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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마·을·탐·방 (46)명절제사를 함께 모시는 야성송씨마을 상운면 운계리 괘별

봉화문화연구회 박 대 훈

2019년 05월 06일(월) 14:32 [봉화일보 인터넷뉴스]

 

↑↑ 마을입구 모습

ⓒ 봉화일보 인터넷뉴스

↑↑ 마을전경

ⓒ 봉화일보 인터넷뉴스

↑↑ 야성송씨 재사(齋舍) 겸 회관 독경재

ⓒ 봉화일보 인터넷뉴스

↑↑ 합동 위패

ⓒ 봉화일보 인터넷뉴스

봄날의 들판은 온통 꽃밭이다. 온갖 색깔의 꽃들이 눈을 호강시킨다. 꿀 없는 꽃들은 더욱 화려하다. 이런 들판을 가로질러 상운면 운계리로 향했다.
상운 소재지에서 봉성으로 가다보면 괘별마을 못 미쳐 우측에 篤敬齋(독경재)라는 돌비석이 서있다. 그 앞 산중허리로 나있는 비탈길을 300m 쯤 오르면 작은 마을이 나타난다.
작은 괘별이라는 마을이다.
괘별(掛星)이란 마을 뒷산에 별이 걸려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그렇게 부른다고 한다.
이곳은 전부 야산들인데 옛날 사람들은 그렇게 높은 산이라고 보았는 모양이다.
1.524m밖에 안 되는 중국의 태산을 태산 같다고 하는 것처럼 말이다. 길은 차가 한 대 겨우 갈 수 있는 것으로 산 옆으로 나 있는 길이 중간쯤에서 북쪽으로 꺾이어 들어가는 형국이다.
요즘은 어딜 가나 들길도 시멘트포장쯤은 되어있어, 밖에서는 도저히 마을이 있을 것 같지 않은 그리 넓지 않은 곳에 남쪽을 향하여 작은 마을이 들어앉아있다.
마을 뒷산은 5월에 꿀 항아리를 쏟아 부을 아카시아 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고, 앞은 논과 과수원이 차지하고 있는데 지금 사과 꽃이 한창이다.
마을 중간에 이층 슬러브로 된 큰 집이 보인다. 이 산골에 왠? 하는 놀라움이다.
입구에 독경재라고 하여 그냥 재사하나 있겠거니 했는데 그게 아니다.
그 건물이 바로 야성송씨 우후공파(虞候公派)의 사우(祠宇)겸 회관으로 쓰는 독경재라는 건물이다. 2003년 9월에 준공했다는 재사(齋舍)는 자손들이 성금을 모아 건립한 것으로 이층은 좀 작어보이나 1·2층 합치면 70평은 넘을 것 같아 보인다.
건물 앞에 서있는 안내판에는 석충 눌재(碩忠 訥齋)가 시변(時變)을 피해 1498년 한양에서 영주로 낙향하였으며 선생의 손자 우후공 덕숭(德崇)을 파조(派祖)로 하여 공의 4세손 세연(世連)이 1662년 영주에서 문촌으로 이거하여 이곳 야성송씨의 입향조가 된다고 하였다.
독경재 뒤에 사시는 엄성현(83세)어른은 마을구경을 나왔다고 하자 “할 일도 되게 없니더. 얼굴이 설다”며 이것저것 얘기해 주신다. 이웃 큰 괘별에 살다가 이리로 온지 50년은 됐다면서 여기가 작은 괘별로 행정구역으로는 운계2리에 속한다.
전에는 큰 괘별하고 딴 반이었는데 인구가 줄어 한반이 됐다.
여기가 많을 땐 7-8집 됐다.
옆에 있던 이웃집 할머니는 15집 쯤 됐다고 하셨는데 “그냥 하는 소리지 뭐 두 번 엄치면 그쯤 될까”하신다. 여기는 송씨가 세집, 김씨 한집, 엄씨 한집으로 전부 다섯 집이 살고 있다고 하신다. 여기는 서리도 안 내리고, 바람도 없고, 우복동(병화.兵火가 침범하지 못한다는 상상 속의 마을. 실지로 있는 상주시 화북면 십승지마을)이지. 내가 여기서 두 번째다. 서글프다. 옛날엔 70이면 상노인이었다. 갈 때는 순서가 없다. 인제는 죽어야 돼, 잔병에 효자 없다. 부모가 효자 만든다. 보고 배우는 게 교육이다. 몸이 불편해 보이는 노인의 넋두리다.
독경재 앞의 송태성(85세)어른도 몸이 불편해 보인다. 6.25사변 때는 14집인가 그랬는데 전부 송씨뿐이었다. 그때 상운 가곡으로 소개(疏開)되어 갔는데 큰 괘별도 다 소개 되었다가 1년 후 쯤 돌아왔다. 농사는 다니면서 지었다. 원래는 우리집안이 문촌에서 살았으나 지금 거기는 한집도 없다. 입향조 산소는 거기에 있다.
재사(齋舍)를 왜 저렇게 크게 지었느냐? 그리고 어째서 회관을 겸하게 되었느냐? 고 여쭤보니 모두 나가 살아서 그렇지 전에는 여기가 우리 집성촌이었다.
부친(송학순. 宋學淳)대가 7남1여로 한번은 가을에 시제(時祭)를 지내러 모였는데, 모두 흩어져 살다보니 크는 아이들이 서로 얼굴도 모르고 잘못하면 연애를 할지도 모른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얼굴 안 보면 안 된다. 추석, 설, 한해 두 번이라 도 얼굴을 보자 아이들 다 데리고 와서, 그래서 회관을 지어 명절제사를 같이 모시면 좋겠다고 의견이 모아져 시작하게 됐다. 독경재 터가 원래는 내 땅이었는데 돈 한 푼 안 받고 줬지.
제사는 4대를 모시는데, 진설은 함께 차려놓고 제일 큰집부터 자손들이 돌아가면서 잔 올리고, 나이 제일 많은 분을 초헌관으로 하여 같이 절하고 지낸다. 제사준비는 유사로 선임된 3집이 미리 와서 마련한다.
사람들은 모두 하루 전에 오지만 당일 오기도 한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온 집안이 다 모인다. 아이들하고 80여명 된다. 그런데 한번은 설에 눈이 많이 와서 사고가 날지도 모른다고 하여 당분간은 추석에만 모이기로 했다.
종중대표를 맡고 있다는 송광한(67세)씨의 부인의 안내로 독경재 안을 둘러봤다.
1층은 교실 같은 큰 강당으로 회의와 공동숙식이 가능하도록 되어 있고, 뒷 벽면엔 전체 가계도가 사위까지 상세하게 그려져 있었으며, 관련되는 사진들이 밑면에 곁들여 있었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벽면에는 각 집안별로 가족들 사진이 따로 따로 액자에 걸려있었다.
2층엔 뒷 벽면에 위패들이 항렬대로 층별로 모셔져있고 그 앞바닥엔 제상이 길게 놓여있고 그 중앙에 커다란 놋쇠향로가 놓여있다. 제관들이 참배하는 자리는 부족했던지 증설이 되어 있었다.
형제간에 모여도 싸우고 데면데면한 집들이 많은데, 온 집안이 추석, 설날에 함께 모여 조상을 모시며, 아이들과 함께 우애를 나누는 모습은 조선시대에도 없었을 상상만 해도 가슴 뭉클한 장면이다.

홈페이지관리자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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