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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의 만행(卍行)

2019년 06월 02일(일) 13:32 [봉화일보 인터넷뉴스]

 

↑↑ 박하식- 소설가

ⓒ 봉화일보 인터넷뉴스

효봉(曉峰)스님 학눌(學訥) 속명 이찬형(李燦亨․ 1888~1916)은 평남 양덕에서 태어났다.
효봉은 어린 시절 서당에서 사서삼경을 배웠다.
1910년 평안도관찰사가 개최한 백일장에서 장원을 했다.
일제치하에서 평양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에서 법학을 전공했다.
26세에 사법고시에 합격하여 한국 사람으로서는 최초의 판사가 되어, 평양지방법원과 서울 복심법원에서 근무했다. 그러나 일본 사람인 법원장은 조선독립군들의 사형언도를 고의적으로 효봉에게 넘겼다.
1923년 일이다. 효봉이 재판정에서 한 독립군에게 사형언도를 내리자, 사형 언도를 받은 독립군 청년이 쏘아보며 말했다.
“당신은 어느 나라 사람인가? 일본 놈의 개가 되어 조선 사람이 조선독립운동을 한 사람을, 조선 놈이 형제를 몰라보고 조선 사람을 죽인단 말이냐. 지금은 당신의 말 한마디에 내가 죽지만, 만약 당신이 죽어 저승에서 만났을 때는 내가 당신을 죽일 것이다. 하늘이 무섭지 않느냐?”
눈에 눈물을 흘리며 사형장으로 끌려가던 청년의 모습이 자나 깨나 눈앞에 떠돌았다.
아, 나는 죄인이다. 조상 앞에 죄를 지었고 나라에 큰 죄를 지은 죄인이다.
효봉은 ‘살인범이 아닌 사람을 오판으로 죽였다. 판결 후에 범인이 나타났다. 오판한 죄책감을 떨치지 못하여 판사직을 사직하고 떠났다’는 설도 있다.
효봉은 심한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죄책감과 회의에 사로잡혀 견딜 수가 없었다. 어느 날 밤 잠든 막내딸을 한번 꼭 껴안아 주고, 맏아들과 둘째 아들은 머리를 한 번씩 쓰다듬어 주고 깊이 잠든 아내의 얼굴을 그리면서 마침내 판사직과 집을 버리고 방랑의 길을 떠난다.
남루한 옷을 입고 지개에 엿판을 얹어 짊어지고 “엿 사시오” 가위를 떨걱거리며, 남도 천리 길, 전국 방방곡곡 삼천리강산을 떠돌며 민심을 가슴에 새겼다.
조선 사람들이 강토를 일본에 빼앗기고 망명한 만주 벌판과 간도 땅까지 떠도는 운수행각 끝에 발길은 금강산에 머물렀다
1925년 금강산 신계사(神溪寺)에 이르러 임석두(林石頭)스님을 만나 은사로 계를 받았다.
그때가 38세였다. 법명은 원명(元明)이었다.
승려로 전국을 떠돌다가 1927년 다시 금강산으로 돌아와 조주(趙州)스님의 ‘개에게는 불성이 없다’(狗子無佛性)이라는 화두(話頭)를 들고 참구(參究)를 시작했다.
토굴 속에서 하루 한 끼만 먹으며 구경의 목적을 위해 용맹정진 했다. 1931년에 도를 깨닫고 벽을 박차고 밖으로 나왔다. 깨달은 구경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세상은 무(無)였다. 원래 법이란 없었다. 인간이 인간을 재판할 권리는 없다. 법이란 인간들이 자기의 적을 제거하기 위해 만든 구실일 뿐이다.
그는 절구통처럼 좌선을 한 채 눕지도 않고 잠을 잔다하여 ‘절구통 수좌(首座)’라는 별명을 얻었다.
효봉은 아들이 결혼을 하여 아내와 함께 금강산 구경을 왔다가 신계사에 들렸는데 숨어버렸다.
육신의 정을 두면 안 된다. 그는 세상 인연을 끊은 지 오래였다.
1937년 이후 전남 송광사에서 10년간 수행을 했다. 상원사 정암사 봉정암을 떠돌다가 1945년 광복이 되자 종합수도원인 가야총림(伽倻叢林) 방장(方丈)으로 추대 되었고 미래사(彌來寺)를 창건 했으며, 1954년 선학원에서 정화불사운동을 지도 했다.
1957년 조계종 총무원장과 종정, 1962년 통합조계종단 초대 종정을 지내는 등 고려시대 지눌(知訥)의 ‘정혜쌍수’의 사상을 다시 세우는 현대 한국불교에 큰 공을 남기고, 1916년 밀양 표충사에서 입적했다.

홈페이지관리자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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