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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산과 나의 5여신(女神)

2021년 01월 10일(일) 19:23 [봉화일보 인터넷뉴스]

 

↑↑ 박 하 식 - 소설가

ⓒ 봉화일보 인터넷뉴스

소금강(小金剛)이라 불리는 청량산 66봉은 태백산에서 시원 한 낙동강이 산을 끼고 흐른다. 산에는 27개의 사찰과 암자 터가 있고 의상대사가 창건한 유리보전, 퇴계선생이 성리학을 집대성한 오산당(悟山堂) 최치원의 고운대(孤雲臺)와 독서당, 김생이 글씨를 완성한 김생굴(金生窟) 공민왕이 피난한 공민왕당 등 역사적 유적이 있다.
신선이 내려와 바둑을 두었다는 신선대, 선녀들이 하늘에서 내려와 놀았다는 선녀봉 등 12봉이 있는데 주봉 의상봉(876m) 정상은 넓은 평원에 만병초 등 각종 약초와 고산식물들이 자생한다.
1980년 전두환 정권의 언론통폐합 때 나는 영주 봉화 영양군 담당 주재기자를 했다.
배동우 봉화군공보실장과 청량산을 갔다. 청량사 주차장 입구에 있는 한집뿐인 식당, 아가씨가 술상을 들고 방에 들어오는데 방안이 환해졌다. 어머니는 타계하고 늙은 아버지를 모시고 딸 혼자 식당을 했다.
아가씨를 보자 저 아가씨와 결혼을 했으면 하는 생각을 하니, 나는 내 결혼을 후회하면서 술을 마셨다. 그 후로는 매일 청량산을 갔다. 하루도 안보고는 견딜 수가 없었다. 밤에는 그 처녀가 잠든 방을 보며 홀로 아가씨 꿈을 꾸며 황홀했다. 그 처녀는 안동택시 운전수에게로 시집을 갔다.
전국 전교조전성기에 그 중등 여교사의 시아버지는 초등 교장이었다. 시아버지가 며느리 앞에 꿇어앉아 ‘네가 전교조를 하면 나는 교장 사표를 내야한다’ ‘그러셔도 저는 전교조를 하겠습니다’는 그 여교사와 K박사(교수) 셋이서 청량산 삼각우(청량사를 지었다는 뿔 셋 달린 황소) 무덤에 앉아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소주(25%) 열병씩을 마셨다. 여교사가 퍼졌다. 업어 가도 모른다. 어릴 때 여선생님은 화장실에도 안가는 줄 알고 자란 우리다. 여자를 부처님처럼 숭배했다.
치마를 덮어주었다. 서울에서 곱게 자란 여교사의 달빛에 비친 흰 속살은 선녀다. 나는 짐승으로 변했다. 징역3년은 싸다. 동물적인 번식 욕을 행동으로 옮기려고 할 때 K박사가 담배연기를 훅 내품으며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자기 자신에게 다짐하는 것인지, 내 마음을 알아차린 것인지는 모를 일이다. 그믐달이 진다. 어디서 뻐꾸기가 밤새도록 울었다.
세 번째 여신은 나를 오빠라 부르는 고향 아가씨다. 친구들과 목욕탕에 가보니 자기 유방은 너무 작다며 남자 손이 닿으면 커진다는데 오빠가 한번만 만져달라고 애원했다. 또 시집은 어디로 가더라도 첫 정조는 오빠에게 주고 싶다고 했다. 그럴 수는 없었다. 70년 9월 29일 부모 몰래 김포공항에서 홀로 파독간호원으로 떠났다. 나는 한국에서 살면 오빠가 보고 싶어 못 사니 독일로 떠나며 고국 땅은 죽을 때까지 밟지 않을 것이다. 오빠가 서독으로 오라는 쪽지를 남겼다.
네 번째 여신은 한 살 많은 누이는, 시집을 갔다. 하늘과 땅을 치며 통곡을 했다. 하루도 안 보고는 못살 것 같은 누이, 청량산 기슭에 누이를 묻고 내 무덤도 만들었다. 내가 한국 땅에 있으면 나는 너를 못 잊는다. 나를 잊기 위해 미국으로 떠나간 여인이다. 일정 때 손을 잡고 산을 넘어 초등학교를 다닐 때 우리는 산에서 딸기를 따먹고 소꿉놀이를 했다. 너는 아빠고 나는 엄마고, 산길에서 여우나 늑대를 마나면 눈을 꼭 감고 내 가슴에 안겨 끌어안고 있던 소녀다. 우리는 한 집에서 살았다. 그녀는 주인집 딸이었고 나는 행랑채 머슴의 아들이었다. 커서보니 결혼은 절대로 이루어질 수 없었다.
미국간지 50년 후 눈이 잘 안 보인다는 그 누이가 딸을 앞세우고 마지막 고향땅을 밟았다 내가 안내를 했다. 안동 하회마을 병산서원 도산서원 영주 소수서원 부석사를 거쳐 청량산 청량사를 찾았을 땐 유명한 출렁다리에는 관광객이 붐볐다. 영주에 도착해서였다. 딸은 가방을 들고 앞서가고 나의 부축을 받으며 가던 그녀는 엎어졌다. 나는 급히 그녀를 안아 일으키려했으나 그녀는 일어나지 않았다. 한참을 안고 있다가 일어났을 때,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했다. 허망한 늙은 목숨 둘이는 버스 차창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마지막 이별의 손을 흔들었다. 내 승용차로 돌아온 나는 혼자 엉엉 울었다. 그녀는 이듬해 하늘나라로 갔다.
그때 영양출신 김 씨는 오산당(悟山堂)에서 조각을 하며 휴게실을 운영, 청량산을 찾는 손님들에게 무료 차 대접을 했다. 삼각우연모라는 묘하게 다듬은 ‘남근조각’ 하나를 선물로 주었다. 열쇠고리에 끼워 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그때는 서울까지 서서 가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아는 무궁화 열차였다. 구두를 신느라 덜렁거리는 ‘남근조각’을 앞자리의 여인이 보았다. 제천에서 탄 묘령의 여인이다. 한번만 만져보잔다. ‘남근조각’을 손에 꼭 쥔 여인은 얼굴이 창백해지면서 바들바들 떨며 숨이 넘어가는 듯 했다. ‘팔수 없느냐? 값은 달라하는 데로 주겠다’고 했다. 1백만 원?이라고 농담을 하자 여인은 ‘지금은 돈이 없으니, 집에 도착하는 대로 은행계좌로 부쳐주겠다’고 했다.
이 물건은 이 여인이 주인인 모양이다. 나는 그냥 줘버렸다. 청량리역에 내리니 따라오면서 전화번호라도 달라던 그 여인은 청량산 5여신중의 하나인 여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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