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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마을탐방<3> 하늘에 떠 있는 배타러 가는 길 법전면 법전2리 ‘붓든’ 마을

봉화문화연구회 강 필 구

2018년 05월 27일(일) 19:35 [봉화일보 인터넷뉴스]

 

↑↑ 모래골 서낭당 모습

ⓒ 봉화일보 인터넷뉴스

↑↑ 붓든의 서낭당 모습

ⓒ 봉화일보 인터넷뉴스

↑↑ 붓든에 옛날 그대로 방치된 정겨운 가옥

ⓒ 봉화일보 인터넷뉴스

↑↑ 황도사네 기도처 표지석

ⓒ 봉화일보 인터넷뉴스

여름으로 접어든 계절은 아카시꽃 향기가 절정이고 마침 흠뻑 내린 호우로 도랑물이 제법 세차게 흐른다. 이미 뻐꾸기가 여름 전령사로 한낮의 적막을 깨우고 숲은 푸르름이 한층 더해진다. 법전면 소재지에서 법전교를 건너면 이정표는 좌측으로 모래골길을 가르키고, 법전천 확장공사가 한창인 마을길을 따라 ‘황새모랭이’를 지나면 모래골 입구가 36번 국도를 머리에 이고 있는 곳에서 시작된다.
모래골은 법전기(法田記)에 묘애(杳靄)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안개와 산천이 어우러져 선경과 같은 평화로움이 만들어낸 이름이었을 것이다. 모래골 입구에는 서낭당 두채가 마을을 수호하듯 서있다.
북향으로 세웠는데 왼쪽이 삼신당이다. 모래골은 가운데를 흐르는 물길을 따라 농로가 좌우로 건너 나있고, 마을의 양쪽을 그리 높지 않은 산들이 감싸듯 펼쳐져 있는데 산을 의지해 형성되어 있다.
모래골길을 3㎞ 정도 올라가니 갑자기 산이 앞을 가로막아서고 갈림길이 나타난다. 왼쪽은 붓든길, 오른쪽은 새랭이길이다. 갈림길에서는 어느 쪽을 쳐다봐도 입구가 막혀있어 인가나 마을을 짐작할 수 없다. 붓든길로 한 굽이 크게 돌아서자 멀리 갈방산이 올려다 보이고 아래에서는 보이지 않던 마을이 빼꼼이 모습을 드러낸다. 마을 입구에는 1982년에 지정한 200년 된 면 보호수 소나무가 돌배나무와 잘 어우러진 모습으로 서있다. 이 소나무와 돌배나무에 금줄이 쳐져 있고 돌단을 쌓아 제단을 만들어 서낭당으로 보호하고 당제를 지내는 듯 흔적이 보인다.
마을은 서낭당을 돌아 언덕을 오르면서 시작된다. 마을의 가운데를 가파르고 급한 개울이 머무름 없이 물길이 급해서 풍수로는 좋은 모습은 아닌듯하다. 저 아래 모래골과는 산굽이가 막혀있어 전혀 짐작하지 못하는 곳에 붓든이 숨은 듯 돌아 앉아있다. 마을의 주민에게 수소문하니 “황도사(황용흠·70)가 마을 유래를 제일 잘 알걸”하고 추천해 준다.
가파른 개울 따라 만든 좁은 길을 서너 굽이돌자 왼쪽 산 입구에 ‘천축극락원 황도사’라는 돌표지가 서있다. 가파른 산언덕을 숨차게 오르니 옛집을 활용해 구조를 변경해서 기도처로 쓰고 있는 황도사집이 보이고, 입구에 화려하게 핀 산수국과 집지키는 견공이 손님을 반긴다. 주인 황도사에게 찾아온 연유를 말하자 “내가 뭐 아는게 있나? 다른 어른에게 물어봐!”라며 겸손을 떤다. 황도사는 이곳 붓든의 토박이로 불교공부와 기도하러 다닌 외에는 집을 떠나본 적이 없단다. 우선 마을이름을 물었다. “왜 붓든이라 불렀지요?” “내가 볼 때는 붓든이 아니고, ‘붙들’인거 같애.” 전혀 못듣던 새로운 해석인지라 “아니 왜요?” “여가 자연 좋고, 인심 좋고, 풍수해가 없으니 들어온 사람이 지발로 나간 사람이 없고 자연적으로 마을에 붙들린다꼬 ‘붙들’ 인데 나중에 붓든으로 불린 거지 뭐”
이 부분은 황도사의 생각으로 마을 자랑으로 남겨 두었다. 1800년대에 쓰여진 법전기에는 부구(浮丘)로 군지나 다른 유래집에는 부둔(浮屯), 부곡(浮谷)으로 기록되어있다. 해발 600m 높은 언덕위의 마을은 갈방산 아래 숨어 있어 아래에서 보면 물위에 배가 떠있는 형상을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부구가 더 신빙성이 있어 보인다. 황도사는 “이 마을 생김이 작은 배 모양이지”라고 한다. 그러고 보면 구름위에 배가 떠있는 모양새다. “지금 몇집 살아요?” “지금은 12가구. 모두 각성바지로 집성촌도 아이고 먹고 사는 것도 산전 쪼아서 감재, 강낭, 서슥, 보리 뭐 이런 거해서 간신히 입에 풀칠했제.” “옛날에는 누가 살았나요?” “옛날에는 삼척김씨가 모여 살았는데 지금은 전부 뜨고 주위 산에 비석하고 상석에만 기록이 있지.” “갈방산 바로 아래이니 광산이야기를 좀 해 주시지요” “여기는 본래 사람 사는 줄 몰랐던 곳일 만큼 오지이고 피난처인데, 일본회사가 금광 해먹으면서 사람들이 광산 때문에 모였제. 이 좁아빠진 골짜기에 300가구가 살았다니 오죽 했겠어? 붓든에 두 개의 광구가 있었는데, 얼마나 깊고 멀리 파들어 갔는지 여서 빠지면 법전 장마당 앞개울에서 찾는다고 할 만큼 대단했고, 광물을 캐다가 다덕에 있는 선광장으로 굴을 파서 소래기차를 이용해서 날랐제.” “소래기차가 뭐예요?” “소래기차는 도르레로 끄는 짐차를 우리는 그렇게 불렀어” “그때는 전부 간드레불을 썼고 발전으로 전기도 있었어. 그 시절에 법전 사람들 거의가 광산에서 일해서 먹고 살았제.” 그 많았던 사람들이 일을 따라 모였다가 또 일 따라 모두 떠나갔다. “여기가 갈방산의 동쪽이고 마을 사람들은 광대산이라 불렀어. 서쪽에서 동쪽으로 물이 흐르면 피난지로 좋고, 도 딱기 좋은 곳이야.” 갈방산 옆 갈방으로 넘던 고개는 갈방재이고, 좀 더 남쪽 법전 용동으로 넘던 고개는 웃구미재라 불렀단다. 황도사는 이곳이 더 만족할 수 없도록 좋은 곳이라고 한다. “마을의 뒷산 넘는 길과 앞으로 나가는 길이 열리면서 마을의 기운이 빠져나가는 형국이라 재물이 모이지는 않는 것 같애. 그저 공기 좋고 물 좋아 머물기 좋은 데지.” “마을 앞에 서낭당이 있던데 마을에서 제를 지내나 보지요?” “마을에서 서낭당을 위한 모임이나 계는 없고 내가 혼자 지내. 간혹 과일이나 소지비(燒紙費)를 개인적으로 내는 주민들이 있지. 매년 음력 정월 열나흘 날 저녁 11시에 지내지.” “서낭당 모습이 초라해 보여요?” “옛날에도 집은 없었고 박정희 때 서낭당 철거로 그나마 없애고 나니, 마을에 피해도 많고 해서 다시 금줄치고 제를 올리고 있제.”
“갈방산에서 기우제를 지낸 사실이 있다던데요?”
“갈방산 정상 조금 못미처 ‘용샘’이라고 있는데, 봉화에서도 산 정상 부근에 샘이 솟는 데는 없다 그러더라고. 가뭄이 심할 때 군수가 개를 잡아서 용샘에서 기우제를 지내면 금방 소나기가 쏟아졌다고 해. 지금은 관리를 안해서 주변이 엉망이라도 샘물은 조금씩 나. 문수지맥으로 보존하고 개발되면 좋겠지.” 개를 제물로 썼다는 게 의아했으나 기우제를 용샘에서 지낸 것은 사실이고, 용샘으로 올라가는 곳이 붓든이었다는 것도 갈방산의 동쪽이니 방향도 맞는다.
“붓든광산의 오염은 어땠어요?” “일본 광산회사가 금광석을 캐서 나오면, 좋은 원석은 소래기차로 다덕으로 보내고 잡석은 남겨서 쌓아 두었는데, 해방 후 사람들이 잡석을 깨고 제련해 금을 뽑았는데 제련과정에 중금속이 쓰이고 오염되어 갈방산에서 흐르는 물 전체가 벌겋게 물들어 흉물이었지. 최근에 ‘한국광해관리공단’에서 폐광 복구 사업을 두 번이나 해서 복토했는데도 제대로 안돼서 몇 곳은 농사 안 짓고도 정부에서 보상해 주고 있지.” “그래도 지하수는 파보면 아주 좋아. 맛도 좋고.” 어느덧 내어준 커피 한잔을 두고 나눈 이야기가 세 시간을 넘는다. 황도사와 작별하고 집 앞을 나서니, 지대가 높아 붓든 마을 전체가 한눈에 들어온다. 작은 배의 형상을 한 마을이 산에 둘러싸여 갈방산의 기운을 아스라한 햇살과 함께 내려 받아 온몸으로 품고 있다.
문수지맥의 장대한 기운이 갈방산의 흐름을 타고 멀리 안동까지 뻗은 만큼 아름다운 지맥을 보존하고 갈방산의 ‘용샘’ 같은 우리 고유의 역사적 장소를 정비했으면 한다. 붓든은 역시 구름 위에 떠있는 마을이다. 신선들이 무위자연을 벗 삼아 머무르는 곳이 있다면 여기 붓든이었을 것 같다.

봉화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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