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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고장명문가= 나주정씨(羅州丁氏)

2013년 10월 07일(월) 11:59 [봉화일보 인터넷뉴스]

 

ⓒ 봉화일보 인터넷뉴스

나주정씨(羅州丁氏)의 시조(始祖)는 중국(中國)에서 유배(流配)왔다는 정덕성이라는 인물(人物)이라는 설과 고려시대(高麗時代) 문신인(文臣人) 정윤종이라는 설이 있는 것 같다. 두 이야기 중 어느 것이 맞는 것인지를 확인(確認)하기 위해 자료(資料)들을 찾아보았다. - “나주정씨(羅州丁氏)의 시조(始祖)는 정윤종(丁允宗)이다.” 이 인물은 고려 시대 무신(武臣)으로, 검교대장군(檢校大將軍)이었다.우리나라에 족보가 있기 시작한 것이 1476년 즉 성종(成宗) 7년 안동권씨성화보(安東權氏成化譜)부터니까 그때부터 위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하더라도 최고 300-400년 이상의 조상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소상히 알 수 있는 방법(方法)이 없었다. 나주정씨(羅州丁氏) 최초의 가첩(家牒)인 월헌첩(月軒帖)이 약 1520년, 즉 중종(中宗) 12년 전후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고려중기(高麗中期)의 정윤종을 시조(始祖)로 적어놓은 것은 매우 신빙성(信憑性)이 있는 기록(記錄)이라고 볼 수 있다. 권위 있는 보학자(譜學者)들의 주장도 왕실을 제외하고, 사가성(私家姓)의 시조(始祖)추적은 그 상한선을 최고(最古)로 잡더라도 고려초기(高麗初期)를 넘을 수 없다고 단정하고 있다. 그런 까닭에 만약에 그 이상의 조상에 대해서 잡다한 기록을 해놓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거의 100%가 다 날조된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 ‘정덕성(丁德盛)’설중국에서 압해로 유배 온 정덕성(丁德盛)이라는 인물이 정씨의 시조(始祖)가 되었다는 설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는 중국이나 한국 그 어느 나라의 정사(正史)에도 일언반구의 증거도 찾아볼 수 없는 황당한 날조행위였다는 것을 약 200년 전에 이미 해좌(海左) 정범조(丁範祖)ㆍ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등 지난날의 석학들이 너무도 분명히 변증해 놓은 바가 있다. 정약용의 [사보변]에 정덕성에 대한 기록이 다음과 같이 나와 있다. 호남 정씨에게는 한 가지 사보(私譜)가 있는데, 사보에는 압해 정승묘의 그 정승 이름은 덕성(德盛)이라 하고, 당(唐)나라 문종조의 대상(大相)으로 압해도에 귀양 와서 살았고 대양군(大陽君)에 봉해졌으며, 묘는 압해도에 있다. 본군(本郡)에는 명호고개(明湖古界)를 비롯하여 각처(各處)에 살고있다.

강선희 기자  rkd92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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