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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마·을·탐·방 (61)- 참으로 심심한 마을 법전면 풍정2리 심새

봉화문화연구회 강 필 구

2019년 08월 25일(일) 14:59 [봉화일보 인터넷뉴스]

 

↑↑ 심새마을 전경

ⓒ 봉화일보 인터넷뉴스

법전의 마을들은 모두 산간으로 형성되어 발전도 더디고 소식도 변화도 늦었다.
법전 전체가 해발400미터의 고원에 자리하여 주변의 춘양이나 명호, 봉성면보다 높다. 36번국도가 다덕재를 가파르게 올라 법전면으로 들어서면 바로 풍정리이고, 갈방에서 동네길을 남쪽으로 냇물을 따르면 시드물로 그리고 돌다리쪽으로 나간다. 중간쯤 왼쪽 언덕바지에 철길을 건너는 건널목이 있다. 건널목을 돌아 오르자 동네의 모습이 어렴풋하다. 이곳이 심새, 또는 심수(尋水)라 불리는 마을이다. 심새마을의 앞을 가로지른 철도는 동네를 외부와 차단시켰다.
철길은 증기기차 구경은 했어도 모든 외부와의 소통을 단절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건널목은 무인 자동 시스템이다. 지금이야 워낙 기차 통행이 드무니 건널목사고 위험이 적지만, 80년대까지도 석탄과 광물, 시멘트와 목재를 실어 나르는 화물열차가 워낙 많아서 위험했을 것이다.
마을 입구는 나무들이 우거진 사이로 굽이돌아 들어간다. 마을이래야 겨우 세집, 한 눈에 지피는 집들은 거의 옛 모습으로 지켜 섰다. 마침 첫 집 입구에서 전동차를 타고 햇살을 피해 작은 나무아래에 쉬고 계시는 박종희(90세) 어르신을 만났다.

↑↑ 박종희 할머니 (명호댁)

ⓒ 봉화일보 인터넷뉴스


“어르신 뭐하고 계세요?”하고 말을 거는데 왠지 불편해 하신다. 그래서 자초지종을 말씀드린다. 워낙 사람구경하기 힘든 곳에 낮선 사람이 오면 경계심부터 생기는 모양이고 알만한 신분과 찾아온 이유를 물으시고는 활짝 웃으신다. 그 모습이 이쁘다. 곧 이름과 나이, 집도 이야기 하시고 자녀들 이야기도 줄줄이 꺼내신다. 심새라고 불리는 심수에는 마을에 우물이 없었다. 한참 떨어진 마을 앞의 개울물을 퍼다 먹었는데, 수량이 적은 갈수기나 겨울에는 얼고 장마 때의 오염된물은 전염병을 유발하기도 해서 물을 찾으려고 마을 안에서 여러 곳을 파도 우물을 찾을 수가 없었다. 마침 마을에 큰 향나무가 있었는데 그 아래에 물기가 있어서 파 보았더니 맑은 물이 솟는다. 수량도 많고 물맛도 좋았다. 이 우물을 사용하고서 깊고 맑은 샘이 솟는다고 하여 마을이름을 심수(尋水)라고 했는데 지금은 심새로 불린다.
“이 동네에 몇 집이 살아요?”하고 박종희 할머니에게 물었다. “세집” 참 간단한 대답이 돌아왔다. 한참 사는 얘기로 서먹한 분위기를 없애고 “어디서 시집 오셨어요?”하고 묻고부터 이야기가 끝이 없다. “명호 골안이 친정이여” 명호에서 얼굴도 못 보고 아버지가 가라니까 시집이라고 와서 70년을 살았다. 철없이 시집와서 듣고 보는 것이 없이 보낸 세월은 나의 의지가 아니었다. 그냥 살아내는 것, 자식 잘되라고 치성 드리는 것 외에는 부모로서 할 역할이 없었다.
지금은 공직에 있던 맏아들이 퇴직 후 들어와 특수작물과 양봉 등 아버지의 뒤를 잇고 어머니를 모시고 산다. 심새에는 전의이씨들이 산다. 전의이씨의 시조는 고려 개국공신 태사 이도(太師 李棹)로 충남 연기군 전의면을 본향으로 한다. 심새에 한 가족이 들어와 자리 잡아 마을을 형성하였다. 심새에는 사랑 어르신은 모두 돌아가시고 안어른 두분과 이상국씨가 전부다. 가끔씩 와서 농사를 짓는 큰집조카가 마을을 가꾸고 있어 위안이 된다고 한다.
마을은 서쪽으로 ‘시드물’과 북쪽 산 너머에 ‘노리미’와 동쪽 재 너머에 ‘노파이’라는 골과 닿는데, 산으로 둘러싸여 폭 빠지듯 아늑하다.

↑↑ 노적봉

ⓒ 봉화일보 인터넷뉴스

↑↑ 심새마을 입구 건널목

ⓒ 봉화일보 인터넷뉴스


앞으로는 시드물의 백운봉이 바로 보이는데 이 마을에서는 ‘노적봉’이란다. 철도가 가로막기 전에는 마을 앞이 확 터져서 시원하고 정남향의 마을은 온기로 가득하여 살기 좋은 마을의 표상이었겠다.
마을을 나가는 유일한 통로가 건널목이다. 명호댁을 뵙고 뒷집 신금연(89세) 어르신 댁을 찾았다.

↑↑ 신금연 할머니

ⓒ 봉화일보 인터넷뉴스


어르신은 반갑게 맞는다. “어르신, 마을 이름이 왜 심새 인가요?”하고 물었더니, “하도 심심해서 심새지!” 하신다. 앞뒷집에 여자들만 남은 세월은 서글프단다. 자녀들이 자주 찾아와서 큰 위안은 되지만 사람이 그리워 심심한 것은 지난 삶을 오랫동안 조목조목 되새겨보게 한다. “마을에 방아가 있었어요?”하고 물었다.
“마을 뒤에 공동 디딜방아가 있었지. 지금도 보관하고 있어. 농사도 힘들지만 방아 찧기는 더 힘들어. 참 어려운 시절이었지. 방아 찧기 외에도 베와 명주를 짜고 옷을 지어서 입었으니, 그 골몰이야 말해 뭣 해!”
마을의 곳곳에 밭을 일구고 돌을 주워내서 쌓은 돌담과 오래된 고목들이 마을의 역사를 증명하고 고단한 삶을 기억하고 있다. 자녀들은 두 분 모두 5남매와 8남매를 두었는데, 억척으로 외지에서 공부하고 출세해서 자기 몫을 해내고 있다고 자랑이시다. 여기도 공무원이 있다고 자랑하시니 법전의 마을들이 모두 공무원이 많이 나오는가보다.
예전에도 여덟 집밖에 없었는데, 그나마 이제는 세집만 남았다. 마을다움이 없었으니 서낭당도 만들지 않았고, 외면당한 오지에는 자급자족으로 삶을 꾸려나갔다.
“앞으로 자주 와!” 하시는 신금연, 박종희 할머니는 외롭다고 하신다.
“백세 시대에 백세까지는 사셔야지요?” 했더니 “에이 됐다” 하고 손사래 치시지만 좋은 세상 건강하게 오래 살아 자녀들이 잘 되는 것을 같이 누리고 싶다고 하신다. 마을은 포근하다는 표현이 맞는 것 같다.
자기 수행하기 좋을 만큼 한적하고 자연 속에 묻혀 사는 맛은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곳일 것이다. 가끔 강릉으로 가는 기차가 정겹고 문명이 멀리 있지 않음을 기억하게 한다.

홈페이지관리자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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