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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마·을·탐·방 (59) 천주교 성지마을 봉성면 우곡리 시거리

봉화문화연구회 김 옥 랑

2019년 08월 11일(일) 15:15 [봉화일보 인터넷뉴스]

 

봉성면 우곡리 시거리 마을은 우르실 북쪽에 있는 마을로 마을 어귀에 세 갈래 길이 있고 또, 마을 앞에 급경사로 된 좁은 내(川)가 세 갈래로 흐른다고 하여 삼거리, 세거리, 시거리라 부른다고 한다.
예전부터 손씨, 최씨, 지씨가 함께 살다가 지금은 여러 성씨들 9가구가 모여 같이 살고 있다.
시거리로 들어서는 길은 두 갈래로 나뉘어져 있다. 주민들이 주로 사용하는 길은 다덕약수탕을 지나 왼편 다덕재를 넘는 길이지만, 창평저수지 둑 높이기 사업을 하고 길을 정비한 후부터는 창평교회를 지나 커브길 백두농원 앞에서 왼편으로 오르는 둑길을 이용하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다.

↑↑ 시거리 마을전경

ⓒ 봉화일보 인터넷뉴스


넓은 저수지와 경치를 감상하며 지나는 숲길은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탁 트인다.
다덕재를 지나는 길과 못둑길을 지나는 길이 구마이 동네 앞에서 만나 하나로 합쳐지고 큰 마를 지나면 시거리 가는 길은 좌측으로 꺾기는 중대골과 헤어진다.
예전에는 중대골 앞 느티나무모테를 아랫시거리, 그 위의 마을을 웃시거리라 했다고 하나 지금은 그저 시거리라 불린다고 한다.
시거리 마을이 언제부터 존재하였는지는 확실치 않다. 그렇게 조용하던 산골마을이 천주교 성지로 개발되면서부터 바깥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이곳이 천주교 성지마을이 된 것은 1993년 10월 천주교 안동교구에서 우리나라 천주교 최초수덕자인 농은 홍유한(隴隱 洪儒漢1726-1785) 선생의 묘소 위치를 마을 노인인 손장출(작고)씨를 통해 알게 되면서 부터다.

↑↑ 홍유한선생묘소

ⓒ 봉화일보 인터넷뉴스


농은 홍유한선생은 서울 아현동에서 태어나서 16세 때 실학의 대가인 성호 이익의 문하에서 공부를 하였다.
1750년부터 스승인 이익과 동문들과 함께 서학인 「천주실의(天主實義)」와 「칠극(七克)」, 「직방외기(職方外紀)」등을 공부한 후 신앙을 연구하고 실천하기 위하여 예산으로 낙향, 호를 농은이라 짓고 18여년동안 배움을 실천하며 천주교리에 맞는 생활을 계속하였다. 1775년 수계생활에 더욱 적합한 곳을 찾아 영남지방으로 내려와 단산 구구리(배나무실)에 머물게 된다. 이곳에서 더욱 전심전력으로 「칠극」에 의한 수계생활을 하는 한편, 뜻있는 학자들과 서로 교류하기도 하였다.
이곳에서의 홍유한의 수계생활은 천진암보다 4년 앞선 것으로 실로 그가 한국교회의 최초의 수덕자임을 알게 해주며, 실로 경상도 북부지방(현 안동교구 지역)에 최초로 복음의 말년 1월 30일(양 3월 10일)에 세상을 떠나자 그 해 4월 19일(양 5월 27일)순흥부 동쪽 문수산 우곡 골짜기에 안장되었다.
어르신들의 기억에 선생의 묘소를 이곳에 쓰면 100여년 후에는 많은 손님들이 올 것이라는 말이 있었다고 한다.

↑↑ 우곡성지

ⓒ 봉화일보 인터넷뉴스

현재 천주교 성지로 알려져 많은 신도들과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는 시거리 마을에는 서학을 받아들여 스스로 신앙을 닦고 전파한 선생의 정신이 지금까지 남아있다고 보아도 될 것 같다.
성지 바로 밑 심만수(82), 노귀순(72)어르신 댁에 앉아 성지조성 이야기를 들었다. 처음 내외분이 1988년 이주한 이후 매입한 주변의 땅은 너무 황폐하여 농사를 짓지 못해 염소농장을 만들었다가 홍유한선생의 묘소가 발견되면서 지금의 터와 일부의 농지만 남기고 성당에 매매하였다고 한다.
땅값을 많아 받으셨냐고 농을 드리자 웃으시며 “우리가 사는 땅만 해도 충분하다, 지금 여기서 이대로 살다가 죽는 것이 좋지요” 하신다.
시거리 마을은 현재는 천주교 성지로 알려지고 있지만 정작 마을 주민들은 당집을 지키고 당제를 지낸다고 한다. 예전처럼 엄격하지는 않지만 여전히 정결한 마음을 지닌 부부, 온존한 가정의 제관을 뽑아 매해 정월보름에 당제를 지내고 소지를 올리며 동네와 가정의 평안을 기원하며 오곡밥을 해서 동네주민들이 나눠먹으며 잔치를 즐긴다.
원래는 당집 없이 신목을 모셨는데 7,8년전 주민들이 화재 및 기타 사고를 우려하여 신목 앞에 당집을 시멘트로 지어 모셨다고 한다. 과수원 밑 호두나무 사이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서낭당은 길에서 잘 보이지 않아서 한참을 헤맨 후에야 찾아볼 수 있었다.
요즘의 일반적인 나무가 아니라 시멘트로 지어진 당집임에도 특이하고 단정해 보인 것은 주민들이 성심으로 관리하고 있기 때문이겠다.
심만수씨는 모신 신이 할매신이라 제주를 드리지 않고 음료수를 올린다고 알려주셨다.
천주교 성지와 당집은 좀처럼 어울리지 않을 듯 싶지만 천주교가 들어온 이후 토착종교와 잘 어울리며 지내듯 각자 자리를 지키며 시거리마을의 풍경을 만들고 있다.

↑↑ 마을뒤 문수산 자연휴양림

ⓒ 봉화일보 인터넷뉴스

천주교 첫 수덕자인 홍유한 선생의 묘소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성지 옆 계곡으로 문수산 휴양림이 만들어지고 있다.
8월경 개관을 목표로 준비하고 있다는데 계곡 옆 홍유한 선생 묘소로 오르는 산등성이 옆으로 물소리와 깨끗한 도로가 새삼 서늘한 시거리의 풍경과 어울려 아름답고 고즈넉하다.

홈페이지관리자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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