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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마·을·탐·방 (50) 평산신씨 집성촌 마을 수식리 ‘황산’

봉화문화연구회 이 기 락

2019년 06월 02일(일) 14:35 [봉화일보 인터넷뉴스]

 

↑↑ 상황산 마을 전경

ⓒ 봉화일보 인터넷뉴스

모든 식물이나 동물이 살아가고 성장하기 위해서는 물과 햇빛이 필요하다.
사람은 거기에 하나 더 필요하니 교육이다. 폭포나 급류수는 풍광이나 레프팅 같은 레저는 제공하나, 농경사회가 시작된 이래 농사에는 천천히 흐르고 쉬어가는 물이 필요하니 지명에서 보듯 물이 쉬어가는 물야면 수식리(水息里)는 농사가 잘되고 사람 살기 좋은 곳이다.
지난날 언제는 봉화읍 화천리 공중바위 산을 가로질러 댐을 설치한다고 타당성 조사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랬다면 정말로 물이 쉬는 저수지가 될 뻔 했다.
울진군 온정리가 온천 동네가 되고, 청주시 비상리가 비행기가 날아오르는 공항이 들어선 것처럼 말이다.
이 곳도 열두 무지미란 말이 있을 정도로 자연부락이 많은데, 그 중 평산(平山) 신씨(申氏) 집성촌으로 많은 문사와 인재를 배출한 황산(黃山) 마을을 찾았다.
황산마을은 상 황산, 하 황산으로 나누어진다.
황산마을은 물야 가평리 계서당 앞길을 지나 두문 삼거리에서 봉화땅 끝자락 영주경계지점에 있다.
수식과 서울을 오가며 사시는 게이트 볼 회원인 신동섭(79)씨가 양지마 다리 입구 까지 마중을 나와 쉽게 그의 집으로 향했다.
방안 가득 책이 벽면 좌우로 꽂혀 있고, 어떤 책들인가 눈을 두리번거리는데, 커피부터 한잔 하고 천천히 이야기 나누자 한다.
“이 집은 종숙부 어른이 살던 집으로 그분은 한학을 많이 하시었고 수십 년 전에 저 옆에 정사(精舍)도 지었지요” 하며 족보를 내어 주고 참고가 되면 보라고 박정희 대통령 시절 청와대 비서관을 지낸 우리나라 조선업의 대부 신동식 박사의 책을 한권 내어 준다.
“선조들의 문집 중 번역된 것은 없나요.? ”
“나는 외지에서 오래 살아 잘 모르는데 전에 도둑을 맞아 고서를 많이 잃었다고 들었어요.”
봉화군지에 나와 있는 몇 몇 이 곳 인물들을 묻고 족보를 뒤적이다가 30여 미터 떨어진 수양정사(水陽精舍)로 갔다.

↑↑ 320년 회화 나무는 수은당(오른쪽)과 큰법당(왼쪽)을 바라보고 있다.

ⓒ 봉화일보 인터넷뉴스

오래되지 않은 3칸 맞배지붕 기와집인데 관리는 되지 않은 상태였으나 <水陽精舍>현판이 걸려있고 내부에는 수양정사記가 걸려있다. 사진 몇 장을 찍고 평산 신씨 宗家가 있다는 상 황산 마을로 갔다. 행계서원 들어가는 입구 길로 들어가 왼쪽 마을 이었다.
종가가 있던 터에 300년 넘은 보호수인 회화나무는 그대로이나 종택이 있었다던 자리는 사찰이 들어서 있었고 석가 탄신일을 맞아 연등이 걸려있다.
서울 있는 종손(신동식申東植, 1932생)이 1973년경인가 쇠락한 종택을 헐고 집안어른들이 멀리 가지 말고 가까이 절에 다니라고 세운 것이란다.
수은당(水隱堂) 신계숙(申繼叔) 선생이 살았던 <水隱堂(수은당)>은 당호만 겨우 보일 뿐 주렴도 사라졌고 사찰의 살림집으로 바뀌어 있었다.
70년대 들어 경제 개발과 한국 농촌의 이농(離農) 현상은 가치관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으니 이곳 수식 평산 신씨 마을도 예외는 아니어서 박정희 대통령 시절 청와대 비서관을 지낸 종손 신동식씨는 제 5공화국 시절인 1981년 11대 국회의원 선거에 민정당 공천를 신청했으나 무산되고 무소속으로 출마 낙선의 고배를 마신 후 한동안 고향에 들르지 않았다.
바쁜 농사철이라 만나 물어 볼 사람을 찾기도 쉽지 않아서 되돌아오고, 다음 날 신언철 선배를 통해 신언빈(76세) 씨를 만나게 된 것은 무척 다행이었다.
이곳 태생으로 학창 시절을 이곳에서 보내고 서울서 생활하다 귀향 1년차인 그는 족보와 선조들의 家系에 관심 갖고 공부하며 조상들의 묘를 찾는 일도 하고 있었다.
그의 설명과 족보등 자료를 정리해 보면 평산 신씨는 태조 왕건을 도와 고려를 세우는데 공헌한 장절공(壯節公) 신숭겸(申崇謙)을 시조로 하며 그 후 조선조 초에 들어와 18개 派가 생겼으며 그 중 고려조 진사 벼슬을 한 신유(申 維)는 진사공파 파시조로 평산 신씨 15세이며 예천 호명에 정착해 살았다.
이곳 수식에 들어오게 된 연유는 유(維)의 현손이요 능참봉을 지낸 타괴헌(打乖軒) 공온(公蘊)이 수식에 살던 병사(兵使) 영해 박씨 박자범(朴自範)의 딸과 결혼하게 되면서 였다.
박자범에게는 후손을 이을 자손이 없어, 공온의 3째 아들 신계숙(申繼叔)이 외손봉사를 위해 1,550년 경 수식에 들어와 살게 되면서 였다.
그는 어모장군을 지냈으며 덕행이 훌륭하고 효성이 지극해 모친이 위독할 때 다섯 손가락을 잘라 피를 마시게 한 오지효(五指孝)로 알려졌다.
황산에 집을 짓고 號를 水隱堂이라 하였고 여관 (汝瓘) - 광익(光益)으로 代을 이으며 광익의 맏아들 경명(敬命)은 지금의 상황산에 둘째 경수(敬受)는 하황산에 터전를 잡았고, 조카 균(均)은 양지마 (水陽)에 터를 잡아 평산 신씨 수식 가문을 이루어 갔다.
평신신씨 가문에서는 타괴헌이 1,500년경 수식에 들어와 잠시 기거해 그를 입향조(入鄕祖)로 보고 있으며, 봉화군지 기록(834P)에는 수은당 신계숙을 입향조라 기록하고 있다.
그 후 代를 이어 많은 문재(文才)를 배출했으니, 양지마에는 재하(在夏. 1793~1857), 백사(白史) 석정(錫鼎. 1818~1900), 희암(希庵) 태일(太逸), 만사(萬事) 언구(彦九), 수양(水陽) 효순(孝淳)으로 이어지며, 효순은 1981년 수양정사를 세우고 기문을 남겼다.

↑↑ 신효순이 세운 수양정사

ⓒ 봉화일보 인터넷뉴스

많은 인물들이 배출된 것은, 바로 옆 마을에 위치한 행계(杏溪)서원이 크게 기여한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행계서원은 선성김씨의 오수 김 강(金鋼)과 북벽 김홍제(金弘濟) 선생 두분을 모시는 18세기 후반 지역 유림에서 세운 서원이다.
현재 상황산 6가구. 하황산 12가구가 살고 있으며, 축산과 표고 농사를 하는 60대의 3가구을 제외하면 대부분 논농사를 주로 하며, 노인회원은 20여명으로 안어른들이 훨씬 많다고 한다.
한때 60가구가 넘었던 평산신씨는 현재 9가구가 살고 있고 입향조 수은(水隱)공의 묘소는 대양실 뒷산에 있는데, 오늘도 마을을 내려다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자못 궁금하다.

↑↑ 수은선생 묘소

ⓒ 봉화일보 인터넷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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