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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마·을·탐·방 (49) 고직령 성황신 고사에 참석하다

봉화문화연구회 박 대 훈

2019년 05월 26일(일) 15:03 [봉화일보 인터넷뉴스]

 

↑↑ 성황당옆 돌무덤.

ⓒ 봉화일보 인터넷뉴스

↑↑ 금색줄 새끼꼬기.

ⓒ 봉화일보 인터넷뉴스

↑↑ 성황신 고사 참배 모습.

ⓒ 봉화일보 인터넷뉴스

↑↑ 산령각 주변 청소.

ⓒ 봉화일보 인터넷뉴스

고직령(高直嶺)은 서벽2리 뒷산으로 구룡산 능선에 있는 고개로서 그 정상 부근에 있는 산령각은 매년 음력 4월 8일 고사를 지낸다고 한다.
군내에는 이곳 말고도 박달령 산령각, 넛재 성황당(산령각)도 같은 날 고사를 올리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성황당 고사는 정월 보름에 지내는데 산령각은 사찰의 산신각처럼 사월 초팔일에 고사를 지내는 것은 불교의 영향을 받은 게 아닌가 생각된다. 고
직령 산령각은 1,000고지가 넘는 산중에 위치하므로 아침 일찍 마을에서 출발한다고 하여 그 시간에 맞추느라 서둘러 집을 나섰다.
혼자 간다는 게 좀 뭣해서 어제 연락해 두었던, 전에 이 지역에서 근무한 적이 있는 지인을 꼬드겨 동행을 하게 되었다. 서벽마을에 도착하여 그동안 연락을 주고받던 김영호(61)이장님을 만나 그의 안내로 사람들이 모여 있는 장소로 가서 승용차는 갈 수 없는 비포장 산길이라고 하여 여러 대의 트럭으로 나누어 갈아타고 갔다.
임산도로를 따라 1킬로쯤 계곡 안으로 나있는 길을 돌아 돌아 오르다 어느 지점에선가 차를 세우고 차에 싣고 온 짐들을 나누어 배낭에 담고 길도 보이지 않는 산비탈로 올랐다.
전에는 오르는 길이 있었다는데 임산도로가 나면서 당초길이 없어지고 새로 낸 길이라고 한다.
그러다보니 첫발부터 벽을 타고 오르는 기분이다.
고직령 오르는 길은 옛날 보부상들이 장성, 삼척장을 보기위해서 다니던 길로 오르는 산등성이마다 한길씩이나 파여 있어 수많은 발길이 있었음을 짐작케 한다.
모처럼 하는 등산에다 아침도 못 먹은 산행이라 에너지가 고갈된 형편이지만 식사대용으로 갖고 간 간식도 먹을 형편이 안 된다.
산길은 지난 4월초 늦게 온 설해로 소나무 피해가 심하고 넘어진 나무들이 군데군데 길을 막아 곡예 하듯 넘는다.
얼마나 올랐을까 드디어 눈앞에 산령각이 보인다.
그 바로 직전에는 돌무덤이 있다. 오랜 세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며 돌을 던졌길 레 작은 동산을 이루고 있다.
당집은 목조로 되어있고 지붕은 함석인데 밑 부분은 안에서 밖이 보일정도로 낡아있다.
산령각을 반 정도에서 가운데 여닫이문을 달고 안에는 신위(神位)가 중앙에 모셔져있고 옆으로는 제물 진설을 하도록 되어있고, 밖에는 제관이 절을 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그 윗부분 양쪽에는『高直嶺』『山靈閣』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그런데 한지에 실타래로 싸여있는 신위는 『城隍神位』라고 쓰여 있다. 연유를 아는 사람도 없다.
성황당은 원래 마을 어귀에 위치하며 마을을 지키는 신이고, 『山靈閣』은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높은 산길에 위치하여 길손의 안녕을 지켜주는 신으로 알고 있는데, 뭔가 안 맞는 느낌이다.
산령각에서 조금 더 오르니 고직령 정상인데 헬기착륙장이었다고 하나 언제부터 폐쇄되었는지 보도블록들이 사방 흩어져있고 거기 서있는 나무들이 제법 크다.
고도를 재어보니 1,219m라고 가리킨다. 이 높은 고개를 넘어서 장성, 삼척장을 보러 다녔다고 하니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그것도 쌀가마와 소금가마를 번갈아지고 다녔을 그분들은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생각만 해도 숨이 가빠오고 등허리에 땀이 맺힌다.
당제준비는 올라온 사람들이 서로 알아서 나뉘어서 일부는 청소를 하고 일부는 금줄새끼를 꼬아서 당집에 두르고, 일부는 제당에 한지를 새로 바르고 제물을 진설했다.
제물은 가정제사와 비슷하나 백설기와 돼지머리가 더 있을 뿐이다. 매년 하던 일이라 그런지 누가 지휘를 하지 않아도 사람들은 손발이 척척 맞는다.
오늘 함께한 사람들은 우리를 합해서 모두 열네 사람으로 그중에 귀농인이 두 사람이라 한다.
귀농한지도 오래되지 않았다는데, 내가 겪어본 귀농, 귀촌인 들은 대체로 배타적이었는데 의외라는 생각이 든다.
그분들은 이렇게 말했다.
귀농인이나 여기 살고 있는 사람들이나 서로 마음 문을 열어야 한다. 귀농인덕에 군이 유지된다(인구 면에서). 귀농인 들이 봉화로 오는 건 아직은 땅값이 싸기 때문이다. 평당 10만원 넘으면 무조건 농사는 적자다. 공기 좋고, 물 좋고, 축사 없어서 여기 정착했는데, 다른 군에 비하면 봉화는 지원이 적다. 다른데 는 먹고살도록 해 준다는데, 일에 미친 공무원 열만 있어도 봉화군이 달라진다. 여기는 그런 공무원을 못 봤다.
당 고사는 이장을 초헌관으로 하여 막걸리 술잔을 올리고 축관이 축문을 읽고 다 같이 절을 하고 소지를 올렸다. 여러 사람들이 차례로 소지를 올리고 내게도 소지올리는 기회가 주어졌다.
돼지주둥이에 소원 상납금을 물리고 “지금 나라가 매우 위중한 형편이니 잘 지켜 주이소”하고 기원을 드렸다. 소지를 올려보기는 생전처음이다. 이 행사는 마을의 연중행사로 마을 기금에서 40만원의 지원을 받고, 소지올릴 때 찬조금을 보태서 쓴다. 8개 반이 돌아가면서 유사를 맡는데 올해는 6반이 맡았다고 한다.
告祀를 마치고 산령각 앞에 둘러앉아 음복을 하고 올라왔던 길로 내려오는데 음복을 한 후이기도 하지만 역시 내려오는 길이 쉽다. 산 밑 주차가 가능한 너른 곳에는 아주머니(가족들인 듯)들이랑 육칠명의 사람들이 삼겹살구이랑 점심 준비가 한창이다.
갖고 온 옛날 장부를 보니 병오년(1966) 4월 8일 산령각 건축모금에 170명이나 되는 사람들의 성금내역이 적혀있고, 서벽2리뿐 만 아니라 서벽리 전체와 애당리 사람들까지 적혀있었다.
지금은 보부상발길도 끊기고 등산객 외엔 다니는 사람들도 없겠지만, 그분들과 동민들의 안녕을 위해서 그 오랜 세월동안 산령각을 지켜온 서벽사람들의 노력이 가상스럽다.

홈페이지관리자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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