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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되던 날 늦은 오후

2019년 07월 28일(일) 13:48 [봉화일보 인터넷뉴스]

 

↑↑ 김중위- 前 4선의원, 환경부장관

ⓒ 봉화일보 인터넷뉴스

마을 사람들이 한 사람도 빠짐없이 경북 문경에 있는 농암국민학교 운동장에 모였다.
한 떼의 농악패거리들이 나와 꽹과리를 치면서 춤을 추고 아낙네들은 어디서 난 술인지 물동이 가득히 채운 막걸리를 머리에 이고, 이 동네 저 동네에서 줄지어 나타나기 시작했다.
장정들은 학교 교무실이나 교실에 들어가 벽에 걸어놓은
무슨 액자와 칠판 같은 것을 닥치는 대로 사정없이 들고 나와 불을 질러대기 시작했다. 염천에 불길은 하늘을 찔렀고 농악소리는 산천을 울렸다. 농악을 하는 장정들이건 술을 나르던 아낙네건 온몸을 땀으로 목욕하고 있는 것도 모른 채 해가 지고 어둠이 깔릴 때 까지 춤을 췄다. 모르긴 하되 해방된 그날만큼 동네사람들이 한데 몰려 해지는 것도 아랑곳 하지 않고 신나게 마시면서 춤을 추어 본적은 그 전에도 그 후에도 없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필자가 초등학교 1학년 때의 일이다.
일본 동경에서 해방을 맞은 김소운(金巢雲)은 이날의 정경을 이렇게 쓴 것을 읽은 적이 있다. 해방되던 날 늦은 오후! 해가 막 지려는 언덕길을 어떤 한 노인이 미친 사람처럼 울면서 혼자 무슨 말인지 모를 말을 중얼거리면서 걸어가고 있었다. 소운은 이상히 여겨 그 노인의 뒤를 따라가면서 가만히 엿 들어 보기로 했다.
그러자 그 노인은 누가 뒤에 따라오는지도 모르고 “조선아! 조선아! 너 어디 갔다 이제 오느냐! 너 어디 갔다 이제 오느냐!”고 하면서 눈물을 줄줄 흘리며 걷고 있었더라는 것이다.
이름 없는 한 노인이다. 나라 없이도 밭을 일구고 살아갈 수 있는 이름 없는 한 노인이지만 나라 없는 백성되기가 얼마나 어려웠나를 짐작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나 싶다.
이 얘기를 전해 준 김소운 선생은 자의반 타의반으로 일본에 머물면서 집필한 자신의 유명한 《목근통신(木槿通信)》에서 “내 어머니는 레프라(문둥이)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나는 우리 어머니를 클레오파트라와 바꾸지 않겠습니다.”라고 조국에 대한 애타는 목마름을 절규하였다.
이름 모를 노인은 해방으로 조선을 되찾은 기쁨을 노래 한 것이요 김소운 선생은 되찾은 조국에 대한 사랑을 고백한 것이다.
조국이 비록 헐벗고 굶주리고 반 토막이 난 채로의 더러운 문둥이 같은 조국이지만 자신에게는“어느 극락정토(極樂淨土)보다도 더 그리운 어머니의 품”이라고 외치고 있다. 지금까지 이들이 조국에 대한 사랑을 노래하고 있었을 때에 조국을 되 찾는데 앞장섰던 백범(白凡) 김구(金九) 선생은 조국의 미래를 얘기하고 있었다.
백범은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라는 글에서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라고 자신의 소원을 밝힌다. 그러면서 그는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덧붙인다.
“민족의 행복은 결코 계급투쟁에서 오는 것은 절대 아니”라는 점을 못 박으면서 세계에서 가장 부강한 나라보다는 가장 아름다운 나라! “오직 한없이 갖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 바로 그러한 문화의 힘으로 세계평화의
중심축이 되는 것을 소원하면서 백범은 쓰러졌다.
해방된 조국의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된 우남(雩南) 이승만 대통령의 정치적 이상은 또 어떠했는가? 그는 자신의 취임사에서 “어느 나라든지 우리에게 친선(親善)히 한 나라는 우리가 친선히 대우할 것이요 친선치 않게 우리를대우하는 나라는 우리도 친선히 대우할 수 없을 것입니다.” 아울러 그는 “부패한 정신으로 신성한 국가를 이룩하지 못하나니~ 새로운 정신과 새로운 행동으로 구습(舊習)을 버리고 새 길을 찾아서~ 날로 새로운 백성을 이룸으로서 새로운 국가를 만년 반석위에” 세워 나가자고 역설하고 있다.
오늘이 있기까지의 대한민국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는 사실이 필자의 머릿속을 섬광처럼 지나가고 있었다.
나라를 만드는 데에 앞장섰던 거물들이 쏟아 낸 말들이야 말로 그들이 겪은 숱한 한(恨)들이 한강물보다도 더 짙푸르게 흘러 이루어 진 내력의 소산임을 단적으로 설명해 주고 있다는 생각에 머리가 저절로 숙여진다.
필자는 여기서 이름 없는 백성들도 해방당시에는 얼마나 독립을 갈구하면서 나라사랑에 목말라하였는가를 그리고 지도자들 또한 얼마나 깊은 사상적 통찰력으로 장차 세워질 나라의 미래의 모습을 그리고 있었는가를 다시 한 번 되 뇌이고 싶었던 것이다.
독립과 정부수립이후 반세기만에 괄목할만한 발전으로 세계 10위권을 넘나드는 무역대국이 되었지만 나라사랑하는 백성들의 마음은 어디서도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는 느낌 때문이다.
백범이 꿈꾸었던 문화대국에로의 꿈은 아직도 요원하고 우남이 바라던 날로 새로운 나라 되도록 하자던 다짐도 이제는 박물관에서조차 볼 수 없게 되었기에 하는 얘기다.
학교의 선생님들조차 나라사랑을 가르치는 것은 마치 무슨 독재국가에서나 하는 교육인 것처럼 알고 기피하기가 일쑤이고 심지어는 대한민국을 태어나서는 안 될 나라쯤으로 교육시키는 선생들마저 생겨났다.
학자들마저도 일부에서는 왜곡된 역사의식이나 국가의식이나 민족의식으로 나라의 정통성을 폄훼하기에 서슴치 않는다.
결국 일제가 저지른 성노예(위안부)와 같은 만행에 대해서마저 미국이 앞장 서 그 야만성을 성토하기에 이르렀다.
우리는 아직도 일제가 저지른 갖가지 만행에 대한 조사사업 마저 시도해 본적이 없다. 넉넉한 국민성 때문인가?
아니면 건망증 때문인가!
백범이 소원이라 말했던 아름다운 나라 그리고 우남이 원했던 나날이 새로워지는 나라를 만들어 세계평화의 중심축이 되도록 하자는 거대 담론(談論)이 자리 잡아야 할 정치권에서는 더더욱 한심한 작태만 연출되고 있을 뿐이다. 우리 옛 선조들이 그토록 중시해 마지않았던 의리나 명분이나 금도(襟度) 내지는 상하의 예절이나 법도 또는 충성이나 동지애라고 하는 단어는 이제 눈을 씻고 보려고 해도 찾아 볼 수가 없게 되었다.
어제의 동지를 하루아침에 버리고 떠나는 배신과 자신이 몸담았던 정당에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지거리를 남겨 놓고 떠나는 무뢰(無賴)와 이(利)가 있으면 언제나 변신을 서슴없이 할 수 있는 재주만이 번득이는 우리네 정치인들의 오늘로서는 결코 아름다운 나라를 만들 수가 있을 것 같지 않아서 하는 얘기다.
상대 당에 대한 온갖 트집과 모함을 일삼는 정치권의 작태를 보면 우리의 희망은 그리 크다고 말할 수만은 없게 되었다. 선거 때마다 거대 담론으로 나라의 앞날을 밝게 하고자 하는 후보자간의 토론이나 경쟁은 보이지 않고 그저 상대 후보를 무슨 험집을 만들어 내서라도 깎아내려 자신이 당선되려고만 하니 어찌 우리에게 희망이 있는 나라가 될 수가 있다고 하겠는가?
진실이 창조될 수가 없는 것임은 누구나 아는 것! 창조될 수 있는 것은 오직 거짓밖에는 없다. 그래서 창조된 거짓을 날조(捏造)라고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창조된 거짓이 시간의 신 크로노스(Cronos)에 의해 난도질 당하기 까지의 순간만이라도 날조가 승리의 노래를 부르는 세상이 올까 두려울 뿐이다.
우남과 백범이 함께 꿈 꾼 “나날이 새로워지는 아름다운 나라” 만드는 데에 국민 모두가 힘을 합해 나갈 수는 없을까?
“눈을 뜨고도 안보이면 눈을 감고 보라”는 말은 연암(燕巖)선생이 한 것 같은데 그렇게라도 해보아야 할 것 같다.

홈페이지관리자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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