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검색
 
   정치 경제 사회 문화/생활 교육 사건/사고 기자수첩 사설/칼럼 성명/논평 기타 의학상식 오지마을탐방

전체기사

커뮤니티

독자투고

공지사항

직거래장터

자유게시판

뉴스 PDF보기

galery_test

뉴스 > 오지마을탐방

+크기 | -작게 | 이메일 | 프린트

오·지·마·을·탐·방(45) 무릉도원이라는 유토피아마을, 도화동(桃花洞)

봉화문화연구회 배 용 호

2019년 04월 28일(일) 15:17 [봉화일보 인터넷뉴스]

 

↑↑ 도화동으로 들어가는 도화분교 앞길.

ⓒ 봉화일보 인터넷뉴스

↑↑ 도화마을 전경.

ⓒ 봉화일보 인터넷뉴스

↑↑ 도화분교 급수대의 흔적.

ⓒ 봉화일보 인터넷뉴스

↑↑ 도화동 서낭당의 내부 모습.

ⓒ 봉화일보 인터넷뉴스

『4세기 무렵, 중국 후난 성(湖南省)의 무릉(武陵)이라는 곳에 물고기를 잡으며 사는 어부가 있었다. 어느 날 강을 따라 거슬러 올라가다가 너무 깊숙이 들어가는 바람에 길을 잃고 말았다. 무작정 배를 저으니 계곡 양쪽을 따라 만발한 복사꽃이 그칠 줄 몰랐다. 얼마를 지났을까? 산이 나타났다. 흘러나오는 계곡 물을 따라 올라가니 작은 동굴이 있었다. 동굴은 한사람 겨우 지날 정도였으나 계속 들어가자 동굴이 넓어지면서 갑자기 밝아지고 대지가 나타났다. 논밭, 연못, 뽕나무, 대나무 숲, 잘 닦인 길, 커다란 집, 개나 닭의 울음소리 등이 모두 이상할 게 없었으나, 단 하나 다른 점은 모든 사람이 하나같이 걱정이 없는 평화로운 삶을 살고 있었다. 유토피아(이상향)였다. 그 곳 사람들이 어부를 발견하고는 깜짝 놀라 “어디서 왔느냐”고 물었다. 마을 사람들이 몰려와 아래 세상에 대해 이것저것 캐물었다. 그들의 선조들이 진(秦)나라 때 전란을 피하여 이리로 들어온 이후 마을에서 한 발짝도 나가보지 않았기 때문에 세상과의 인연이 완전히 끊겨 있었다. 약 500년 정도를 그렇게 지낸 모양이었다. 며칠 후 어부가 집으로 돌아가려 하니 “이 곳에 대해서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당부하였다. 그러나 어부는 이 희한한 광경을 혼자만 간직할 수 없었다. 잊지 않기 위해 중간 중간 표시를 해 가면서 집으로 돌아 왔고, 오자말자 당부에도 불구하고 고을 태수에게 자초지종을 보고했다. 태수가 당장 부하를 동행시켜 그 곳을 찾으려 했으나 복숭아꽃이 만발한 그 평화로운 마을은 끝내 찾을 수가 없었다.』

중국의 시인 도연명의 『도화원기(桃花源記)』이야기이다.
이로부터 ‘도원경(桃源境)’은 이상향을 뜻하는 용어가 되었으며, ‘복숭아’는 ‘천계(天界)’의 신선 세계와 밀접한 과일이 되었다.
어쨌든 『도화원기』에 표현된 이상향은 무척 친근하고 희한하지만 인간은 지금껏 누구도 그 땅에 이르지를 못했다.
우주개발 경쟁 이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무릉도원(武陵桃源)을 찾아 나섰지만, 아직도 그곳 소식통들은 최초의 인간 도착을 알리는 기사를 낸 적이 없다. 과연 누가 천기누설의 그 깊은 신선의 땅에 인간의 깃발을 꽂을 수 있을까?
이후 사람들은 차라리 그와 비슷하게 생긴 깊고 깊은 오지에다 ‘도화동(桃花洞)’이라는 현판을 내걸고는 그곳을 아예 동천(洞天, 신선의 땅)이라 지칭하면서 이른바 ‘무릉도원’을 흉내 내기에 이르렀다. 그리고는 자신들을 스스로 신선이라고 칭하는 무례(無禮)까지 범하고 있다.
‘도화동’은 이처럼 인간의 범접이 어려운 깊은 계곡 끝에 숨겨져 있다. 뒤집으면, 전국 명산대천의 가장 깊은 막장에 ‘도화동’이 자리 잡고 있다는 뜻이 된다.
이처럼 무릉도원은 사람들의 눈에 쉽게 띄지 않는 곳에 자리한다. 험산을 넘고 사람 하나 겨우 지나는 협곡 맨 마지막에 숨어 있는 것이다.
전국적 오지로 첫손가락 꼽히는 봉화, 그중에서도 다시 첫 번째로 꼽는 백리장천 고선계곡 골짜기 맨 뒤에 ‘도화동’이 숨겨져 있는 것이다.
이 지방에서만 평생을 살아온 토박이들도 고선계곡이라면 대충 들어봤어도 도화동이라면 낯설게 생각한다.
그만큼 선계(仙界)인 것이다.
노룻재 넘어 현동에서 태백 방향으로 무진랜드를 지나면 고선계곡 잔데미마을 입구가 나타나는데, 여기서 부터가 고선계곡의 시작이다.
‘삼척 구마동’이라고 불렸던 고선계곡은 과거 1급 귀양처였던 남한의 「삼수갑산(三水甲山)」이다.
산이 높고 골이 깊은 첩첩산중, 봉화의 3대 계곡 중에서도 가장 외지고 깊다는 골짜기가 구마동계곡이며, 백리나 된다는 그 계곡 끄트머리에 도화동이 아슬아슬하게 붙어있다.
풍수설에 의하면, 이 계곡에는 아홉 필의 말이 한 기둥에 메여있는 ‘구마일주(九馬一柱)의 명당’이 있다고 하나 지금껏 아무도 이 명당을 찾아내지는 못했다고 한다. 무릉도원 설화와 흡사한 전설을 가진 곳이다.
1980년까지는 여기에 초등학교 분교가 있었다. 고선초등학교 도화분교가 그것이다.
한때 도화분교 학생은 30명이나 되었단다.
그때 초임교사로 발령받았던 장극조 선생님(70세)은 자전거도 들어갈 수 없는 외딴 오솔길을 이불보따리를 짊어진 체 다리를 걷어붙이고 개울물을 이리 헤치고 저리 건너서 해 그름에야 겨우 도착할 수 있었단다.
그곳은 40년 동안 ‘도화사’라는 암자(庵子) 혼자 외롭게 그늘진 비탈을 감당하고 있다가 지금은 산림관리용 도로가 개설되면서 이 골 저 골을 따로 점령한 네 가구가 각각 돌아앉아 살고 있다.(귀촌 익명, 66세)
이곳에 전기불이 들어 온지도 이제 겨우 4년째란다. 그러나 아직도 결코 밝아졌다고 할 수 없는 곳, 고선계곡 ‘도화동’이다.
도화원기의 ‘무릉도원’에 해당하는 곳을 도교에서는 ‘동천복지’라고 한다.
경승지에 신선의 ‘낙원’이 숨겨져 있다는 사상이다.
즉 ‘동천’은 동굴 속 별천지를 말하고, ‘복지(福地)’는 각종 재앙이 닿지 못하는 이상향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이들 동천복지들은 모두 땅속의 길로 연결되어 있다고 한다.

홈페이지관리자 기자  .
“봉화일보 인터넷뉴스”
- Copyrights ⓒ봉화일보 인터넷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봉화일보 인터넷뉴스 기사목록  |  기사제공 : 봉화일보 인터넷뉴스

 

이전 페이지로

실시간 많이본 뉴스

 

봉화 명호면 고감2리, 싱싱고향별곡..

봉화군민들의 생각을 묻습니다

5월 가정의달을 맞아

산자들의 영화 - Ⅲ

패스트 트랙법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2019 경산자인단오제 6월 7~9일 개..

관악산을 다녀와서…

‘동양 최대 반가사유상’ 봉화 석..

지방자치법 개정에 기대를 건다

봉화 춘양 라이온스클럽, 경로당에 ..

회사소개 - 조직도 - 임직원 - 광고문의 - 제휴문의 - 청소년보호정책 - 기자회원 약관 - 구독신청

 상호: 봉화일보 인터넷뉴스 / 등록번호: 경북아00144 / 등록일자 : 2010. 8.26 / 주소: 봉화군 봉화읍 봉화로 1103 / 발행인,편집인: 권영석
mail: rkd9200@naver.com / Tel: 054-672-0077 / Fax : 054-674-0090 / 청소년보호책임자 : 권영석
Copyright ⓒ 봉화일보 인터넷뉴스. All Rights Reserved. 본지는 신문 윤리강령 및 그 실천요강을 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