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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보훈의 달은 가고

박하식 -소설가

2020년 06월 28일(일) 21:24 [봉화일보 인터넷뉴스]

 

ⓒ 봉화일보 인터넷뉴스

6일은 현충일, 25일은 6.25전쟁일이다. 보훈의 달이 오면 큰집 종형생각이 가슴을 친다.
올해 제65회 현충일 기념행사는 대전현충원에서 문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쓴 ‘현충원’ 현판 글씨를 안중근의사 서체로 바꿔달았다. 안중근 의사가 쓴 글씨라면 그 숭고한 정신을 기리는 뜻으로 바꾸는 것이 당연하지만, 글쎄, 그런 영혼이 담기지 않은 대필 글씨의 의미가 성립되는지 모르겠다. 우리 전통 문화는 어느 현판 글씨를 봐도 쓴 사람의 혼과 정신이 담겨있지 않는 글씨는 의미가 없다.
꽃피는 6월이 오면 간절한 종형(박동식)은, 1945년 광복과 함께 마을 청년들이 모두 모여 밤에는 ‘이승만 물러가라’는 삐라를 붙이고, 지서를 습격해 불을 지르고 하는데 종형은 같이하지 않았다.
함께하지 않는다고 생명의 위험을 느낀 종형은 46년 1월 집을 나가 소식이 없어 애태우던 중 국방경비대장의 위문편지와 함께 옷이 우편배달로 왔다.
1946년 1월부터 국방경비대 모집을 했다. 48년 대한민국정부가 수립되자 경비대는 대한민국국군으로 개칭되면서 종형은 장교시험에 합격, 소정의 교육을 받고 육군소위로 임관됐다.
소위가 되어 처음 휴가를 왔을 때는 빨치산을 하던 친구들은 다 총살을 당하거나 형무소에 가고 없었다. 종형은 미 육군의 사지 장교복 그대로였다. 키가 크고 어깨가 떡 벌어진 종형은 미남이었다. 모자에 달린 다이몬드 하나가 반짝 빛났다. 내가 한번 만져보고 싶은 권총은 종형수가 장안에 넣고 잠겨놓아 볼 수가 없었다. 마을 친구들이 조르자 종형은 권총을 농에서 꺼내 뒷산으로 가서 목표물을 정하고 한 방씩 쏘게 했다. 그때 반짝반짝 빛나는 권총을 어린 손으로 떨면서 만져보았다.
1950년 6.25가 터졌다. 3일 만에 수도 서울이 함락되고 이승만 정부는 대구로 피난가고 전선은 대구 다부동전투를 최후 보루로 하루 수 천 명이 죽는 전투는 밀렸다 당겼다 하던 중 그해 9월 유엔군 인천상륙작전으로 북진, 개전 3년만인 53년 7월27일에 휴전이 됐다.
휴전이 되고 1년이 지나도 종형은 소식이 없다. 그해 10월이었다.
문경이 고향인 육군소령(이름 잊었음), 소위 임관 동기라는 분이 찾아왔다. 종형과는 미아리고개전투에서 마지막 헤어졌다. 미아리 고갯길 도로를 파고 인민군 소련제탱크가 못 넘어오도록 다이너마이트 설치를 하는 위장작업이었다.
‘인민군의 소련제 무력은 당할 길이 없다. 정부도 도망가고 없다. 우리도 피해 목숨을 보전하자고 하자, 종형이 그런 군인이 어디에 있느냐? 너나 살아라.
나는 죽어도 작전 명령에 따른다며, 부하들을 데리고 도로를 파고 다이너마이트를 묻는 작업을 독려하고 있었다. 친구 소령은 자기와 같이 그때 몸을 피했으면 목숨을 보전했을 테데…하고, 죽은 종형을 통곡을 했다.
포로교환이 끝나고도 종형은 소식이 없다. 죽은 것이 틀림없다. 종형수는 친정(봉화)으로 가서 다시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지금 살아계시면 경오(庚午)생 이용수 할머니와 같은 92세다.
‘단장(斷腸)의 미아리고개’ 한 많은 세상을 가슴에 품고 돌아가셨다면 명복을 빈다. 큰아버지는 미친 강아지에게 물려 그 건장하신 어른이 공수병으로 사흘 만에 죽고, 둘째아들 중학생 춘식이는 소련제 방망이수류탄을 주워 물고기를 잡다가 폭발해 참사를 당했다. 큰어머니는 이런 기막힌 사연 앞에서 기절해 운명하셨다. 결국 6.5란 비극이 큰집 가정을 산산 조각을 냈다. 종형은 휴전 6년 후에 ‘전사가 아닌 행방불명’이란 통지가 날아왔다.
정부에서 연금이 나왔다.
연금을 받을 사람이 없다. 가난으로 땟거리가 없다. ‘다 같이 자식을 나라에 바치고 다른 사람들은 돈이 나오는데 복 없는 년은 자식 잃고 연금도 못 받는다’고 한탄하던 큰어머니는 죽고 없다. 종형은 죽어 6월 보훈의 달 현충일이 와도 어디에 대고 추념하나 할 곳이 없다. 영원한 나의 조국 겨레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무명용사의 죽음은 국립묘지에도 표지하나 없고, 그 죽음의 혼은 조국의 산하에 흔적 없이 산화(散華)했다.
문 정부 3년의 ‘평화 쇼’는 끝났다. 비핵화는, UN이 죽기 전에는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북한을 도와주고 싶어도 6,25때 미국 등 22개 참전국 UN의 제재위반은 배신이다. 우리는 운명을 우리가 마음대로 할 수 없다. 미·러·중의 손에 목숨이 달려있다. 낙동강 오리알이다.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는 오리 알을 의미한다. 문대통령은 ‘우리는 죽어도 인내해야한다’고 했다. 800억 재산의 손실이 문제가 아니라 북한은 한반도 평화의 상징을 무너뜨린 후 ‘상상을 초월하는 조치를 취하겠다’는 협박은 전쟁을 의미한다.
‘비핵화’는 북한이 핵을 없애는 것이다. 김정은은 죽어도 핵은 손에서 안 놓는다.
그러나 북한은 핵을 보유하면 죽는다. 철없는 김여정 제1부부장이 핵을 믿고 까불면 서울이 불바다가 되고 평양이 잿더미로 변하는 것뿐, 한민족은 공멸한다. 3차 대전이 일어난다.
6.25가 난지 70년, 통일이 될 때가 됐다. 우리는 핵 없는 한반도를 남북이 함께 만들어 서로 존중하면서 홍익인간 정신으로 국조단군을 모시는 민족으로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

홈페이지 관리자 기자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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