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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마·을·탐·방 (52) 아름다움은 늘 원관창(原觀漲) 마을에 머문다

봉화문화연구회 김 태 환

2019년 06월 16일(일) 15:33 [봉화일보 인터넷뉴스]

 

↑↑ 원관창 마을 전경

ⓒ 봉화일보 인터넷뉴스

↑↑ 마을 입구 성황당

ⓒ 봉화일보 인터넷뉴스

↑↑ 관창폭포

ⓒ 봉화일보 인터넷뉴스



◇만리산이 만든 풍경
명호면 관창 1리 원관창(原觀漲) 마을로 가는 길은 산과 낙동강이 어우러져 빚은 절경으로 이어져 늘 차창 밖으로 시선이 머문다.
명호면 소재지를 지나 관창 2교 앞에서 우회전하여 이나리강을 거슬러 약 2~3분 정도 내려가다가 오른쪽 난 길을 택하면 관창폭포 길을 만나게 된다.
이 이나리강은 태백 황지에서 발원한 낙동강 원류가 명호에서 운곡천을 만나 청량산 앞까지 흐르는 낙동강의 별칭으로 요즘은 래프팅의 명소로 알려져 있다.
관창리천(觀漲里川)과 나란히 달리는 만리산(萬里山) 길을 따라 한참을 오르면 만리산 자락을 파고든 산마을 원관창(觀漲) 마을에 이른다.
사실 나는 10여 년 전에 관청폭포(觀漲瀑布)에 왔다가 비포장길인 오솔길을 달려 원관창 마을과 마주한 적이 있다.
그 누가 이 두메산골에 마을이 있으리라고 생각했으랴.
사람 그림자조차 반가운 이 심심산골에 누가 살고 있는 것일까?
이곳 원관창(觀漲) 마을에 언제부터 사람이 들어와 살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봉화 금씨(奉化琴氏)가 처음으로 들어와 살았다 한다.
관창(觀漲)이라는 지명 또한 마을 뒤 바위에서 낙동강물이 불어나는 것을 볼 수 있어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만리를 내려다본다는 만리산(萬里山 792m)은 백두산 천지나 한라산 백록담보다 오래된 분화구인 ‘늘못’을 품고 있는 산으로 화전민의 흔적이 곳곳에 스며있다.
사람이 만들어 놓은 풍경들이 아직도 마을 언저리에 남아 있는 산마을.
그리움과 아름다움은 늘 그런 곳에 남아 있는 것 같다.

◇산마을에 사람이 산다
마을에는 모두 5가구가 남아 있는데 그중 3가구에만 사람이 살고 있다. 이곳은 70여 년 전만 해도 10여 가구가 옹기종기 부락을 일구고 살았던 마을이다. 그곳에서 만난 이순조(80세) 할머니는 16세에 아랫마을 북곡에서 이곳의 안동 김씨 집으로 시집을 와 평생을 마을을 지키며 살아왔다 한다.
아직도 이곳엔 버스가 들어오지 않고 있다. 옛날에는 명호 5일장에라도 갈라면 관창 2교까지 내려가서 버스를 타야 했다고 한다. 그만큼 이곳은 오지 중에 오지 마을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집집마다 차들이 있어 생활에는 불편함이 없다고 한다.
할머니는 옛날에 보리방아 찧고 길쌈을 해가며 살던 시절이 요즘보다 정겨웠다고 한다.
마을에는 3가구가 귀촌을 하여왔으나 지금은 1집만 남아 있다고 한다.
이젠 산을 일구에 가꾸어 오던 주인 잃은 마을의 농토는 점차 많아져 잡초가 밭을 이루고 있다.
지금도 마을에는 대추밭 등, 인암(仁岩)쉰 바위, 기우제를 지내면 비가 왔다는 용쏘 등의 이름이 남아 사람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마을 입구에는 성황당(城隍堂)이 있는데 요즘에도 당제(堂祭)를 지낸다고 한다. 오지 중의 오지 산마을에는 한적하고 고즈넉한 풍경 같은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다.

◇자연이 빚은 풍경 관창폭포
관창폭포(觀漲瀑布)는 원관창(原觀漲) 마을로 들어가는 초입에 있다. 계곡 입구에서 폭포까지 거리를 400m라고 하지만 그 보다는 조금 더 멀어 보인다. 폭포 입구에는 관폭정(觀瀑亭)과 ‘관청폭포(觀聽瀑布)’ 시비(詩碑)가 있는데 퇴계 선생 시 「관청동폭포(觀聽洞瀑布)」를 새겼다.
이 시비는 1971년 3월에 관청폭포 계원 일동이 세우고 박수석(朴壽錫) 씨가 글씨를 썼다. 관폭정은 폭포의 인근의 뜻있는 분들이 수계(修契)를 만들어 퇴계 선생의 학덕을 기리고자 노력하던 중 2005년도 봉화군의 지원으로 건립했는데 정자에는 선생의 시판과 ‘수계안기(修契案記)’와 ‘정자신축기’가 걸려 있다. 현판은 선생의 16대 종손이신 이근필 님의 글씨이다.
관창폭포는 자연을 온전히 간직한 계곡안에 꼭꼭 숨어 있다. 기암절벽 사이의 좁은 틈으로 쏟아지는 높이 10m쯤의 물줄기 폭포수가 장쾌하여 숲에 가득하다.
퇴계 선생은 이 모습에 취하여 “높고 큰 벼랑을 그 언제 깎았던고 성난 듯 쏟아지는 천 길 비단 폭이 걸렸구나, 진동소리 산을 울려 산도깨비 다 달아나니 오롯한 한 폭 경치가 신선의 세계로구나 구름이 무너지고 우당탕 쿵쾅 눈발이 쏟아지네. 그 아래 잔잔히 깊은 못물이 밝은 거울이구나. 저 뒤 골짜기 광경은 얼마나 장관일까? 어느 날 한번 올라가서 자웅을 비교해 보리라.‘라고 하였다.
관창폭포는 퇴계선생의 뜻을 기리고자 관청폭포계(도유사 이건)를 구성하여 유지해오고 있는데 봉화, 영주, 안동 유림인사들로 구성되어있으며, 지난 6. 12일 현지에서 100주년 기념행사를 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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