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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마·을·탐·방 (47)옛날 옛적의 전설 속 마을 ‘고늘미’

봉화문화연구회 강 필 구

2019년 05월 12일(일) 16:23 [봉화일보 인터넷뉴스]

 

↑↑ 고늘미 마을입구의 서낭당.jpg

ⓒ 봉화일보 인터넷뉴스

↑↑ 고늘미 마을 들어서며 보는 마을 전경

ⓒ 봉화일보 인터넷뉴스

↑↑ 고늘미 마을입구 전경

ⓒ 봉화일보 인터넷뉴스

↑↑ 이경희(89세) 할머니

ⓒ 봉화일보 인터넷뉴스

언제부터 사람들이 살았을까?
36번국도 법전면 소천리에서 명호로 나가는 35번국도 청량로를 따라 개노리재로 오르는 길섶에 눌산1리로 들어가는 이정표가 있다.
이 도로가 개설되기 전 늘미마을은 걸어서 들고 날 수밖에 없는 그야말로 ‘듬’이어서, 마음먹고 찾아야하는 폐쇄된 오지로 엔간한 사람들은 소문으로만 들어서 알고 있는 마을이었다.
근래에 개설된 청량로는 아직 낯설었고 마을로 이어지는 길은 깨끗한 포장으로 새 길의 냄새가 남아있다.
눌산1리는 새터, 늘미, 감보개, 거리늘미, 고늘미, 정수암, 멀골, 마그내, 아람으로 나누어진 작은 부락들이 산재해 있지만 모두 늘미로 대표되고, 현포(玄浦)로 불렸던 감보개와 고늘미에서 시작된 마을이다.
눌산(訥山)은 늘산으로 불리고 한자표현 눌곡(訥谷)으로 쓰고 늘미로도 불렀다. 남쪽으로 월암산(月岩山 해발 608.3m)이 안산으로 늘미마을 전체를 감싸듯 두르고 있다. 늘미로 들어서면 새로 만든 새터와 감보개의 앞으로 마을길이 나있고 마을가운데 눌산초등학교를 보게 되는데 지금은 폐교되어 월암산 마을공동체 ‘된장은행’으로 거듭났다.
여기를 마을입구라고 해서 ‘거리늘미’라 하고, 여기에서부터 ‘아람옛길’을 내려가는 시작점이 된다. 고늘미는 거리늘미에서 마을 뒤로 완만한 오름길을 500여 미터나 올라야 한다.
고늘미 입구에는 노란색의 정갈한 서낭당이 오래된 느티나무와 물푸레나무를 당수로 금줄과 함께 치장되어있다.
서낭당을 돌아 올라서면 멀리 산 아래에 양 갈래의 골을 따라 옥토와 집들이 형성되어있다.
옛날 할머니의 무릎에서 들었던 오래된 마을같이 변하지 않은 마을의 모습이 정겹고, 이런 높고 산으로 둘러싸인 오지에 기름진 땅이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옛 사람들은 어찌 이런 곳을 찾았을까?’ 햇빛 좋고, 기름지고, 바람이 막아지는 풍요로운 터전은 사람을 편안하게 한다.
마을에서는 월암산이 낮은 안산 너머에 있어 바로보이지 않고 둘러선 산들이 야트막한 병풍으로 마을을 감싼다. 늘미였던 마을에 사람이 늘어 분가를 하게 되고 늘미를 벗어나면서 마을을 개척하니 본래의 늘미는 ‘고늘미(古訥谷)으로 불렸다. 원조 늘미가 된 셈이다. 여느 마을같이 고늘미도 산 따라 휘돌아 작은 개울 곁으로 길이 나 있고 길 위에서 마을 전체를 조망하며 마을로 들어간다.
마을은 가운데로 뻗은 산자락을 두고 동편으로만 집들이 들어서 있다. 이유를 물어도 아는 이 없어 추측으로 동쪽에서 양의 좋은 기운을 받는 곳에 집을 두는 풍수의 영향이었을 것이라 짐작한다.
갑자기 방문해도 반가워하는 이경희(89세)할머니는 왜소한 체격에도 꼿꼿하고 건강하셨다.
첫 말씀이 “이곳은 옛날 어르신들이 피난 곳 이래요.” 다른 전해진 말씀은 없고 열일곱에 시집와서 평생을 고늘미에 묻혀 사셨단다. 아직 정신이 좋아서 사리분별이 또렷하시니 다행이다.
밭에서 일하던 정충호씨(72세)를 만났다. 얼굴에 부지런과 성실함이 묻어나오는 인상이 편안하다. “마을의 농토를 만들기 위해 공사한 적이 있어요?”하고 물었다. “본래 주어진 자연대로 가꾸기만 하고 갈고, 씨 뿌리고, 걷기만 했지 특별한 조성은 없었지요” 마을의 농토가 참 자연스럽고 잔잔한 경사도가 물 빠짐이 좋고 오래 가꾼 기름진 터여서 물어 보았다.
마을에는 눈에 보이는 대로 “여섯 집이 사네요?”하고 물었다.
고늘미 토박이인 정충호씨는 “마을에 본토박이는 다섯 집이고, 근래 귀농한 여섯 집이 산위로 산재하여 모두 열한집이 사니더.” 본래 청주정씨가 많이 세거 했었는데 모두 떠나고 지금은 청주정씨 두가구와 봉화금씨 두가구, 의령여씨 한 가구가 삽니다.“
이미 서낭당제 운영을 정충호씨가 맡아서 한다고 이경희 할머니에게 들어서 “서낭당 운영은 어떻게 해요?” 하고 물었더니, “이제 다섯 집이 누구 가릴 것도 없어 내가 맡아서 하는데, 두서가 없고 간편하게 제를 지냅니다. 옛 격식은 갖추려하고, 제물이나 축도 한글로 써서 읽고, 소지도 올려 제를 지내고 나면 마음이 편안해 집니다.” 삶이 그렇다. 기원은 간절하고 정성이 느껴지면 이루어지는 것이다. 정충호씨는 “이제 무엇을 특히 얻으려고 애쓰지는 않니더. 모두 건강하고 편안한 삶을 가꾸시기를 기원하지요.”
마을 입구 서낭당 터는 넓고 가파른 통 암반으로 이루어진 특이한 지형이다. 마을 어귀를 비보림으로 미루나무를 심어 두 아름드리가 되었는데, 수해에 피해를 입고 복구를 위해 잘라서 쓰는 바람에 모두 잘려지는 아쉬움이 남았다.
70년대에 큰 수해가 없었다면 아직 멋진 미루나무 숲이 장관을 이루어 마을의 수호를 하는 비보림으로 사랑받았을 것이고, 보호수로 남아 있었다면 멋진 자연과 어울려 고늘미의 품격을 더 높였을 것이다.
고늘미는 아래 늘미마을과는 또 다른 본래 늘미가 가지고 있던 자연색을 지키고 있다.
이런 곳은 자연이 사람을 키운다는 말을 실감 할 수 있는 진짜 ‘듬’이다.

홈페이지관리자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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