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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족이 무슨 권력이란 말인가

2019년 11월 10일(일) 21:35 [봉화일보 인터넷뉴스]

 

참담한 심정으로 백범 김구 선생의 손자들을 본다.
오래 전에는 그의 맏손자가 뇌물수수로 국영기업체의 사장직에서 불명예 퇴직을 하더니, 이제는 그 둘째 손자가 또 방위산업 비리에 연루되어 구속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차마 쓰고 싶지 않은 내용이지만, 애국지사의 유족 그것도 김구 선생의 손자로 살고 있는 것이 얼마나 큰 명예인지도 모른 채 줄줄이 비리에 연루되었다는 사실이 우리의 가슴에 아픈 상처로 남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대통령의 아들이 비리에 연루되어 구속된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국영기업체의 사장직을 맡게 된 연유나 보훈처장직에 발탁될 수 있었던 사연도 모두가 백범의 손자였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사실은 누가 설명하지 않아도 알만한 일이다.
말하자면 나라가 백범에 대한 존경심과 보상으로 그 후손들에게 은혜를 베푼 자리가 아니던가 말이다.
그렇다면 그들 손자들은 그 자랑스러운 조부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최선을 다해 자신의 직책을 수행했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마치 백범의 유족이라는 것이 무슨 큰 권력이나 되는 듯이 거드름을 피면서 뇌물 챙기기에 여념이 없었다.
특히 김양 전 보훈처장의 경우는 통상의 뇌물죄와는 사뭇 다른 내용의 것이다.
어쩌다 가까운 친구의 편의를 봐주다가 받은 용돈이 문제가 된 경우와는 다르다는 얘기다.
그는 계획적으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도되고 있으니 말이다.
자신의 집 주소에 항공우주산업 컨설팅업체를 설립하여 이 법인 명의로 해외 방위산업 업체와 고문계약을 체결하고 자문료와 강연료로 14억을 챙겼다고 한다.
그리고 해상작전헬기 도입이 자신의 로비로 성공하면 또다시 수십억을 받기로 해외방산업체와 계약을 했다니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
사실이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이지만 듣기가 여간 씁쓸하지가 않다.
다른 사람이라면 법에 따라 처벌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 경우는 조금 다르다.
온 평생을 독립을 위해 몸 바쳤던 나라의 대 은인이요 스승으로도 존경받는 백범의 손자이기에 남다른 안타까움이 있는 것이다.
백범은 자신의 일지에서 이런 기록을 남기고 있다. “민족 반역자로 변절한 ‘안준생’을 체포하여 교수형에 처하라고 중국 관헌에게 부탁하였으나 관원들이 실행치 않았다” 이에 대한 주석을 보면 이렇다.
〈‘안준생’은 왜놈을 따라 본국에 돌아와 왜적 이등박방(伊藤博邦)에게 부친 의사(義士)의 죄를 사하고 ‘남 총독’을 애비라 칭하였다.〉(남 총독은 1936∼1942년, 총독을 지낸 미나미 지로(南次郞)이다(도진순).
이 일지의 내용은 안중근 의사의 아들에 관한 얘기다.
‘안준생’은 안 의사의 둘째 아들이다. 안 의사가 신부가 되기를 그 토록이나 바랐던 큰아들 안분도는 8살에 죽고, 몸이 약해 신부가 되기에 적절치 않다고 여겼던 ‘안준생’은 근근이 살아, 백범의 노여움을 사는 일을 저질렀던 것으로 보인다. 얼마나 서운하고 노여웠으면 “왜 준생을 교수형에 처하지 않았는가!”하고 절규 하였을까! 그것은 백범이 안중근 의사의 명예를 지켜주고 싶은 마음이 누구보다 앞서있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차라리 준생이 죽었으면 안 의사의 명예에 흠집은 남기지 않았을 수도 있지 않았겠는가 하는 생각을 한 것이라 여겨진다.
그러나 그것은 안 의사나 백범과 같은 비범한 인물들에게나 어울리는 생각이다.
왜정 치하에서 안중근 의사의 아들로 살아남기가 그리 쉬운 일이었겠는가! 일제의 눈길에서 피해보려고 했겠으나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블라디보스토크로 중국 상해로 쫓겨 다니는 요시찰 속의 가시밭길만이 그들의 삶의 현장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안준생’이 이등박문의 아들 앞에 꿇어 앉아 아버지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빌 수밖에 없었던 장면(1942)도 따지고 보면 일제가 연출한 하나의 연극일 수밖에 없었을 것으로 보여진다.
이런 연유였던지는 알 수 없으나 그들 가족 일행은 해방과 함께 한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상해에 눌러 앉아 있었다.
전후 사정을 보면 ‘안준생’이 악기점과 약국도 하고 교향악 단원으로 바이올리니스트로 연주생활도 하면서 자가용 자동차나 아들의 자전거도 사 준 것을 보면 상당한 정도의 재산이 있어 상해를 떠나기가 어려웠던 것으로 추측된다.
‘안준생’의 유일한 아들 안웅호(安雄浩)씨의 설명에 의하면, 1949년 재산 처분을 위해 아버지 준생만 상해에 남고 20살 누나인 선호와 12살 여동생 연호는 미국으로 떠났고 자신과 어머니 정옥녀씨 둘이서만 서울로 왔다고 한다.
상해에 남아 있던 아버지 준생은 뒷날 재산을 처분하고 홍콩을 거쳐 서울로 왔다. 그리고 곧바로 이들 가족은 6.25를 만났다.
부산 피란 중에 준생씨는 죽고 그 아들 즉 안중근 의사의 유일한 혈손 안웅호씨는 1952년 미국유학길에 올랐다.
그리고 작고할 때까지 미국에서 유명한 의사로 활동하고 있었다. 그 어머니 정옥녀는 92년 한국에서 작고했다.
이처럼 안중근 의사의 유족들은 백범 김구 선생의 유족처럼 정부로부터 아무런 혜택을 받은 것도 없이 스스로를 들어내지도 않은 채 묵묵히 살고 있다.
무엇 때문일까? 안 의사의 아들 준생의 변절 때문일까? 변절을 했다면 안중근 의사의 아들 준생이 한 것이지 손자가 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안 의사의 유일한 유족이면서도 죽을 때까지 아무 말도 없이 조용히 살고 있었던 안웅호씨의 얘기를 들어 보자.
기자(김병무)가 그의 생존 시에 물었다. 안 의사의 손자이면서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살고 있는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가?”라고 말이다. 그의 대답은 이랬다. “조부는 내 어깨에 달린 날개와 같다. 내가 무슨 일을 하건 조부의 손길은 나의 곁에 있다.
나는 조부의 영혼 안에서 태어났고 그 속에서 죽을 것이다.
나는 내 재능을 필요한 데 쓸 수 있도록 해준 것 자체로 이미 충분한 보상을 받았다.
어머니는 내가 하는 일을 한국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 조부님의 이미지를 더욱 빛나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그것이 오히려 항상 실재해 있는 조부님의 위대성을 손상시키게 되며, 그 영예를 내가 차지하려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나는 진심으로 일생동안 내가 이룩한 모든 것이 조부를 통해서였다고 느끼고 또 믿고 있다.”
안중근 의사가 사형선고를 받았다는 소식을 작은 아들로부터 들은 그의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는 작은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냥 죽으라고 그래라!” 이를 두고 어느 언론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是母是子!” 즉 “그 어머니에 그 아들”이라고 말이다. 장한 일을 한 아들이 행여나 항소라도 해서 스스로의 명예를 훼손시킬까 두려운 마음으로 내뱉은 한마디였다. 어머니의 말이 바로 아들의 마음과 같았던 것이다. 안웅호의 회견문을 보면서도 같은 생각이 든다. “그 할아버지에 그 손자라고!”
유족이라는 존재가 결코 권력이나 권세가 될 수 없다.
그런데 요즈음의 세태를 보면 〈유족〉이라는 것이 마치 무슨 큰 권력이거나 권세나 되는 것처럼 위세를 떨고 있으니 눈꼴 사납다.

강선희 기자  rkd92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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