖노리미와 야트막한 산등성이 하나를 사이에 둔 안노리미로 나뉜다. 밖노리미는 삼봉 정도전의 후예 봉화정씨들의 마을이다.
봉화정씨는 봉화지방의 사족으로 시조는 고려후기 봉화현의 호장을 지낸 정공미(鄭公美)이며 문단과 영주가 본향이다.
증손자 정운경이 고려 충숙왕 때 과거에 급제하여 보문각 대제학, 상호군을 역임했는데 그의 아들이 조선건국의 일등공신인 삼봉 정도전이다.
봉화정씨는 삼봉의 우뚝한 성명으로 봉화를 본향으로 쓰게 되었다. 삼봉은 1398년 왕자의 난 때, 태종에게 피살된 후 후손들은 역적으로 몰렸고, 이후 여러 사화에서 핍박을 받고 숨어든 곳이 이곳이다.
봉화정씨는 조선에서 문과8명, 무과18명의 인재를 배출했다.
삼봉의 위세로 여러 형제들이 출세했고 숙청이후 모두 흩어졌다. 노리미로 입향한 분은 내은 정언섭(內隱 鄭彦燮)으로 현릉 참봉을 지냈다.
을사사화와 양재역 벽서사건이 일어난 정미사화까지 후손들의 핍박은 끝이 없고 내은 정언섭은 새로운 거처를 찾아 노리미로 들어왔는데, 1500년대 말까지는 사람이 살지 않는 마을이어서 마을 이름을 짓는데 본인의 호를 따서 내(內)와 뒷산에 학이 많은 것을 보고 새을(乙)자를 붙여 내을리(內乙里)로 했다.
지금 쓰이는 노리미는 1700년대에 새로 지어진 이름으로 내을리에서 바뀐 이름이다.
내을리는 풍정리의 동쪽에서 갈방산의 또 다른 방산으로 법전리와는 산등으로 경계를 이룬다.
갈방산에서 내려오는 방산의 기운은 마을 앞으로 농토를 부챗살처럼 펼쳐 놓았다.
남향의 마을에 동남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높은 해발임에도 따뜻한 햇살과 함께 마을을 포근하게 감싼다. 마을 뒷산은 학이 날개를 펴고 감싸듯 마을의 좌우를 아우르는데 마치 학이 둥지를 품은듯하다. 그러나 좁은 골이다.

↑↑ 정홍섭(84세)씨

ⓒ 봉화일보 인터넷뉴스

마침 법전농협 조합장을 지낸 정홍섭(84세)씨 댁이 마을 입구에 있어 찾아뵈었다.
반가이 맞으신다.
사람 귀한 탓이리라. 연세에 비해서 기억력도 분별력도 젊은이 못지않다.
어른들의 입향이 궁금했다.
“모진 핍박으로 피해 다니다가 여기로 들어왔는데 집안의 뿌리를 찾은 거라고 생각돼” 하신다.
무슨 이야기인지 궁금하다.
“우리 본향은 문단으로 영주 근처에 삼판서 고택 등 유적들이 많이 남아있지. 그런데 들은 이야기로는 다덕 동네가 시조께서 처음 시작한 본향이었다는 거야.” “다덕약수탕이 있는 우곡이요?” “응. 그래서 내은께서 본향을 찾아 재 너머 여기로 들어오셨다는 이야기지.”
어릴 때부터 조금씩 한문을 익히셨다는 어른은 손수 쓰고 붙여놓은 글씨들을 눈으로 살피신다.
“숨어살아도 면면이 글이 끊어지지 않게 선조들은 노력하시고 후손들은 그 뜻을 받들어 마을을 개척해 갔지.”
마을이 간출해서 마을 이야기를 해 달라고 부탁드렸다.
“우리 마을은 학들이 떼 지어 사는 곳이었어. 소나무가 울창하고 햇살은 좋아서 너무 평화스러운 곳이었는데, 전설에는 임진왜란 때 이여송이 지나다가 뒷산에 있던 큰 바위가 있는 것을 보고 훗날 조선에 명장이 날 것이라며 칼을 뽑아 바위를 내리쳐서 산산조각 냈다고 해. 그 조각들이 지금도 흩어져 있지.”
“학들도 그 뒤에 모두 날아가고 이여송이는 조선의 혈을 끊는 짓을 많이 했다고 하데?”
지금도 그 일은 많이 아쉬우신 것 같이 말씀하신다.
“마을에 서낭당도 없고 몇 집 되지 않네요?” 하고 물었다. “본래 좁은 골이어서 농토가 적고, 집성촌이니 외부 사람들이 들어오지 않았고, 많을 때는 18가구가 있었는데 이제는 10집만 살아. 모두 정씨들이지. 우리 동네는 본래 서낭당이 없었어.”
법전에 마을마다 서낭당이 있었는데 여기는 없다. 이미 입향조로 부터 16대에 이른다는 어른은 마을에 대한 자부심으로 가득하다.
일찍이 마을 이장을 26년간이나 하시고, 법전농협 조합장을 하신 어르신의 기억력과 부지런함, 체계적인 생활과 농법은 이름나 있다.
“요즈음은 무슨 농사 하세요? 농사 잘 짓는 비결이 있으세요?” 하고 물었더니 물고기가 물을 만난 듯 갑자기 생기가 도신다.
“올해는 무, 고추 농사를 짓지. 부지런하고 잘 알고 지으면 농사처럼 안정되고 재미난 것도 없어.”하신다.
“나는 연구하는 농사를 지어. 부지런하고 인내가 없이는 성공할 수가 없지. 땅을 기르고, 거름을 맞추어 내고, 파종과 관리를 생각하고 연구해서하고, 투자를 아끼지 않아야 좋은 결과를 얻지.”
이게 쉬운가? 자기를 잘 관리해 내는 것은 농사 잘 짓는 것만큼 힘들다. 집 옆에 지으신 무 농사의 결과를 보라고 하신다.
그 자부심이 대단하다. 정말 단단한 무가 너무 탐스럽다.
이미 좋은 값에 팔렸다는 무 하나를 선물로 주셨다.

↑↑ 내은정

ⓒ 봉화일보 인터넷뉴스

1961년에는 내을리 마을 뒤편에 입향한 내은의 학덕을 추모하고 그 정신을 이으려는 마음을 모아 후손들이 내은정(內隱亭)을 세웠다. 정면3칸, 측면 한 칸 반규모의 팔작기와집으로 양쪽으로 방을 두고 중앙에 대청을 둔 중당협실형인데 퇴칸은 대청으로 개방되어있다.
문이 열려있어 내은정에 오르니 멀리 마을의 전경과 학이 놀던 울창한 소나무 숲이 보인다.
정자를 지을 때만해도 가문의 학문을 잇고 정신을 이으려는 의지가 살아있었고 정자가 봉화정씨 문중의 중심을 세우는 표상이었을 것이다.
정홍섭 어르신은 “길이 나고 교육과 직업이 필요한 젊은이를 중심으로 마을을 떠나고는 빠르게 한적한 마을이 되어갔지. 그러나 부지런한 마음과 인내하는 자세만 있으면 농촌이 얼마나 풍요롭고 자유로운지를 알게 될 거야.”
4남 2녀가 모두 공무원과 전문직을 가진 자녀를 두신 정홍섭씨는 “우리 마을은 젊은이들이 밖으로 나가서 모두 성공하고 특히 공무원이 많이 나는 것이 특이해” 하신다.
이 말씀에는 마을의 풍수적 자부심과 조상이 물려주신 문중의 의로운 정신적 규범이 정직하고 성실하고 자애로우라는 가르침을 잊지 않는 후손들의 노력 덕이라는 자부심이 배어있다.
그래서 “어르신께서는 성공한 삶을 사셨어요.” 했더니, 어르신은 “성공까지는 아니어도 자부심을 가지고 목표를 가지고 살았어.” 하신다.
파종과 기르기에 연구와 정성과 확신을 가지고 일을 하시는 어르신은 분명 우리가 배워야 할 덕목이고 교훈이다.
오후의 여름햇살이 뜨겁게 내리쬔다. 학이 춤추고 깨어진 바위라도 큰 인물이 날 지형을 갖춘 내을리는 복된 마을이다.
내을리는 1700년 초에 잠계 강우(潛溪 姜鄅)선생이 안노리미에 입향해서 공자의 이상향 같은 풍광을 보고 유학자의 이상향 노림(魯林)으로 마을 이름을 바꾸면서 노리미가 되었고, 내을리는 바깥에 있다고 밖노리미가 되었다. 내은 정언섭이 지었던 학마을 내을리는 이제 잊힌 이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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