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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의 충효열-16> 바래미 마을 독립운동 이야기- 1

- 봉화문화연구회

2021년 11월 07일(일) 20:32 [봉화일보 인터넷뉴스]

 

↑↑ 바래미 마을전경

ⓒ 봉화일보 인터넷뉴스

봉화소재지에서 36번 국도를 따라 영주방면으로 2km 쯤 가다보면 커브길 우측에 고기와 집들이 보인다.
의성김씨들의 집성촌인 마래미 마을이다. 1700년 팔오헌 김성구선생이 터를 잡은 이후 대과급제자 14명, 소과급제자 76명, 독립유공자 15명을 배출한 우리지역의 명문집안이다.
조선시대에는 급제를 하면 마을 어귀에 솟대를 세우는 풍습이 있었는데, “솟대 그늘에 우케(벼, 나락의 옛말)말리기도 어렵다.”는 말이 전해질 정도였다고 한다.
바래미 마을 사람들은 1910년 경술국치 이후 1945년 해방될 때까지 많은 항일 독립애국지사를 배출하였다.
이 마을의 독립운동 관계는 심산心山 김창숙 金昌淑 지사와의 끊을 수 없는 관계를 갖고 있는데, 심산은 개암開巖 우굉宇宏의 동생인 동강공東岡公 우옹宇邕의 13대종손으로 부친인 호림頀林이 바래미에서 성주 동강東岡 종가로 출계하였기로 바래미에 대한 향념이 남다르지 않았겠는가?
바래미 마을의 독립운동은 심산의 점화로 이루어 졌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3.1 만세운동을 전 후로 하여 마을전체가 독립운동에 나섰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들의 이야기를 3회에 걸쳐 소개하고자 한다.
□경술 국치기간의 항일운동
★김하림金夏林
1846 ~ 1909. 4. 3
주소: 봉화군 내성면 해저리
활동내역: 늦은 나이에 안동의진에 합세하여 활동하였다. 안동의진, 김도현의진에 있으면서 안동 일대에서 활동, 1896년말부터 권세연(봉화 유곡리)의진과 김도화 의진에서 부총 및 도총으로 활동하였고, 다시 8월에는 김도현 의진의 안동도총으로서 항일 투쟁을 하다가 왜경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름. (*2001년 건국포장 수상)

★김진림金震林
1838-1900.3.15
주소: 봉화군 내성면 해저리 485
활동상황: 안동의진 권세연 휘하에서 내방장 역임(*2020 대통령 표창 수상)

□ 3.1 만세운동과 독립청원서
3.1 만세운동 이후 김창숙선생은 곽종석郭鍾錫, 장석영張錫英등과 파리만국평화회의에 보낼 독립청원서를 작성하고, 심산이 이를 가지고 바래미로 와서 만회고택의 명월루(김홍기 지사의 사저)에서 친척 분들을 모아 장서의 배경과 독립의 절실함을 역설하고 서명운동을 전개하였다. 이에 마을에서 동참 서명하고 이를 배포하면서 각종 정보사항의 연락 등 활동에 앞장선 사람들은 다음과 같다.
★김건영金建永
1848.3.27.-1924.11.22
주소: 봉화군 내성면 해저리739
활동내용: 심산 김창숙 등 유림대표가 작성한 독립청원서에 서명하고, 동문서를 배포하는 등 항일 활동을 하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름. (*1995 건국포장 수상)

★김순영金順永
1860.6.1. -1934.2.28
주소: 봉화군 내성면 해저리 706
활동내용: 1919년 3월 파리강화회의에 보낼 한국의 독립을 호소하는 독립 청원서에 유림대표의 일원으로 서명하고 동 문서를 배포하면서 항일활동을 전개하다가 보안법 위반으로 체포, 구금되어 옥고를 치름. (*1996 건국포장 수상)

★김창우金昌禹
1854.9.5. - 1937.11.28
주소: 봉화군 내성면 해저리 709
활동내용: 1919년 파리강화회의에 보낼 심산 김창숙 등이 유림대표가 되어 작성한 독립청원서에 유림대표의 한 사람으로서 서명, 배포하는 등 항일 활동을 하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름. (*1995 건국포장 수상)

□ 2차 유림단사건과 국내외 항일 운동
3.1 만세운동에 이어 독립청원서 서명운동이 1차 유림단 사건으로 통칭된 다면 2次 유림단 사건은 독립군자금 모금운동이다. 심산 김창숙이 상해 임정에서 활약하다가 만주에 독립군사학교를 설립할 목적으로 독립군자금 모금에 나서 20만원을 목표로 하고 1925년 국내로 잠행 입국하여 대구 남산동에 있는 한 여관(박**)을 본거지로 정하고 삼남지방 각지에 있는 유지들을 모아 조직을 결성하고 지역별 책임자를 선정, 모금활동을 전개한 항일운동이다.
자료제공: 광복회영주봉화지회장 金 斗 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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