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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의 충효열1 - 병자호란의 삼학사 화포 홍익한 선생

2021년 02월 07일(일) 20:06 [봉화일보 인터넷뉴스]

 

↑↑ 봉화읍 문단리 충열신도비

ⓒ 봉화일보 인터넷뉴스

- 봉화문화연구회
홍익한(洪翼漢, 1586-1635)선생은 본관은 남양으로 처음 휘는 습霫, 자는 백승(伯昇) 호는 화포(花浦), 또는 운옹(雲翁), 시호는 충정(忠正)으로 진사 이성(以成의 아들로 감사 홍서주洪敍疇의 증손이며, 봉화읍 문단(院邱)에서 태어났다. 월사月沙 이정귀李廷龜의 문인으로 광해7년(1615년)에 사마시를 거쳐 인조 2년(1624년)정시 문과에 장원급제 했다. 사서司書를 거쳐 인조 9년(1636)에 장령掌令이 되었다. 청나라가 굴욕적인 조건을 걸고 사신을 보내오자 상소하여 그를 죽일 것을 주장했으며, 이에 최명길崔鳴吉 등 주화론主和論자 들은 극구 반대했다. 청나라 태종 홍타이지가 조선의 친명배금親明排(後)金 정책과 명나라 군사지원을 이유로 1636. 12. 14 병자호란을 일으켰고 그로부터 한 달반 만에(1637. 1. 30) 청 태종에게 삼전도의 굴욕적인 항복을 하고 말았다. 청과의 화의가 성립되자 청의 화를 피하고자 조정의 권유로 평양부서윤平壤府庶尹으로 나갔으나 청에서 척화신斥和臣을 넘겨줄 것을 요구하여 조정에서 홍익한을 우두머리로 지목하여 오달제吳達濟, 윤집尹集과 함께 1637. 2. 12 오랑캐 군영(瀋陽)으로 보내졌다.
의주를 지날 때 부윤府尹 임경업이 마중하여 이르기를 “살아서 대의를 세우고, 죽어서 죽백竹帛(역사에 공을 남김)에 빛나니 진실로 사나이의 일이다.” 했다.
심양에 이르니 한汗(청 태종)이 군사들을 삼엄하게 세워놓고 홍익한을 결박하여 앞에 오게 하였는데, 홍익한이 늠름한 태도로 굴복하지 않았다.
汗이 말하기를 “너는 어찌하여 화친을 배척하느냐?” 하니 홍익한이 말하기를 “내가 주장하는 것은 대의大義일 뿐이다.” 하고는 옷을 벗어 몸을 드러내고서 “속히 나를 치라.” 하였다. 이윽고 붓을 청하여 쓰기를 “大明 조선국 신하 홍익한이 척화를 주장한 뜻을 일일이 진술 할 수 있으나 말이 통하지 않으므로 글로 써 보이겠다. 온 세상 사람이 다 형제가 될 수 있지만 두 아버지를 둔 자식은 있을 수 없다. 조선은 본래 예의를 숭상하는 나라로서 간관諫官 들이 오직 바른말 하는 것을 전통으로 삼고 있다. 작년에 내가 언관言官의 직책을 띠고 있던 중 너희 나라가 약속을 어기고 황제라 일컬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는데, 과연 약속을 어겼다면 이는 형제의 의리를 거스른 것이고, 만일 황제라 일컬었다면 이는 세상에 天子가 둘이 있게 되는 셈이다. 집안에 어찌 반역하는 형제가 있을 수 있으며 천지간에 어찌 두 天子가 있을 수 있겠는가. 더욱이 너희 나라는 조선과 새로 형제의 맹약을 맺은바 있는데, 먼저 그것을 저버렸다. 명나라는 조선에 대하여 일찍부터 돌보아주는 은혜를 베풀어 깊은 관계를 맺어왔다. 지금 우리 조선이 그러한 명나라를 등지고 먼저 배신한 빈 언약을 지킨다면 이는 이치에도 어긋나고 사세에도 부당하다. 이 때문에 앞장서서 척화를 주장한 것으로서 오로지 의리를 지키고 臣子의 직분을 다 하려한 것일 뿐이다. 어찌 다른 뜻이 있겠는가, 다만 臣子의 도리는 충성과 효도를 다하는 것일 뿐이다. 위로 군친君親이 온전하게 보호받지 못하고 있고, 왕세자와 대군이 모두 포로가 되었으며, 늙은 어머니의 생사조차 모르는 지경이다. 이는 모두 내가 한 편의 상소를 함부로 올려 국가의 패망을 불러온 것이니 충효의 도리로 따져 볼 때 떳떳한 것이 하나도 없다. 스스로 그 죄를 따져볼 때 도저히 용서할 수 없고, 비록 만 번 죽는다 하더라도 달갑게 받아드릴 것이다. 나의 피를 북에 묻혀 혼이라도 하늘 높이 날아 고국으로 간다면 흔쾌할 뿐이다. 이 밖에 달리 할 말이 없다. 속히 나를 죽여주기를 원하노라.” 하니
汗이 중국인으로 하여금 번역하게 하여 듣고 말하기를
“이 사람은 실로 난감하구나.” 하고, 홍익한의 척화소를 내보이며 말하기를 “나는 황제가 될 수 없는가?” 하니
홍익한이 “너는 명나라를 배반한 역적인데, 어찌 황제가 될 수 있겠는가” 하였다.
汗이 크게 성내어 죽이라 명하였고, 두 명의 오랑캐가 홍익한을 데리고 갔으니 바로 이해 3월 5일 이다.
이로서 오달제吳達濟, 윤집尹集과 함께 청나라에 잡혀가서 순절(烹刑, 斬刑未詳)하였으며, 역사는 이들을 삼학사三學士라 일컫는다. 경기도 광주 「현절사」, 평택 「포의사」, 평양 「서산서원」, 부안 동도서원」, 영주 「장암서원」, 고령「운천서원」, 등에 제향 되었고, 출생지인 봉화에 충열신도비忠烈神道碑와 정충각旌忠閣이 세워져 있다. 저서로는 화포집 花浦集, 이행록以行錄, 서종록西從錄이 있으며, 효종 4년에 증 도승지, 숙종 12년 증 이조판서, 숙종 31년 증 영의정에 증직되고 영조 33년에 부조위不祧位가 내려졌다.

홈페이지 관리자 기자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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